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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받침과 리벳, 장석을 새로 만들었다. 기존에 있는 보통 안경에서 쓰는 기본적인 형태의 부속들도 튼튼하고 좋지만, 아무래도 모든 부속을 새로 만들다 보니 약간 비효율적이어도 해보고 싶었던 방식들을 시도했다. 리벳, 경첩, 템플 심, 코받침까지 메탈을 사용하는 부분은 다 바꿔본다. 세계의 작은 공방에서 만드는 수제안경은 기존의 공장에서 나왔던 부속들을 사용하되 아세테이트는 형태를 마음대로 깎고 다듬고 광내는 분위기였다. 모두들 기본적인 공정과 연마와 광을 내고 피팅을 해서 한동안 써보고 난 후에 만들면 만들수록 드는 디테일들에 신경 쓰기 시작한다. 열 힌지를 삽입하고 얼마나 깨끗하게 마무리가 되는가, 리벳을 달았는데 좌우가 완벽한가, 다리를 접었을 때 얼마나 일치하는가, 엔드피스 쪽 다리와 프론트의 닿는 ..

뭐하는지 모르겠는 일주일이 지나가고 주말에는 작업이 얼추 마무리되어 갈 때쯤 동생들이 놀러 왔다. 밖에서 술 마시기 무섭다며 저녁 먹을 겸 한잔 하러 오겠다기에 두세명 올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코로나 시대라 발열검사와 손씻기 후 꾸역꾸역 몰려들더니 8명이 입장했다. 10인 이상은 벌금이란다. 다 학교 후배들이다. 나 대학생 때 (라떼)는 깔루아 다음에 예거였는데, 애들은 아그와로 시작해서 앱솔루트로 넘어갔다 한다. 학번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돌아가며 DJ로써 음악들을 추천했다. 마음에 드는 곡들은 밴드를 적어가는 훈훈한 자리였다. 스피커를 크게 틀어도 좋으니 그건 다들 좋아하는 듯. 즐겨가던 대학교 밑에 지하세계의 술국집, 작은마을 제육덮밥, 점점점의 재즈와 맥주까지 사라지거나..

회사 제품의 이야기다. 작년 11월인가 홍콩으로 출장 가면서 공장 관계자 만나고 도면을 넘겼었는데, 제품은 이후 8개월이나 지난 7월에 나왔다. 그리고 출시는 한 달 쟁여뒀다가 이번 8월에 했다. 이 공장은 그리면 그린대로 잘 나온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지만 초도수량이 크고 긴 제작기간, 단가가 타 공장에 비해 많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유행과 상관없이 꼭 필요한 제품들은 모았다가 발주한다. 안경 자체의 때깔이 좋은 편이라, 고급테를 지향하는 우리로썬 같이 가고 있지만 나랑 일하는 중국애가 말 많고 까탈스러워서 같이 일하기 굉 장 히 피곤하다. 공장마다 각자의 특징들이 있어 하나만 끌고가기엔 아쉬운 점이 있다. 회사에서는 안경 성수기인 3~5월간 코로나로 인해 기존 전략인 폭발..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보는데, 한 아이가 병원에 갈 때까지 화장실에 앉지를 않더라. 며칠이 지나도록 화장실에 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미용실에도 갔는데 머리 깎는 것도 무섭다는 아이를 보면서 의문이 있었다. 장이 꽉 찰 때까지 버티다가 병원행. 결론은 변기의 차고 딱딱한 의자가 맨살에 닿는 게 싫었고, 미용실의 바리깡이 머리에 닿는 게 무서웠던 것인데 그 두 가지의 연관성 '이질적인 무엇인가가 갑자기 닿는 것'을 과연 누가 알아 챌 수 있을까. 상관없는 일 들 사이에서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일은 어지간한 전문가 혹은 호기심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 아니고는 어려운 일이다. 혹은 이미 결과는 병원에서 알아놓고 오 선생이 기상천외한 두 가지를 짜 맞춘듯한 각본으로 보인 걸지도. 한편으로 호기심을 유발해 ..

DEMIL에서 나온 바지를 입고 나가봤다. 빽바지만 입으면 비가 많이 온다. 풀 티탄으로 작업한 안경, 땜 자국은 군데군데 손으로 마감을 해줬다. 이너림은 이태리 AUROCHIM 사의 아세테이트를 사용했다. 도금으로 인해 니켈이나 마그네슘이 안올라가니 알러지 걱정이 없다. 덕분에 컬러는 티타늄 색 하나뿐이다. 나는 이런 게 좋다. 휴가를 쓰고 작업실에서 작업만 한게 아까웠다. 저 날은 비가 왔다. 일본에서 돌아온 명신이와 오늘 같이 작업한 기복이랑 소주를 마시면서 스무 살 때 이야기를 했다. 스물에 대한 이야기를 언젠가 남기려 한다. 다음 날, 2층 침대를 작은방에서 뺐다. 작업하러 사람이 더 들어올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간 선반이 부족했는데 매트리스는 창고에 넣어두고 가끔 쓰고, 침대 프레임은 재활용하..

오늘의 샘플링 테스트, 회사에서 제품 만들때도 공장에서 가장 시간이 많이 드는 부분이다. 샘플링 팀은 따로 있어야하는데 이건 뭔 주말에 몇 시간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일 관두고 딱 삼개월만 몰입하면 뭔가 될텐데. 아닐 확률도 높다! 그러나 요즘은 굳이 사진에 찍지 않은 것들도 많은 상황에서, 긍정적인 가능성들이 엿보인다. 힌지는 나사선까지 잘 만들어졌다. 다음 버전 리벳과 힌지를 그려보는 중이다. 나사도 잘 들어가고 적당한 느낌으로 열고 닫힌다. 만들고 있는 다리를 붙일 프론트를 만드는 중이다. 홈 선 날은 캐나다 밀링머신 장인인 cask에게 주문 제작했다. 평소 쓰던 것보다 깊은 느낌이다. 위의 사진은 리벳 자리를 표시하는 것. 이후 톱질과 줄질들은 생략. cnc 기계를 두면 참 좋을텐데. 난 그리고 ..

일본에서 바스키야의 전시를 보면서 느낀건 일본인들이 서양권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혹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는 마치 잘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 아이를 보는듯 하다고 해야 하나. 일본도 충분히 묵직하고 값어치 있는 문화와 사고와 정신을 갖고 있는데, 너무 떠벌리기 좋아한다는 것이다. 마치 점점 유치해지는 노인들을 보는 듯 하다. 전시에서 일본의 이런 게 프랑스 어디에 소개되었다는 둥, 바스키야가 일본에서 머물면서 영감을 얻었다며 1달러가 아닌 1엔이라 써 놓은 작품을 메인으로 걸어놓는 등 유럽권에 인정받았다는 모습을 쉴새없이 떠드는 것을 보자 실소가 새어 나왔다. 글쎄 뭐라고 할 것이 되는가, 우리나라도 코로나 때문에 외신에서 어수선하자 퍼 나르며 국뽕 고취시키기 여..

작업실 멤버들의 요즘 상황에 대해 내가 아는 대로 정리를 해보려 한다. 아마 몇 년 뒤에 보면 재미있겠지. 부속 작업 해야하는데 기복이는 너무 바쁘다. 스케쥴러가 있는 거 같은데 일을 많이 만들어놓고 몸을 혹사하면서 일하는 스타일이라 판단한다. 거기에서 오는 버거움이 그에게는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는 모양이다. 이 날 내가 오기 전에는 주문제작 손님 하나 만나고, 일상 작업자들 모임 미팅을 진행하고 신윤복 미팅도 참석하고 그 사이에 저렇게 뭔가 땜질을 하고 있다. 나는 11월에 출산인데, 그때부터 1년간 내가 아무래도 거의 못 오지 않겠는가. 내 파트를 전수해주면 내가 육아에 바빠서 빠져있는 일 년간은 어찌어찌하겠지만, 이렇게 바쁜데 찬찬히 안경을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리고 최종 디테일은 결국 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