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os
조중균의 세계 (단편소설) 본문
1
조중균씨가 점심을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한 달이나 지나서 알았다. 내가 무딘 탓도 있겠지만 구내식당 테이블이 육 인용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차피 다 못 앉으니까 여기 없으면 다른 자리에 있겠지 생각했던 것이다. 해란씨는 조중균씨가 오늘만 점심을 안 먹은 것도 아니고 그것만 이상한 것도 아니라고 했다.
“언니, 모르시겠어요?”
얘는 말할 게 있으면 핵심만 전달하지 뭘 이렇게 떠보듯이 물어? 한 달 전 신입으로 함께 입사한 해란씨는 그 나이치고는 신중하고 성실했지만 살가운 동생 느낌은 확실히 없었다. 하기는 안 그래도 해란씨와 난 가까이하기에 좀 뭐한 관계였다. 석연찮은 경쟁을 벌여야 하는 사이였으니까. 입사해서 파악해보니 회사에서는 일단 수습을 거친 다음 해란씨와 나 중에서 선택할 생각인 것 같았다. 구인 광고란의 O명은 최소수인 한 명이었던 것이다. 대학원도 다녔고 성인 단행본은 아니지만 아동서 편집을 맡은 적이 있으니까 일단은 내가 유리했다. 하지만 해란씨도 만만치는 않았다. 뭐랄까, 반짝반짝했다. 며칠 전 퇴근길에서 부장은 해란씨 아르바이트 경력이 장난이 아니라고 말했다.
“나도 학교 다니면서 별일 다 했지만 해란씨는 정말 고난의 행군이더라고. 요즘 애들 하듯이 어디 인턴, 공모전 이런 식으로 채운 것도 아니야. 노동, 말 그대로 노동 현장에서 뛰었다 이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 영주씨는 말 그대로 버젓한 경력, 응? 정식 회사에서 일한 경력으로 이 자리에 왔고 말하자면 팩에 든 고기지. 원래 생산할 때부터 정식 팩에 든 고기. 해란씨는 주먹고기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어. 목살 근처 아무 살이나 주먹구구식으로다가 막 썰다보니까 어, 제법 이게 어엿한 상품이 돼 있는 거 말이야. 주먹고기, 내가 비유가 이렇게 좋아. 주먹고기 좋아하나?
고기에 비유되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지만 주먹고기는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신촌 기찻길에 주먹고기 잘하는 데 있으니까 기다리라고. 언제 회식을 하긴 할 거야. 수습 끝나면 본부장이 한번 살 거야.”
“네…… 해란씨 성실한 게 알바 많이 해서 그렇군요. 그 나이답지 않게 속깊고 눈치도 빤하고.”
내가 말하자 부장은 그게 다 고생해서 그렇지, 했다.
“고생한 사람은 그렇게 딱 티가 나. 근데 재발라도 고생해서 재바른 건 매력 없어. 사람을 불편하게 하거든.”
해란씨는 조중균씨 이야기가 나오자 쉴 틈 없이 말을 쏟아냈다. 요약하자면 회사에선 왜 ‘그분’을 없는 사람 취급하느냐는 것이었다. 특히 조중균씨 나이가 마흔이 훌쩍 넘는데 직원들이 ‘조중균씨’라고 부르는 게 정말 이상하다고 했다. 조중균씨 나이가 그렇게 많았나. 삼십 대 중반쯤 됐을까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아무래도 직급이 없어서 그렇겠지.”
“직급 없으면 자기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사람을 그렇게 불러도 되는 건가요? 선배라고 해도 되고 선생도 있잖아요.”
“선생은 아니지. 선배도 애매하다. 나이 따라 선후배 정하면 김대리, 서대리도 조중균씨한테 선배라고 해야 해. 그런데 직급상 상사 아냐? 해란씨가 조직을 잘 몰라서 그래. 그렇게 하면 안 돼. 회사는 그런 거야.”
해란씨는 뭐라고 더 말하려다 삼키고 “언니, 그분은 사무실에서 마치 유령, 유령처럼 보여요”라고만 덧붙였다. 조중균씨는 교정 교열만 담당하는 직원이었다. 단행본팀이지만 상황에 따라 잡지나 교과서팀 업무도 맡았고 웹상에 올라가는 광고 문안이나 자료들의 감수도 맡았다. 그래도 그렇게 나이가 많은데 갓 스무 살 된 디자이너들까지 주유소를 가도 선생님, 사장님, 하는 판국에 그렇게 호칭에 인색해서야. 이런 경우는 대부분 윗사람들이 중재를 안 한 경우였다. 일단 정해지면 다들 지킨다. 왜냐면 그렇게 부르고 싶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는 게 더 귀찮은 일이니까.
해란씨 말을 들어서인지 그날부터 회사 풍경은 조중균씨를 중심으로 흘러갔다. 일단 조중균씨는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인사하며 사무실 문을 열었다. 인사는 우리를 향했지만 너무 작은 소리라서 누가 슬리퍼 신은 발이라도 움직이면 묻혀버렸다. 머리를 숙이기는 했지만 누구를 향하는지 각도가 항상 애매했다. 인사를 할 줄 모르는군, 나는 생각했다. 인사한 효과가 있으려면 이름을 딱 붙여야 한다. 나? 그래, 너, 바로 너한테 나, 인사했어, 분명히 했다, 잊지 마, 확인하는 것이다. 직장에서는 사소한 인사도 병기이고 기술인데 저 나이 되도록 사회 생활 헛했군, 헛했어. 비록 수습사원이지만 그런 조중균씨를 보니 어깨가 펴지며 어딘가 자신감이 붙었다.
조중균씨 자리에는 거의 컴퓨터 크기에 버금가는 국어사전이 있었고 그 사전의 한 대목을 펼쳐 읽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원고가 앞에 없어도 그러는 걸 보면 그냥 펼쳐서 읽는 것이었다. 듣기로는 아주 오랫동안 사전 만드는 회사에서 일한 걸로 아는데 사전을 또 읽다니, 기괴한 취미였다.
조중균씨는 소리에 민감했다. 헛기침을 하는 버릇이 있는 부장이 해어억, 하고 가래를 돋울 때마다 조중균씨는 파티션 뒤에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서대리의 뜬금없는 웃음이나 노래, 시 낭송 등도 그를 놀라게 하는 소리였다. 특히 서대리가 자기 전공을 십분 살려 프랑스 시나 상송을 혼잣말 아닌 혼잣말로 읊을 때면 거의 공포에 휩싸인 얼굴로 그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리곤 했다. 그래서 조중균씨는 원고를 볼 때마다 귀마개를 사용했다. 모두 의무처럼 웃어주어야 하는 부장의 농담도, “커피 한잔 드릴까요?”하는 디자이너의 친절도, “식사들 합시다”하는 과장의 제안도 모두 조중균씨에게 해당하지 않는 건 단순히 귀마개 때문일지도 몰랐다.
조중균씨가 회사 사람들 사이에서 외톨이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모든 인간관계가 다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업무시간에도 휴대전화 벨은 자주 울렸고 그러면 조중균씨는 복도 계단에 서서 소곤소곤 다정하게 통화하곤 했다. 달래는 것 같기도, 위로하는 것 같기도, 무언가를 약속하는 것 같기도 한 목소리였다. 애인인가 했는데 언젠가 전화를 끊으며 “형수, 오늘은 술 그만 먹고”해서 애인은 아니구나 싶었다. 가족 중에 알코올에 의존하는 형수님이 있는지, 친구 이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당부의 말조차도 아주 다정했다. 통화를 마치고 나면 조중균씨는 담배를-금연 빌딩이니까 불은 붙이지 않고-떨어뜨릴 듯 말 듯, 떨어뜨릴 듯 말 듯 물고 생각에 잠기다가 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생각에서 책상으로 옮겨오는 그 잠깐이 조중균씨가 가장 생기 있어 보이는 때였다.
“언니, 그분 씨를 써요.”
며칠 뒤 점심 산책을 하는데 해란씨가 다시 말했다. 시를 쓴다고? 그런 걸 어떻게 알지?
“아, 해란씨 그분이랑 친해졌구나.”
“아니요, 언니. 아침에 가끔 사무실 청소를 하는데요. 종이들이 있더라고요. 시가 쓰여 있고요.”
아침에 늘 일찍 오더니 청소도 하는구나. 그런 거 소용없는데. 그런 성실성을 높이 사주던 낭만적인 상사들은 이미 나이를 먹어 은퇴하고 요즘 상사들은 그런 것, 바지런한 청소 아줌마를 고용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그런 영역 말고 자신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줄 수 있는 직원들을 원한다. 대개는 외국어. 나는 괜히 일찍 나와서 그러지 말고 외국어 강의나 들으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해란씨에 따르면 조중균씨는 매일 똑 같은 시를 쓴다고 했다. ‘지나간 세계’라는 제목이었고 “어머니, 깃대를 들고 거리를 걷는다”로 시작해 “우리가 버린 꽃은 말이 없네”로 끝난다는 것이었다. 밑줄 쳐가며 퇴고도 하는데 언제나 쓴 사람 이름만 고쳐져 있다고도 했다. 어제 쓴 시를 오늘 읽고 쓴 사람 이름만 바꾸어놓는다? “그럼 그 시가 자기가 지은 시가 아니네.” “아니에요, 언니. 며칠 전 물었더니 내가 쓰기는 했지만 내 시는 아닙니다, 하던걸요?”자기가 쓴 시이시면서 자기 시는 아니라니. 내가 낳기는 했지만 내 딸이 아니라든가, 물건은 훔쳤지만 도둑질은 아니라든가, 하는 식이었다.
2
오 주쯤 지나자 해란씨와 나에게도 업무가 떨어졌다. 개정판 작업이었다. 어느 노교수의 오래된 저작이었는데 교재로 쓰겠다고 오백 부만 작업하는 것이었다. 부장은 조중균씨를 잘 달래서 저자 뜻대로 개강 일자에 맞춰 책을 내라고 말했다.
“그 친구 원래는 편집자로 채용됐는데, 난 처음부터 반대했다고. 경력이 이쯤인데 이 정도면 값싸다고 회사에서 들였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나이 많은 사람을 왜 뽑아, 닭으로 치면 다 죽게 생긴 노계 같은 사람을. 싸고 좋은 게 어디 있나? 노계가 질기긴 또 얼마나 질긴가? 고집이 세서 커뮤니케이션이 안 돼. 아차 싶어 자르자니 좀 있으면 쉰 되는 사람을 어디로 내쳐? 내가 교정직으로 옮기자 했지. 그거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니까. 옜다, 너 처박혀서 그거나 해라, 했더니 좋아해. 자기는 그게 편하다고 해. 삼 년을 있어도 조중균씨는 융화가 안 돼. 문제가 많거든, 나기 세계가 너무 강하거든.”
그렇게 해서 셋의 작업이 시작되었다. 간단한 일이었지만 해란씨와 나에게는 아주 중요했다. 첫 실무였고 아마 이 작업으로 우리는 평가받게 될 테니까. 부장은 해란씨가 첫 교정지를 보고, 조중균씨가 그 다음 교정지를, 나는 최종 확인만 하라고 지시했다. 해란씨가 교정보는 데까지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조중균씨에게 교정지가 넘어가던 날, 드디어 조중균씨와 대면했다. 왠지 긴장됐다. 조중균씨에 대해서 아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왜 떨리나. 하긴 아예 모르는 사람과 가는 것보다 좀 아는 사람과 동행하는 것이 더 어색하고 긴장되니까. 작업 방향을 설명하다보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점심 먹으면서 마저 이야기 하자고 하자 조중균씨가 안 된다고 했다.
“왜요? 점심 원래 안 드세요?”
“네.”
아, 그렇구나, 자발적으로 점심을 안 먹는 거였구나. 사람들이 따돌려서 그런 게 아니라. 그럼 그렇지, 아무리 세상이 각박해져도 예의상 지켜지는 룰이 있는데. 사람 밥도 못 먹게 은근히 따돌리는 것, 그렇게 코드와 선택을 드러내는 것이 더 피곤한 일 아닌가.
“점심 안 먹는 게 몸 가볍긴 해요. 건강 챙기시는구나.”
“아닙니다. 먹고 싶은데 참습니다.”
그때 거울이 있다면 내 표정이 어떤지 확인하고 싶었다.
“왜요? 왜 먹고 싶은데 참아요?”
“식대, 아끼려고 그럽니다.”
“무슨 식대를 아껴요? 회사에서 운영하는 식당이고 무료잖아요.”
“무료 아닙니다. 안 먹는다고 하면 돌려줍니다. 구만, 육천원.”
조중균씨는 말 중간에 쉼표를 넣어 이상하게 끄는 버릇이 있었다.
그나저나 연봉에 포함된 식대를 무슨 수로 받아냈다는 말인가?
“구만육천원이면 크다.”
옆에서 해란씨가 관심을 보였다. 조중균씨는 손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이마에서 구레나룻까지, 인중과 목까지 마치 거기에 그런 것들이 있는 걸 확인하듯. 그리고 당연한 수순처럼 휴대전화가 울렸고 조중균씨가 전화를 받아 “형수야, 잠깐만”하고 끊었다. 야야, 나 배고프다, 하는 남자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새어나왔다. 형수는 친구 이름이구나, 하기는 자기 형수님이랑 저렇게 자주 통화할 리는 없으니까. 그런데 정말 점심을 선택하지 않으면 식대를 돌려받을 수 있는 건가? 우리가 수습이라서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건가?
“네,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간단한 인증, 필요하지만요.”
조중균씨는 점심을 먹지 않겠다고 한 사람은 자신이 처음이라 절차를 만들기까지 좀 혼란이 있기는 했다고 했다. 대리에게 말하자 과장에게로 올라갔고 부장에게로, 최종적으로는 본부장에게로 넘겨졌다고 했다. 그렇게 팔 개월 만에 조중균씨는 점심을 먹지 않을 권리와 식대를 돌려받을 권리를 의논하기 위해 본부장에게로 불려갔다. 본부장은 조중균씨의 말을 끝까지 듣고는 조중균씨의 뜻은 존중하지만 선례가 없고 절차가 없어서 말이야, 하고 타일렀다.
“자네가 식당에서 점심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느냔 말이지. 우리 회사 직원은 인쇄소까지 삼백 명이 넘네. 자네를 모욕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문제로 회사에 분란 일으키고 회사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것 자체, 고작 점심값 가지고 시끄럽게 구는 사람이 우리 본부에 있다는 것 자체가 내 얼굴을 깎는 일이야. 그래도 나는 묻겠네. 점심을 먹지 않겠다고 하지만 자네가 정말 구내식당에서 밥 먹지 않는 걸 어떻게 증명하나? 배도 고프고 나가서 먹기도 귀찮을 때 생쥐처럼 몰래 들어와 한쪽 구석에서 점심을 해결하지 않는다고 말이야. 만약 삼백 명 넘는 사람들 사이에 숨어 부당한 이익을 취한다면 말이야.”
본부장도 조중균씨 못지않게 괴팍한 성미인 모양이었다. 그런 걸 일일이 대응해주고 앉았다니. 하지만 해란씨는 “어머, 어떻게 그런 말을”하면서 흥분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조중균씨는 본부장 말이 하나도 화가 나지 않았고, 정말 그렇기도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걸 만들었지요.”
조중균씨가 셔츠 앞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수첩에 껴 있던 만 원짜리 몇 장이 같이 떨어졌고 조중균씨는 지폐를 다시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수첩에는 파란 볼펜으로 가로 세 칸, 세로 세 칸이 그려져 있었다. 날짜가 있고 그 옆에는 “나는 밥을 먹지 않았습니다”라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마지막 칸은 확인자가 서명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조중균씨는 점심시간에 식판 대신 그 수첩과 볼펜을 들고 정수기 옆에 서서, 본부장이 식사하러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첫날에는 본부장이 오지 않아서 할 수 없이 조중균씨를 내내 지켜본 식당 아줌마에게 사인을 받았다. 2012년 11월의 첫 칸, “나는 밥을 먹지 않았습니다”라는 문장 옆에 최대한 성의 있게 쓴 “김애자”라는 사인이 보였다.
둘째 날에는 본부장이 식당으로 내려왔고 조중균씨가 다가가 수첩을 내밀었다. 조중균씨는 사인을 받은 뒤에도 올라가지 않고 식당 문을 닫을 때까지 선 채 자신이 정말 점심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본부장이 사인을 하면서 “사인하고 나 나가면 그때 밥 먹는 건 아니겠지?”지적했기 때문이었다. 열두시 오십분이 되면 조중균씨의 것을 제외한 이백구십구 개가량의 식판과 오백구십팔 개가량의 젓가락들이 대형 세척기에서 돌아가고 식당 아줌마들이 청소를 시작했다. 아줌마들은 “배고플 텐데 누룽지 끓인 거라도 좀 줄까?”매번 물었다. 물론 조중균씨는 사양했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건 먹을 수, 없으니까요.”
“그게 왜 회사에서 제공하는 거야? 우리가 먹으려고 끓이는 건데 우리가 주니까 우리 몫에서 주니까 우리 것이지.”
해란씨가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조중균씨가 가엾다기보다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람과 무려 한 달간 씨름한 본부장에게 더 경악했다. 보아하니 교정으로 밀려난 게 그때부터인 모양이었다. 본부장도 이런 직원과 마주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는지 페이지를 넘길수록 ‘姜’이라는 사인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 대신 ‘김애자’’오은혜’’명숙희’같은 이름들이 수첩을 채우더니 마침내 12월이 되자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수첩은 빈칸으로 남았다.
3
원래 사흘로 잡혀 있던 조중균씨의 작업 기간은 일주일로, 다시 열흘로 늘어났다. 스트레스로 얼굴 전체가 붓는 느낌이었다. 풍선이나 애드벌룬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이러다 뻥, 하고 터지면 어쩌나 초조했다. 노교수는 책이 제때 나올 수 있겠느냐고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해왔다. 그런 불안은 시도 때도 없이 노교수의 일상을 뒤흔드는지 아침을 먹다가, 한의원에서 침을 맞다가, 취미인 국궁을 하러 갔다가, 심하게는 등산을 하러 갔다가도 전화를 걸어왔다. 안 그래도 귀가 어두워 통화가 어려웠는데 북한산 어딘가에서 거는 전화는 자꾸 끊겼다. 교정이 늦어져서요, 하면 교정볼 게 뭐가 있느냐, 니들이 한국사에 대해 뭘 아느냐, 건방 떨지 말고 인쇄기나 돌려라, 하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하지만 조중균씨는 말을 듣지 않았다. 책상 주변에는 어디선가 구해온 논문집들과 ‘역사용어사전’ ‘한국민속대사전’ ‘조선실록해제’ ‘일한사전’ 들이 쌓여만 갔다. 조중균씨가 잡아낸 오류들을 보면 잡아내야 할 만하기도 했다. 그러니 일이 늦어진다고 마냥 화를 내기에도 애매했다. 조중균씨는 매일 야근했다. 하루에 겨우 예닐곱 장의 교정지가 넘어올 뿐이라서 정작 나는 정시에 퇴근했다. 내일 봐요, 하고 내가 사무실을 나가면 조중균씨는 일어나 자기 자리만 남기고 사무실 형광등을 모두 껐다. 그리고 그런 사무실의 어둠을 아주 따뜻한 담요처럼 덮고 원고의 세계로 빠져들어갔다.
4
해란씨는 그사이 다리를 다쳐 목발에 의지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집에서 반찬을 하다가 칼이 발등으로 떨어져내렸다고 했다. 회사는 오층 건물이었고 심지어 엘리베이터도 없었다. 해란씨는 땀을 뻘뻘 흘리며 하루 내려와 먹더니 그다음부터는 점심시간에 사무실을 지켰다. 이번 기회에 다이어트를 좀 하겠다고 했다. 점심을 먹고 돌아와 보면 해란씨와 조중균씨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해란씨는 자기가 원고 교정을 제대로 보지 않아서 조중균씨 일이 늘었다고 미안해했다. 그래서 조중균씨가 교정을 보면 그 교정지를 다시 읽으면서 자기가 무얼 놓쳤나 확인하곤 했다. 조중균씨는 회사의 다른 사람들과는 거리가 분명했지만 해란씨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훌륭한 사수와 후임처럼, 선배와 후배처럼, 때로는 오누이처럼 점심시간을 보냈다.
해란씨는 아예 굶는 건 안 되겠는지 간식을 싸오기 시작했다. 오븐 없이 직접 구웠다는 빵이나 소시지, 과자 같은 것이었다. 그날은 어디서 났는지 떡을 싸왔고 사람들이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오자 하나씩 먹으라고 권했다. 부장까지 그러면 어디 한번 맛볼까, 하며 탁자로 모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파티션 뒤에서 조중균씨가 일어나 중앙의 탁자로 왔다.
“모싯잎떡 이거 비싸다고, 인절미랑은 다르다고. 우리 막내가 돈썼구먼. 해란씨 다리는 어떤가. 칼날이 아니라 칼등이었으니 천만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수습도 못 마쳤을 것 아니야. 다리 한쪽 못 쓰는 닭은 어떻게 되나? 치킨 런 할 수 있나? 바로 잡혀서 닭튀김이지. 회사원들은 아픈 것도 죄야. 조중균씨도 잘 먹으라고, 오탈자만 쪼지 말고 모이도 좀 쪼아먹어. 병든 닭은 어떻게 되나? 치킨 런 할 수 있나? 바로 잡혀서 닭튀김이지.”
말끝에 떡을 입에 넣던 부장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해란씨가 잠깐 자리를 뜬 사이, 서대리가 먹지 마요, 상했어, 했다. 그러고 보니 다들 젓가락으로 들고만 있을 뿐 먹고 있는 사람은 조중균씨뿐이었다. 나는 탁자에서 좀 떨어져 있다가 떡을 베어물었다. 아주 상한 건 아니지만 떡에서는 쉰내 같은 것이 났다. “그냥 냉장고 냄새 아닌가?””아니야, 쉬었어, 그냥 맛있다고 하고 알아서들 처리해요. 성의 있게 가져왔는데.” 서대리가 말했다. 모두들 떡을 내려 놓는데 조중균씨 혼자만 계속 먹고 있었다.
“조중균씨 먹지 마, 기초 체력 없는 사람이 갈락 말락 하는 음식 먹다가는 아주 골로 가네. 봐야 할 원고가 원투쓰리 기다리고 있는데 어쩌려고 그러나?”
“괜찮습니다. 아주 간 건 아니에요.”
“아주 간 게 아니라니, 아주 갔어. 나이가 몇 개인데 그것도 구분 못해? 그리고 그 교수가 책 나오기를 아주 학수고대하네. 나이가 칠십이 다 됐는데 책 기다리다가 다 죽게 생겼어. 살살 보고 그냥 넘겨, 저자가 고칠 게 없다는데 뭐하느라 붙들고 있느냔 말이지. 어? 이 사람, 그만 먹어.”
부장이 떡을 싼 비닐을 와락 잡았다.
“아주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해란씨가 사무실로 돌아오자 직원들은 “해란씨 잘 먹었어” 하면서 젓가락을 놓고 사라졌다. 해란씨는, 비닐봉지를 움켜잡고 먹지 말라고 하는 부장과, 입을 오물거리면서도 여전히 떡을 내놓으라고 하는 조중균씨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원, 쉰 떡에 욕심은. 하여튼 원고 빨리 보게.”
부장이 자리를 뜨고 조중균씨는 비닐봉지를 펼쳐서 남은 떡을 집었다. 그리고 마치 유령처럼 씹는 소리도 거의 내지 않고 천천히 먹었다.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조중균씨는 그렇게 조용히 먹고 고요히 포만감을 느꼈다.
5
화가 머리끝까지 난 노교수가 사무실을 찾아왔다. 회사 인터폰으로 여기 정문이네, 하고 연락하더니 그 많은 계단을 눈 깜짝할 사이에 올라와 들이닥쳤다. 이 주째 미뤄진 작업 때문에 내 정신은 이미 남동풍을 타고 먼길을 떠난 뒤였다. 남동풍을 타면 북극해로 갈 수 있다고 들었다. 나는 그 북극의 난폭한 곰처럼 마구 발톱을 휘둘러 연어나 물개 따위를 잡아먹고 싶었다. 노교수가 돌아간 뒤 부장은 오늘부터 조중균씨 작업량을 시간대별로 확인하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일을 다시 해란씨에게 맡겼다. 부장은 언젠가부터 지시 사항을 나만 불러 따로 이야기했고 지금 진행중인 책뿐 아니라 가을과 겨울의 작업들에 대해서도 의논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나는 해란씨의 경쟁자가 아닌 상사가 되어 있었다. 해란씨는 내가 말한 문서를 만들어 가져왔다. 날짜, 시간, 작업 내용, 확인, 이렇게 칸이 나뉘어 있었다. “좋아.”내가 오케이했는데도 해란씨는 무슨 말을 더 하려는지 머뭇거리다가 그냥 돌아섰다.
오후가 되자 조중균씨가 천천히 걸어 내 앞에 섰다. 배앓이를 한 탓인지, 야근 때문인지 조중균씨는 더 마르고 해쓱해 보였다.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이고 있어서 마치 거대한 물음표 같았다.
“다른 사람 말고 영주씨와 저 둘이서, 확인, 하지요.”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나는 의자를 끌어다 좀더 가까이 갔다.
“뭐라고요?”
조중균씨는 물기가 다 빠져나가버린 푸석한 얼굴을 손으로 쓸었다. 그리고 셔츠 앞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거기 끼어 있던 만원짜리들이 나풀거리며 내 무릎 위로 떨어졌다. 이만원이었다. 조중균씨는 수첩을 손바닥 위에 올리고 뭔가를 적은 다음 내밀었다. 날짜 옆에 괄호로 “두시 이십분”이라고 적혀 있고 “나는 나태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조중균씨가 사인하는 칸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 어떤 용도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는 듯이 설명은 없었다. 물론 거기에 뭐라고 써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이름을 적으면 됐다. 하지만 적을 수 없었다, 적고 싶지 않았다.
“왜 적지 않습니까?”
조중균씨는 비난도 힐난의 기미도 없이 다만 아주 지친 듯이 물었다.
“싫어요.”
“왜 적지 않습니까?”
나는 적고 싶지 않았다. 나는 굶은 사람을 정수기 옆에 한 시간 동안 세워놓은 본부장과는 분명 다른 사람이니까. 그런 일들과는 무관한 사람이니까.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조중균씨는 가만히 서서 신발 코만 내려다보다가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안도감이 들었다. 그런데 한 시간 뒤 조중균씨는 다시 내 앞에 와서 수첩을 내밀었다. 차라리 화를 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건방지다고, 너랑 나랑 나이 차이가 얼마인지 아느냐고 욕을 하지. 이건 무슨 사람 피 말리는 짓인가. “나는 나태하지 않습니다”라는 문장이 수첩의 두번째 칸에 쓰여 있었다.
“왜 이러세요? 저한테 항의하시는 거예요?”
“항의하는 것 아닙니다.”
“그럼 뭐예요?”
“확인을 원하는 겁니다.”
조중균씨는 물러서지 않고 볼펜을 내밀었다. 안 해요, 안 해, 손사래 치다 볼펜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화가 나서인지 당황해서인지 얼굴이 달아올랐다. “뭐야, 저 팀, 살살 해.”서대리가 요령 있게 한마디 하면서 사무실의 긴장을 깼다. “또 수첩인가, 무슨 일이야? 이번에는 뭐가 문제야?” 부장이 본격적으로 한마디 하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가 할게요. 제가 해도 되죠?”
해란씨가 볼펜을 집어서 절뚝거리며 내 자리로 왔다. 그리고 “나는 나태하지 않았습니다”라는 문장을 잠깐 읽고는 옆에다 강해란, 이라고 적었다.
6
그리고 그날 저녁 해란씨가 회식을 하자고 했다. 셋이서. 해란씨 친구가 한다는 카레집에서 카레를 먹고 어색하게 맥주를 마셨다. 조중균씨는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어도 자연스럽게 자기 세계로 가버리는 사람이었다. 그나마 해란씨가 자꾸 말을 시켜서 그의 관심을 카레집 테이블로 돌아오게 했다. 해란씨는 조중균씨에게 이만원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이만원? 조중균씨가 머뭇거리자 해란씨는 “영주 언니는 모르잖아요” 하고 졸랐다. 조중균씨는 맥주를 한 병 더 주문하면서 셔츠 앞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냈다. 아까 오후에도 긴장 속에서 확인했듯이 이만원이었다.
학생 때 조중균씨는 데모를 하다가 경찰서에 붙들려간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다 며칠 만에 풀려났는데 형사가 목욕이나 하고 들어가라면서 오천원을 셔츠 주머니에 꽂아주었다는 것이다. 조중균씨는 그게 참을 수 없이 모욕적이었다고 말했다. 목욕하고 들어가란다고 모욕을 느끼다니. 아무튼 그뒤로 조중균씨는 셔츠 주머니에 늘 돈을 가지고 다녔다. 그때 그 형사와 마주치면 이자까지 해서 갚을 생각으로 말이다. 그러니까 이만원은 모욕을 되갚겠다는, 복수를 잊지 않겠다는 일종의 증표였다.
“형사 얼굴 기억해요?”
“기억합니다.”
“거짓말 같은데.”
“정말 기억합니다.”
아무렴 그러시겠지. 해란씨는 “꼭 만나게 될 거예요, 정말이에요”하며 용기를 주었지만 나는 그런 사소한 복수가 그리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의무적으로 한 시간 동안 맥주를 마시고 나오는데 조중균씨가 한잔 더 하겠느냐고 물었다. 한잔 더, 라니? 조중균씨가 우리를 데리고 비보이 극장과 유명 연예인이 한다는 실내 포장마차와 라디오 방송국을 지났다. 오랜만에 이렇게 걸으니까 좋다고 해란씨가 목발을 짚으면서 말했다. 정말 회사원이 된 것 같아요, 회식을 다 하고.
조중균씨가 들어간 집은 철제로 된 미닫이문이 달려 있는, 술집인지 그냥 개인 공간인지 알 수 없는 곳이었다. 문에는 파란색 코팅지가 붙어 있고 직접 쓴 듯한 글씨로 지나간 세계, 라고 쓰여 있었다. 해란씨가 그 글자를 만지면서 “언니, 봐요”했다. 조중균씨가 매일 적고 매일 퇴고한다던 시의 제목이었다. 가게에서는 파마머리 남자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우리를 맞았다. 테이블은 하나밖에 없었고 의자도 세 개뿐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딱 맞게 왔네요, 했더니 조중균씨는 당연하다는 듯이 세 명이 아니면 데려오지 않지요, 했다.
맥주를 마시는 동안에는 가게 주인이 주로 떠들었다. 주인은 자기를 형수씨라고 부르라고 했다. 아, 이사람이 형수구나. 형수가 이름인가 했더니 한때 사형수였다고 했다. 농담인가 진짜인가 생각하는데 막상 자기는 그렇게 말하고 킬킬 웃었다.
대화의 주제는 주로 형수씨가 좋아하는 텔레비전 드라마 이야기였다. 아침 드라마에서 종편 드라마까지 형수씨가 챙겨 보는 드라마는 스물두 편이나 됐다. 형수씨는 드라마는 스물두 편인데 스토리는 다 거기서 거기라서 나중에는 형란이랑 바람파운 놈이 재수인지, 영수인지, 영옥이를 괴롭힌 사람이 어머니인지, 시아버지인지, 내연녀인지, 이복동생인지, 지금 쟤가 쟤 딸이 맞는지, 아니면 쟤가 딸이 아니라 사실은 재 딸이었는지 헷갈린다고 했다. 그래봤자 쟤가 쟤랑 합법적으로 자려고(결혼은 그런 거라고 했다) 쟤는 쟤 돈을 합법적으로 쓰려고(결혼은 또 그런 거라고 했다) 쟤가 쟤를 시켜서 훼방을 놓는 거(사람 사는 게 다 그렇다고 했다)라고 했다.
자꾸 마셔서 그런지 나는 서서히 이 키치적인 술집에 적응해들어갔다. 테이블에 놓인 김치찌개처럼 자글자글 끓는 분노랄까, 히스테리랄까, 하는 것이 은근히 느껴졌다. “그렇게 냉소하면서 왜 봐요. 고상하게 예술영화나 볼 것이지” 내가 말하자 형수씨가 “그 재밌는 걸 왜 안 봐? 그래도 거기에는 드라마가 있잖아”했다.
조중균씨는 우리를 왜 여기까지 데려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말이 없었다. 낮에 있었던 일을 사과하거나 복기하거나 할 생각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형수씨가 맥주를 꺼내오더니 조중균씨에게 돈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조중균씨는 말없이 지갑을 꺼내서 팔만원쯤을 건네주었다. 화제는 각자의 이름 이야기로 넘어갔다. 해란씨 이름은 실향민인 할아버지가 해란강을 그리워하면서 지은 이름이라고 했다. 내 이름에는 특별한 사연이 없었고 조중균씨 사연은 형수씨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얘가 이름 때문에 망하고 이름 때문에 산 애야. 그야말로 드라마가 있단 말이지.”
저렇게 조용하고 고요한 사람에게 드라마가 있다니. 형수씨는 노가리를 구워서 올려놓더니 “내 한번 얘기해줘요?”했다. 조중균씨 이야기인데도 정작 조중균씨는 말이 없고 형수씨만 무성영화의 변사처럼 신이 나 있었다.
형수씨와 조중균씨는 같은 대학에 다녔는데 그 당시 굉장히 인기 없는 역사 교수가 하나 있었다고 했다. 수업시간의 반 이상을 야당과 ‘데모대’욕하는 데 쓰는, 청년들과는 도무지 ‘코드’가 안 맞는 교수였다. 필수라서 신청은 했는데 수업에는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문제는 유급은 하고 싶지 않다는 데 있었다. 유급은 정말 안 된다. 가난하고 군대도 가기 싫은데 유급하면 돈 날리고 군대도 가야 하니까. 그런데 마침 시험에 응시만 하면 점수를 준다는 소문이 들렸다. 이게 무슨 일인가, 과연 그런가, 의심하면서도 모두들 우르르 시험을 보러 갔다. 개중에는 무슨 과목 시험인지도 모르고 휩쓸려 갔다가 자기가 신청한 과목이 아니라는 걸 알고 애석해하며 돌아간 친구도 있었다고 했다.
강의실로 들어가자 감독관이 빈 종이를 한 장 내밀었다. 소문대로 칠판에는 시험문제가 적혀 있지 않았다. 이름만 적으라고 감독관이 말했다. 단, 시험기간이 끝날 때까지는 먼저 나갈 수 없었다. 학생들이 이름을 적고 나니 시간은 그대로 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나가지 말라고 했으니 그 시간을 어떻게든 보내야 했다. 누군가는 책상에 엎드려 잤고 누군가는 무료하게 볼펜을 돌렸고 누구는 노래를 흥얼거렸고 누군가는 시험지 귀퉁이를 찢어 껌처럼 씹었다. 그리고 여기 빈 종이 앞에서 무언가를 가만히 생각하는 조중균씨가 있었다. 왜 문제가 없지, 하고.
조중균씨는 아무것도 적지 않아도 되는 시험에 대해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얻는 점수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여름이 가까운 교정에서 다당다당다당 하는 꽹과리 소리가 들려왔다. 조중균씨 귀에는 왠지 그것이 나 가 나 가 하는 소리로 들렸다. 쿵쿵덕쿵덕 쿵쿵덕쿵덕 장구 소리가 들려왔다. 조중균씨 귀에는 왠지 그것이 뻑뻑뻐꾸기 뻑뻑뻐꾸기라고 들려왔다.
“왜 문제가 없는 겁니까?”
조중균씨가 물었다.
“이름 적기가 시험이야, 이름만 적으면 돼.”
감독관이 조중균씨의 어깨를 툭 치며 지나갔다.
아무것도 쓰지 않고 이름만 적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얻어지는 형태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조중균씨는 부끄러웠다. 여기에 이름을 적고 가만히 기다리라는 교수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조중균씨는 이름을 쓰지 않고 빈 종이에다 무언가를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감독관이 주먹으로 책상을 노크하듯 두드렸다.
“이 친구, 이름만 적으라니까.”
다시 빈 종이가 왔다.
“이 친구, 다른 문장을 적으면 안 돼. 이름만 적어, 이름만 적으면 점수 준다니까.”
또 빈 종이가 놓였다. 조중균씨는 다시 볼펜을 잡았다. 나중에는 친구들까지 “이름만 적어, 중균아, 유급하면 군대 간다”하고 말렸다. 하지만 조중균씨는 문장을 끝까지 적었고 마지막 순간에도 이름은 적지 않았다.
“그렇게 멋있는 놈이야, 얘가. 아주 난놈이야. 와, 끝까지 이름을 안 적는 놈이야.”
형수씨는 오래전 일인데도 아직도 흥분이 되는지 그런 놈이야, 놈이야, 하면서 조중균씨를 껴안았다. 손목이 아주 이상한 각도로 꺾여서 나는 그제야 형수씨가 의수를 끼고 있다는 걸 알았다.
“뭘 적었는데요?”
“시였습니다.”
조중균씨는 맥주잔을 들었다 놓으면서 아주 잠깐 웃었다. 마치 꽃이 지듯 조그마한 입술이 펴졌다가 다시 오므라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해란씨가 물었다. “망했지, 유급했지, 군대 갔지, 사고 났지.”형수씨는 아까 드라마 줄거리를 말할 때처럼 좀 새침하게 대답했다. “이름 덕분에 살기도 했다면서요?” 내가 묻자 “아, 성공!”하며 형수씨가 파리채로 찰싹 벽을 때렸다.
그때 그 시험장에서 쓴 시 제목은 ‘지나간 세계’였다. 형수씨 말로는 그 당시 집회나 학회실이나 엠티에서 어떤 시보다도 자주 낭송됐다고 했다. 그런 ‘전단시’들은 사람들을 선동하는 효과가 있어서 그런 게 없으면 데모고 뭐고 아무것도 안 되는데 조중균씨의 ‘지나간 세계’야말로 그런 불쏘시개 역할을 잘해주었다는 것이다.
“아, 그래서 조중균씨가 유명해졌구나.”
전철 끊길 시간이 되어서 나는 얼른 결론을 냈다.
“아닙니다.”
조중균씨가 불콰해진 얼굴로 나를 건너보았다. 노가리 채가 입술에 붙어서 떨어질락 말락 했다. 조중균씨는 그 시는 자기가 썼지만 자기 시는 아니라고 했다.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든 자기 이름을 붙여 자기가 쓴 것처럼 연단에서, 광장에서, 거리에서 낭송할 수 있었으니까.
“나도 읽었어. 격해지면 막 울면서 읽고 취해서 읽고 좋아서 읽고, 아직 내가 쓴 줄 아는 사람들도 많을걸?”형수씨가 말했다. “나쁘다. 그러면 도용이잖아요.”내가 그렇게 툭 던지자 형수씨는 흥분했다. “얘 좀 봐라, 우리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았어. 시는 그런 게 아니었어. 중균아, 얘들이 모른다, 우리 세계를 몰라.” “우리도 알아요.” 해란씨가 발끈하며 말했다. “알긴 뭘 알아? 니들은 모른다, 몰라.” “해란씨는 압니까?” 조중균씨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어딘가 좀 젖은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알아요. 안다니까요.” 하지만 형수씨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너네 이제 집에 가라. 우리 자야 하니까”했다.
뭐야? 그러면 조중균씨와 형수씨가 여기서 사는 거였나? 가게 안을 둘러봤다. 창고인지 방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작은 문이 하나 있긴 했다. 나는 해란씨를 데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중균 씨는 술에 취했는지 어쨌는지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갈게요.”
정말 화가 났는지 형수씨는 답이 없었다. 저렇게 기분이 순식간에 변하는 사람과 웬만해선 표정 변화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친구가 되었을까.
택시를 타고 해란씨를 집에다 내려주었다. 해란씨는 뭔지 모르겠는데 참 슬프다고 훌쩍거렸다.
“알바도 그렇게 많이 했다면서 마음이 왜 그렇게 약해.”
“집에선 안 그랬는데 서울 올라오면서 완전 울보 됐어요.”
“집이 어디랬지?”
“옥천이요. 어, 처음이다.”
“뭐가 처음이야?”
“언니가 저한테 그런 거 묻는 거요.”
“그런 거 뭐?”
“개인적인 거요.”
나는 할말이 없어졌다.
“근데 아까 안다고 했잖아? 해란씨, 뭘 안다는 거였어?”
“안다고요? 아, 그때…… 뭔지는 몰라도 알 것 같기는 했어요.”
“뭘?”
“아무튼, 그분들 세계를요.”
택시에서 내린 해란씨가 목발을 짚고 올라가는 모습을 나는 지켜보았다. 해란씨는 좀 가다가 서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리고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꽃 한 송이, 고양이 한 마리 없는데 뭘 찍나. 나는 그 어두운 편을 같이 바라보다가 “가요, 아저씨”하고 택시를 출발시켰다.
7
회식은 신촌 기찻길에서 있었다. 부장이 말했듯이 주먹고깃집에서였다. 오늘의 주인공이니 본부장 앞에 앉으라고 해서 그 자리에서 열심히 고기를 구웠다. 본부장은 상상했던 것보다는 인상이 좋았고 그래서 기분이 더 가라앉았다. 테이블에는 해란씨도 없었고 조중균씨도 없었다. 조중균씨는 교정 기한을 한 달이나 넘겨서 회사에 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직무 유기, 태만이라는 명목으로 해고되었다. 소송이나 일인 시위를 벌일지도 모른다며 회사는 내게 경위서도 받았다. 경위서는 부장이 썼고 나는 거기에 사인만 했다. 그렇게 해서 회사에서 채용한 직원 수는 한 명도, 두 명도 아닌 말 그대로 ‘0’명이 되었다.
지난여름 동안 아무도 조중균씨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으면서 조중균씨가 사라지자 모두들 조중균씨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들 조중균씨에게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모두가 기억하는 모두의 조중균씨가 있었다. 서대리는 프랑스 유학 시절에 사르트르의 묘지를 찾아가곤 했는데 조중균씨가 거기 죽치고 앉아 있던 ‘길 위의 방랑객’과 무섭도록 닮았다고 했다. 그는 늘 거기 앉아서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작은 수첩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왼손을 움직여 단어 하나를 반복해 쓰곤 했다는 것이다. “조중균씨도 왼손잡이였잖아요”조중균씨가 왼손잡이였던가? 기억해봤지만 생각나지 않았다. 도플갱어인가, 누군가 말했다. “손가락 마디가 두어 개 없었잖아.” 또 누군가 말했다. “아예 손가락 하나가 없었잖아.” “아니, 그냥 마디 두 개가 없었어요.” “삼년간 뭘 봤어? 왼손 약지가 통째로 없었는데.” “그 수첩에는 뭐라고 쓰여 있었는데요?”내가 서대리에게 물었다. “자유, 프랑스어로 리베르테!”
아무도 해란씨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있다 떠난 사람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것도 없다는 듯이, 마치 없었던 사람처럼. 문제의 책이 출간되고 수습 기간도 끝나면서 나는 긴장이 놓였달까, 안심을 했달까, 아무튼 어딘가 한풀 꺾여 있있다. 안착은 그렇게 허무의 포즈를 하고 왔다. 그래도 고기를 굽고 주는 대로 술을 마시고 웃고 떠들었다.
“아줌마.” 화장실을 다녀오다가 나는 회식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홀에 앉았다. 더 앉아서 술을 받아먹다가는 완전히 취할 것 같았다.
“왜, 자리 못 찾겠어?”식당 아줌마가 돌아봤다. “아니요, 주먹고기는 왜 주먹고기예요?” 아줌마는 양푼에다 부지런히 콩나물을 무치면서 내게 걸어왔다. 그리고 왼손 주먹을 내 눈앞에 대면서 “알지? 주먹?”했다.
“알아요.”
“주먹을 닮아서 그런 거야.”
회식이 끝나고 부장과 나만 마지막 전철을 탔다. 부장은 취기가 올라오는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영주씨, 영주씨는 무슨 힘으로 사나?”무슨 힘, 사는 데 무슨 힘이 필요한가, 그냥 사는 거지, 생각하다가 주먹을 부장에게 보여주었다. “주먹이래요, 주먹.” 그사이 잠이 들었었는지 부장이 몸을 움찔하며 눈을 떴다. “뭐가 주먹이야?” “주먹구구 아니래요, 주먹이래요.” “그래그래, 젊은 사람들 주먹 불끈 쥐고 기운 내야지, 힘내야지. 젊음의 주먹, 좋다.” 부장이 갑자기 박수를 쳤다.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좋을 대로 해석해주는구나. 이런게 정규직의 힘인가, 생각하고는 나도 꾸벅꾸벅 졸았다.
집으로 돌아가는데 밤하늘에는 그믐달이 떠 있었다. 어느 집에서 드라마를 보는지 누가 엉엉 울면서 “어떻게, 네가 어떻게 그러니, 나한테 그러니?”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때 그 술집에 한번 가볼까, 생각했다. 그 지나간 세계로. 그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누군가 뒤에서 따라오는 것 같아 돌아봤지만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 집이 라디오 방송국 뒤편을 돌아 몇번째 골목에 있었는지 생각했다. 골목 어귀의 작은 공터에서 얼마를 걸어야 나오던 곳이던가를. 그리고 그 집에 무엇이 있었던가를 떠올리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뭐가 있었는가보다는 뭐가 없었는가가 더 세세히 떠올랐다. 거기에는 육 인용 테이블이 없었다. 복수를 잊어버린 조중균씨도 없고 빈 시험지에 자신의 이름을 적는 조중균씨도 없었다. 나태한 조중균씨도 없고 내 사인이 적힌 수첩도 다행히, 아주 다행히 없었다. 문장과 시와 드라마는 있지만 이름은 없는 세계, 내가 간신히 기억하는 한, 그것이 바로 조중균씨의 세계였다.
끝.
'read, think, writ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낭만 (0) | 2022.05.24 |
---|---|
치트키 (0) | 2022.05.22 |
얼랜드 오여와 캐릭터 (0) | 2022.05.16 |
제목없음 (0) | 2020.09.25 |
2020 블로그에 대한 러프한 가이드라인 (0) | 2020.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