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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os

2010년 내가 대학도 휴학하고 임베디드 거쳐서 앱 개발한다고 깝죽거릴 때의 일이다. 당시 삼선동 꼭대기층에서 보증 3000에 월 30짜리 널찍한 집에서 자취하면서 놀던 시기였는데 미대 다니던 친구가 소개해 준 카페에서 죽치는 게 또 내 삶의 행복이었다 이후 서른이 넘은 지금도 모든 영감의 시작은 그곳이랄까. 나중에 내가 만들 작업실의 롤 모델이다. 난 아직 그때에 머물러있다. 혜화동 cafe office. 이제는 사라진 공간이지만 기억을 더듬어서 설명을 써본다. 높은 천정에 필로티 식으로 앞 테이블이 있어서 커피 찌꺼기에 담배를 터는 맛이 있었다. 그 동네는 적당히 부유한 집들이 많아서 큰 개들을 끌고 다니는 노 신사나 레깅스 (당시에 그렇게 입지 않았거든 2010년)를 입고 산보하는 아가씨들이 눈에 ..

출근하는데 물에 푹 젖은 듯 몸이 쭉쭉 나가지 않는다. 꿈속에서 몸이 앞으로 안 나가던, 그런 느낌. 아니면 팔 힘이 쭉 빠진 상태에서 수영하는 그런 거. 살이 쪘거나 근육이 빠졌거나 나이가 들어서다. 아마 셋 다겠지. 근래 머릿속은 혼탁하다. 학창 시절 골대를 누비던 기억. 이십 대 옥탑이나 자취방으로 놀러 오던 수많은 친구들과 사건들. 꿈이라고 달려들던 열정. 운우지정 등등 이젠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랬던 것 같은데, 생각해보면 지금의 나에게는 생길 리가 없는 일들 뿐이라 비현실적이라는 생각만 든다. 인셉션에서 림보에 빠진 노인과 같다. 디카프리오가 림보 속으로 구하러 가자 '그랬던 거 같은데...' 라던 노인의 말. 자극적이거나 창의적인 하루가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실제로 뇌는 점점 죽어가기..

우리는 소주에 냉면을 좋아한다. 겨울철 온천이 즐겁듯, 뜨거운 소주에 배 부르지 않고 시원한 냉면을 먹는 게 좋다. 나는 냉면 종류도 잘 모르고 디테일은 잘 모르지만 그냥 내 취향에 맞게 먹는 편이라 생각한다. 을밀대도 좋았고 을지면옥도 좋고 부원 면옥도 좋아한다. 동무 밥상도 맛있었다. 대구에서 먹었던 회물비냉도 진귀했다. 고깃집 냉면도 가끔 프랜차이즈의 맛이 필요할 때 먹으면 좋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냉면을 즐기는 것이 문화처럼 번지면서 냉면에 대해 평하기 시작했다. 가격도 뛰어올랐다. 왜 곱창이나 삼겹살은 그런 디테일한 평가들이나 원조격 가게들이 있다는 것에 조용하면서 냉면은 유독 그런 문화가 자리잡았을까? 함흥이 맞네, 평양이 맞네 말들이 많다. 월남한 분 왈 '집집마다 국밥맛이 다 다른거지 그런..

몇 해의 시즌을 예상하고 큰 그림을 그려두지만, 나와 같은 작은 회사에서 시장을 주도하기는 어렵다. 해체주의니 미니멀리즘이니 해체주의를 통한 미니멀리즘이니 등등 좋은 단어들을 들고 세상을 놀라게 하는 팀들이 있는 반면, 그런 팀들이 만들어 놓은 시장의 '판'에 숟가락을 얹는 형태가 비일비재하고 우리 회사도 피해 가기 어렵다. 물론 안경을 패션의 영역으로 본다면 그런 해석이 되겠지만, 나는 썩 트랜드의 영역이라기보다는 공학과 디자인이 2:3 혹은 3:2 정도로 섞인 제품의 영역이라 생각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패션 영역을 놓치는 건 아니니 공학: 디자인: 패션 = 1:1:1 정도로 섞인다고 해두자. 여기서는 디자인을 패션 디자인이 아닌 사용자를 위한 디자인이라 정의한다. 아무튼 기획을 해보자. 보통 브랜드들..

수제안경 공방에서 대략 2년, 이후 한국 1세대 안경회사 디자이너 사원으로 입사. 몇 년이 흘러 현재는 팀장이 되어 기획과 프로듀싱을 하고 있다. 처음 안경을 시작하던 마음과 현재의 마음은 달라진 부분도 있고, 여전한 부분도 있다. 내 브랜드를 내고 싶다는건 초반의 마음이고 지금은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대체 불가능한 프레임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 지금의 생각이다. 되래 좋은 회사가 받쳐준다면 바닥부터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 Dieter rams나 Jacob Jensen처럼 디자이너를 믿어주는 회사를 만나는 게 최고라 생각되는 요즘이다. 거기서 크게 성장을 하고 난 뒤에 개인 이름을 걸기로 하자. Jony Ive 처럼. 물론 사정이 생겨서 빨리 튀어나갈 수도 있다. 전에는 안경으로 ..

공산품도 생산이 중단되면 어떤 제품들은 재고가 되고 쓰레기가 되지만, 어떤 제품들은 희소성을 갖고 빈티지라 칭송받는다. 이는 온전히 디자인 덕분이다. 작동이 안됨으로 인해 가치가 없어져도 조형적으로 아름다운 제품을 만들자. 그는 수리를 해서라도 써야하니 환경을 위한게 된다. &anne et valentine

강남 제일기획 옆 건물인 해커스에서 결국 코로나 확진자가 떴다. 회사는 오늘 분산근무를 시행해서 사람이 반도 오지 않았다 한다. 자택 근무도 좋지만, 출퇴근의 노고만 제외하면 사무실에서 주는 집중력을 무시할 수 없다. 하루 10시간은 그 날의 과업을 쳐내기도 버겁기 때문이다. 집이 아닌 공간으로 나와야 집중이 되는 어릴적 부터의 습관으로 인해 도서관, 독서실, 카페, 학교, 사무실로 쏘다니게 된다. 이런 점을 활용해 회사는 큰 오피스에 100명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20~30명씩 5 분점으로 나누면 어떨까 생각했다. 시간도 겹치지 않는 선으로 맞추고, 출퇴근도 유동적으로. 게릴라같이 한 지점이 코로나에 잠식당하면 나머지 분점에서 일을 더 당겨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5개로 늘어난 사무실을 관리하는 자원과..

의식의 흐름 (회사에서 숙취에 쓴 글)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에 퍼졌다. 결혼도했고 애기도 생겼다. 작업실도 마무리 단계다. 다니는 회사는 휘청한다. 강남구에 신축 아파트를 계약하면서 부동산에 없던 관심이 조금 생겼다. 이번 바이러스로 인해 주식은 폭락하고 세계 경제는 마비되었고, 세상 사람들이 생활하는 방법이 달라졌다. 집에 격리가 되어야하거나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것이 권장되는 사회다. 원거리로 소통하고 집에서 일한다. 덕분에 영상이나 온라인 마케팅의 수요가 높다. 온라인 구매가 가파르게 상승세이며 이제 당연한 시대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뉴 노멀의 사회가 자리잡는다면 집이 서울이든 지방이든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서울 부동산에 대해 신경을 쓰다니, 2020년 나는 인생에서 가장 강한 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