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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이 지나고 겨울과 봄 사이에 신모델도 들어가고, 국내 외 공장들과 돌아왔다며 정리도 했으며 슬슬 재고나 판매에 대한 수량들이 완벽하게 넘어와서 자리가 굳어지던 판이었다. 반년간 혼자 앉아서 엑셀로 디자인, 컬러별 판매 추이나 재주문 타이밍, 신모델이 올라올 타이밍, 제품 단가를 맞춘다던가 파트너들과 단가나 공정 방식에 대해 구구절절 떠들다 보면 머리에 있는 디자인을 도면으로 옮기는 게 여간 쉬운 일은 아니었다. 1년에 50 모델은 족히 뽑아내야 하는 브랜드에서 홀로 도면을 치거나 자잘한 작업지시서 작업을 하려니 실수가 나거나 머릿속에서 꼬여버리기 쉬웠다. 시즌별 큰 그림을 그리는데도 드는 조용한 시간이 필요하고, 나사 위치나 길이까지 디테일하게 파고드는 시간이 필요한데 철저하게 '물리적 시간'..
언제나 전에 있던 선임의 모습을 닮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턱과 배에는 기름이 끼고 그가 했던 행동들이 나에게서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전과 같은 형형한 눈빛이 사라진지 오래, 경기와 코로나 탓을하며 예년 보다 일찍 찾아 올 비수기를 두려워한다. 매일 아침 자동으로 날라오는 정부 정책이 가득한 메세지를 받고 링크 된 뉴스 기사를 긁적인다. 상관도 없는 이야기들 왜이리 떠드나 싶다가도 한 두 칼럼 심각하게 읽으면 시간이 훅 지나가있다. 선물 받은 드립커피 한 잔 내리고, 일도 조금 하고 읽었던 칼럼을 토대로 앞날을 나 나름대로 상상하다보면 어느덧 점심시간이다. 업무 시간에 뉴스 기사에 댓글이나 달면서 언제나 목이 날아갈까 두려워하던 선임의 흐리멍텅했던 눈빛이 떠오른다. 나라고 썩 다르지도 않은 것 같다. 글..
퇴사를 하고 일본으로 날아간 이유는 후쿠이현에 있는 일본 안경 공장에 꼭 가보고 싶었던 것과 조만간 도쿄에서 있을 ioft2018에 가서 일본 프레임들의 진수를 맛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짧게 ioft가 뭐냐면, 도쿄에서 이뤄지는 안경 전시라 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2대 안경 페어는 파리 silmo, 이태리 MIDO 가 있고, 곁다리로 홍콩 HKTDC OPTIC FAIR, LA vision expo, 베이징 (이름 모름), 한국 대구 DIOPS, 도쿄 IOFT, 이스탄불 silmo 등등 있는데 아마 더 있겠지? 아무튼 그러하다. 한국의 하우스 브랜드들이 모여서 호텔에서 진행하는 수주회나 단독으로 진행하는 브랜드들의 수주회들이 뻔해서 지루하던 차에 앞으로 나의 휴가마다 외국에 있는 안경 ..
퇴사 전후 상황을 정리하기 전에 배경을 설명해야 한다. 나는 2015 수제안경 작업실에서 디자인과 메이킹 시작, 유통과 시장을 알기 위해 2017년 초에 디자이너로 입사했다. 아세테이트 프레임만 다루다가 다양한 소재의 안경 디자인에 관련한 일들, 안경 업계가 굴러가는 상황을 알아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같은 층 사무실에 디자인 팀장과, 회계와 수출, 매출을 관리하는 과장이 있었는데 그는 팀장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이듬해 5월쯤 퇴사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일을 어느 정도 떠맡게 된다. 디자인 팀장은 업계에서의 경력과 판매수량을 인정받아 내가 오기 전 부장으로 입사했다 한다. 20년 전 국내에서 가장 큰 안경원 체인 기획실에서 선글라스 디자인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90년대 말이나 2000년 초반이었을 텐데..
중국의 강한 성장은 인구수(노동력)에서 나온다는 이야기도 있던 것 같다. 한국이야 과거 제조업 이후 2차 제조나 서비스업, IT, 컨텐츠 등의 산업이 발달 인구를 기반으로 한 노동이 크게 필요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다지 인구수를 강하게 끌어올릴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한다.인구 증가가 곧 국가의 동력이라 일컬어지던 때가 있었다. 50년대 전쟁직후 베이비붐 세대가 그렇고, 70년대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표어가 그렇다. 물론 이후는 노동력을 염두에 둔 인구 정책들은 아니겠지만 산아제한보다는 출산장려가 종종 있었다. 우리나라는 2020년부터 향후 45년간 세계에서 유례없는 고령화가 진행된다고 한다. 아까 언급했던 베이비부머 세대와 70년대 생이 많기 때문이다. 땅은 좁고 한국도 예전처..
장마철로 들어가는 시기다. 회사를 다니면서 하고 싶은 안경은 따로 하겠노라, 19년 말 뚝섬에 작업실을 새로 구했다. 팔리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것에는 어느 정도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에, 본인의 브랜드를 운영하지 않는 이상 이 정도의 타협은 필요하다 생각했다. 그 전에는 문래에 있는 안경 공방에 출근 도장을 찍었지만, 그곳이 잘 되면서 법인화가 되었고 투자자? 사장님이 따로 생기는 바람에 전처럼 편한 분위기는 아니게 된 게 가장 크고, 내가 이사를 가면서 멀어진 게 다음일 게다. 무작정 문래의 안경공방 근처에서 옥탑을 구해버리고 일 시켜 달라고 떼쓴 지 4,5년 정도 지난 것 같다. 최근 안경 공방은 자체 브랜드를 준비하면서 더 이상 수강생을 받지 않는다 했는데, 나도 3년 정도 공방 선생님으로 있으면..
기성 밴드 다음으로 가장 좋아하게 된 밴드 tame impala. 호주 퍼스 밴드인데 사실 원맨 프로듀싱에 가까운 밴드다. 2014년까지는 모르던 밴드인데 호주에서 같이 일하던 david과 Jules 랑 스튜디오에서 잼 하면서 '너 tame impala 알아? 들어봐'를 기점으로 알게 된 밴드다. 우리는 결국 아무 음악도 못 만들고 나의 호주 횡단 계획으로 굿바이 하게 된다. 호주 횡단은 천천히 중간중간 일도 하고 아파트 쉐어도 하면서 한 달 반에서 두 달 정도 걸렸다. 이후 돈이 없다는 친구들 덕분에 농장 들어갔다가 엄청 고생했다. 대부분 대만 친구들과 일했는데, 심심한 주말에 사진도 찾아보고 올려야지. 당시 어쩔수없이 CD를 사서 음악을 열심히 들었어야 했다. 도시에 들려 레코드샵에서 tame im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