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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os
1 조중균씨가 점심을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한 달이나 지나서 알았다. 내가 무딘 탓도 있겠지만 구내식당 테이블이 육 인용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차피 다 못 앉으니까 여기 없으면 다른 자리에 있겠지 생각했던 것이다. 해란씨는 조중균씨가 오늘만 점심을 안 먹은 것도 아니고 그것만 이상한 것도 아니라고 했다. “언니, 모르시겠어요?” 얘는 말할 게 있으면 핵심만 전달하지 뭘 이렇게 떠보듯이 물어? 한 달 전 신입으로 함께 입사한 해란씨는 그 나이치고는 신중하고 성실했지만 살가운 동생 느낌은 확실히 없었다. 하기는 안 그래도 해란씨와 난 가까이하기에 좀 뭐한 관계였다. 석연찮은 경쟁을 벌여야 하는 사이였으니까. 입사해서 파악해보니 회사에서는 일단 수습을 거친 다음 해란씨와 나 중에서 선택할 생각인 것 ..

차별화 전략을 잃어버린 브랜드가 망가지는 수순에 대해 친구가 공유해줬고 공감도 되고, 앞으로 조심하자는 마음에 스크랩해둔다. 마이클 포터의 '경쟁 우위 전략'에서 비용우위, 즉 가격 차별과 함께 한 축으로 다룬 것이 '차별화 전략'입니다. 글로벌 브랜드들이 압도적인 생산량을 토대로 무척 낮은 비용으로 저가 전략을 어느 컨텐츠 등 국내에 들여오고 있는 시점에서 국내 브랜드들도 가격으로 맞불을 놓을 것인지, 차별화된 특성으로 살아남을 것인지 결정해야 할 시기가 이미 지난 감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것이든 일관성 있게 밀어붙여야 한다는 것이죠. 항상 문제는 오도가도 못하는 어정쩡한 실행에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IMF 이후 글로벌 시장 개방에 따라 차별화라는 낭만이 있던 브랜드들은 어중간하면 다 사라지는..

결국 퇴사의 시기가 왔다. 3월 안에, 늦어도 4월 첫 주 안에 나가야 하는데, 안경 디자이너라를 뽑고 인수인계하고 나가야 한다. 생각보다 회사에 오래 있었고, 많이 배웠고, 엄청나게 많이 얻고 나간다. 자리도 남산 아래 위치한 볕 잘 들고 따듯하고 시원한 통유리 사무실에서 혼자 일 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 무엇보다 조용하고 환기 잘 되는 자리에서 대표가 아니면 건드릴 일이 없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직원으로서 성장할 한계는 선명했고, 익숙하고 편하기 보다는 더 큰 시장, 나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긴 가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그 기회가 왔다. 이제는 지금 다니는 회사가 강력한 한방을 통해 긴 기간 동안 또 그 동력으로 굴러갈 수 있는 구조..
지난주에 과제를 통과하고 이번주 마지막 면접이 남았단다. 얼추 찾아보니 들어가서도 인턴을 해야한다는데 지금 회사에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는 최고 대우를 박차고 가야하다니.. 모험이다. 잘 해야지 뭐. 딴 건 잘 모르겠고 면접을 핑계삼아 나의 가치관에 대해 잘 고민해보고 이 김에 정리를 해두는게 내 인생에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회사의 디자인 팀장을 만나는 일들과 과제, 면접 준비는 종종 푹 익어있던 나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몇 번의 미팅을 통해서 본 그는 안경 디자인에서 시작해서 패션 산업과 연관된 이 판을 진짜 좋아하네, 즐기는구나, 말이 통한단 생각에 자극이 됐다. 통하기 보단 나보다 넓은 시장에 있었으니 약간 생각하는게 다르겠지. 아무 생각없이 회사일에 집중해 있다가 그의 이야기를 들..

지난주에 상표권 등록했다. '아주' 장기적으로 보고 있는데 일단 고심에 고심 끝에 만든 이름이라 그런지 웬 이상한 브랜드에 뺏기지 않으려고 걸어둔 게 크다. 결에는 몇 가지 사전적 의미가 있다 '결' kyeol나무, 돌, 살갗 따위에서 조직의 굳고 무른 부분이 모여 일정하게 켜를 지으면서 짜인 바탕의 상태나 무늬성품의 바탕이나 상태 동양적인 이름을 선호하던 것도 있고, 나는 짧은 단어를 유독 좋아했다. 공예스러운 이름이라 같이하는 친구도 좋아했던 거 같다. 영어로 써도 이쁘고. 소재마다 텍스쳐가 다 다르지만, 이를 우리는 각자 맡은 파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결로 가꿔보기로 한다. 여기부터는 이름을 정하면서 어려웠던 점이다. 이름을 정하면서 둘의 생각을 투영하고 싶었다. 근데 술 마시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

오래간만에 쓴다. 1월부터 정말 바쁜 기간이 일단락되고 이번 주말을 끝으로 '일단' 한 숨 돌렸다. 회사에서 인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브랜드까지 늘어나고, 작년부터 기존 인원이 교체되면서 이상하게 바다의 부유물이 파도에 밀려들 듯 자연스레 나에게 일들이 밀려들어왔다. 그렇다고 그에 대한 대가가 더 생기지는 않았다. 자고로 책임이란 조금 더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흘러가 쌓이는 것이었다. 보통 조금 더 약은 부류의 직장인들은 그런 부유물이 본인에게 오지 않도록 손을 휘휘 저어 다른 곳으로 흘러가게 만들 뿐이었다. 갓난아기는 사랑스럽지만 나의 신체는 그 넘치는 에너지를 받아들이기에 그리 젊지 않았나 보다. 나의 퇴근 후를 아내가 최대한으로 배려를 해 줘도 우리의 피로가 해소되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두세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