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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beos 2022. 5. 24. 08:52


디자인이 머리에서 꽉 차있다. 하수들의 짓인 거 같다. 그래서 한강을 타고 자전거로 퇴근했다. 거의 두 시간을 탔는데 확실히 저녁 바람 쐬면서 힘들게 오니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었다.

50년대 영국 빈티지. 강렬하고 글과는 아무 상관 없다.



오는 동안 형한테 전화가 왔는데 형이 회사 얘기만 1시간 내내 했고 ‘형 정상이 아니다’라고 말해줬다. 끊고보니 나도 평소에 일 얘기를 너무 많이 하지 않나?


대기업 영업 기획을 하는 형은 일에 낭만이 있어서 너무 주인의식을 갖고 처리하는, 프로젝트 하나하나에 너무 자신을 갈아넣어서 이게 버림받거나 원치 않는 방향으로 틀어지면 너무 힘들다고 했다. 그에 반해 하든 말든, 무슨 일을 하든 상관없이 일 시키면 둘러대며 안 하는 사람들은 큰 내상 없이 유유자적하게 회사를 오래, 편하게 다닌다며 억울해했다. 막상 위에서도 일은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시키니 그 사람들은 딱히 일을 더 할 이유도, 할 일도 점점 없어졌다. 그쯤 되면 잘리는 거 아닌가 생각했는데 희한하게 또 그 지점까지는 안간댔나 멘털이 겁나 세서 그냥 붙어있댔나 했다.


뭔가 잘못됐단 생각도 들었지만 문득 그 거대한 그룹에서 형이 뭔가 개선하고 좋는걸 들이내밀어 매출이 좀 늘거나 일을 쉽게 하는 게 큰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냥 자기가 오래 다니면 되는 거라 위에서 지시가 없는 이상 크게 반응하지 않았고 근래 본사로 다시 발령 난 형을 길들이려고 뭘 가져가든 툭툭 치면서 비아냥대며 다시 벼랑 아래로 떨어뜨린다 했다. 그래 놓고 다른데 신경 쓰다 보면 자기가 기획한 게 살짝 바뀌어 누군가 일하기 싫어하는 애가 툴툴대며 담당으로 하고 있다던데 회사라는 덴 그냥 원래 그런데구나 했다. 우린 일과 사람 사이에 무슨 달달한 로맨스를 기대한 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일이란 생각으로 뚫지 않으면 일하는 게 재미가 없다. 재미없는 일을 시키는 대로 붙들고 있는 것도 곤욕이다. 재미없으면 또 디깅 하다 보면 재밌는 구석이 보이기 마련이다. 동태눈으로 뇌 전원을 끄고 몸만 와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한편으로는 그런 능력이 부럽기도 혐오스럽기도 했다. 성장이 없으면  살아있는 느낌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성장을 하든 말든 회사 입장에서 누군가 오래 있기 위해 조직을 키우기 위해, 누군가의 연봉을 높이는 툴로 내가 필요할 뿐이라 나의 노력은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내가 성장= 회사의 성장은 성공 서적에나 나오는 대표가 읽고 감탄할만한 문장일 뿐이다.


그저 회사나 사회의 시류가 흘러감에 따라 내가 하는 일이 드러나지 않아 숨어있을 수 있는 보직에 있든 힘들고 드러나는 최전방 직무에 있든 아무 상관없이 빛을 발하는 때가 온다. 그런 건 진심을 다하지 않아도 그저 날씨가 흐리고 맑듯, 나의 노력과 의지와는 상관없는 타이밍의 문제기 때문에 사실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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