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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회사 퇴사와 재입사 (3) 본문
2018년 이 지나고 겨울과 봄 사이에 신모델도 들어가고, 국내 외 공장들과 돌아왔다며 정리도 했으며 슬슬 재고나 판매에 대한 수량들이 완벽하게 넘어와서 자리가 굳어지던 판이었다.
반년간 혼자 앉아서 엑셀로 디자인, 컬러별 판매 추이나 재주문 타이밍, 신모델이 올라올 타이밍, 제품 단가를 맞춘다던가 파트너들과 단가나 공정 방식에 대해 구구절절 떠들다 보면 머리에 있는 디자인을 도면으로 옮기는 게 여간 쉬운 일은 아니었다. 1년에 50 모델은 족히 뽑아내야 하는 브랜드에서 홀로 도면을 치거나 자잘한 작업지시서 작업을 하려니 실수가 나거나 머릿속에서 꼬여버리기 쉬웠다. 시즌별 큰 그림을 그리는데도 드는 조용한 시간이 필요하고, 나사 위치나 길이까지 디테일하게 파고드는 시간이 필요한데 철저하게 '물리적 시간'이 부족했다.
외부 관련 전화만 있으면 다들 나를 찾았기 때문에 자리를 비우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여러 머릿속으로만 갖고 있는 일들을 실행하지 못하고있었다. 유통회사는 공장에는 '갑' 이지만 안경원에게는 '을'이 된다. 다행히 공장에 발주 넣는 입장인 이 자리는 크게 험한 꼴을 볼 일은 없는 자리이나 가끔 안경원들의 제품에 대한 불평 한마디에 크게 공명처럼 울리는 자리이다. 고로 디자인에 시간을 투입할 시간이 절실했던 것 같다.
사람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모든 제품에 관련 된 일은 내가 처리하고, 온라인 관련된 일은 상대적으로 내가 모르는 파트이기 때문에 적당히 경력이 있는 사람을 온라인 마케터나 웹 디자이너 식으로 뽑을 생각이 있었다. 물론 시간이 있다면 내가 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비효율적이었다. 작은 회사일수록 일이 겹치지 않도록 배치해야 된다. 그래야 각각 진한 자신만의 영역을 갖게 된다. 물론 디자인 같은 더블 체크나, 아이디어가 공유될수록 좋아지는 파트는 조금 다를 수 있겠다.
회사의 특이점은 오직 오프라인만 고집하는 37년 된 회사라는 것이다. 멸종한 공룡처럼 비대하고 아둔한 우리 회사는 변화라는 것을 몰랐다. 나이 든 영업사원들과 대표님. 2400군데가 넘는 안경원에 유통하는 회사의 명성도 옛 말이지 그중 우리 브랜드를 메인으로 판매하는 안경원들은 아주 적은 비중일 것이다. 실질적 고객인 소매점들에게 취약한 우리 회사 사장님은 온라인에 제품을 파는 다른 하우스 브랜드들과 비슷한 행보를 가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오랜 기간 동안 유지해온 전통적 판매 루트만을 고집한다.
그러나 게릴라처럼 트랜드에 발 빠르게 치고 들어와 돈을 벌어가는 브랜드, 자극적인 마케팅으로 소비자를 뺏는 브랜드, 재고 떨이를 위해 공장가 보다 싸게 할인하는 브랜드, 중국제를 외제로 둔갑시켜 고급이라고 파는 브랜드 등과 경쟁하며 오프라인은 물론이거니와 온라인으로 매출이 크게 넘어가는 격변의 시점에도 같은 정책을 유지한다는 것이 나에겐 한편으론 미련스럽게 보였다. 반면 회사에 삼 년 정도 있으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 회사는 잔기술 없이 꽤 정직하다는 것이다.
정직한건 정직한 거고 미련한 건 미련하기에 온라인으로 판매 채널을 확대하고 기존의 영업 방식보다는 온라인으로 유입을 시키면 컨트롤 어려운 영업사원에 대한 인건비는 물론이요, 브랜드 인지도도 올라가기 때문에 판매 속도나 판매 가격도 상승할 요인이 있다 생각된 바, 그 일을 추진하고 그에 맞는 직원을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기존 방식을 고수하는 브랜드 A는 유지하되, 거대 자본이 투자하는 그림의 단독 디렉팅 브랜드 B를 하나 만들어서 유통구조 자체를 개편해보자는 생각도 했다. 후자가 방식도 다르고 앞으로 안경판에 새로 시도할만하다 생각했다. 가장 끌린 건 재미있을 것 같아서다. 직영점을 통한 마진의 극대화. 마치 언커먼 아이웨어의 유통 브랜드 버전, 아니면 백산이나 금자처럼 말이다. 회사가 업력이 있다 보니 나이 들었다고 못 따라가는 부분은 내가 계속 설명하면서 끌어주면 되고 굵은 경력으로 프레임을 한 손에 쥐어만 봐도 투자할 만 한지 견적이 나오는 돈 많은 사장님이 있었다. 오션스 일레븐이나 타짜처럼 선수들이 필요했다. 워즈니악과 잡스처럼. 디자인과 핸들링은 내가 다 하면 되는데, 시스템을 만들어서 잘 팔아줄 사람 어디 없나.. 하던 차에 나와 겹치는 포지션의 물리적인 시간을 줄여 줄 유능한 친구를 영입했다. 중국어가 가능한 안경업계에서 굴러본 친구에 유명 브랜드에서 인턴을 해 도면도 곧 잘 쳤다. 상업적인 때가 덜 타서 내가 너무 기성의 냄새를 풍기면 매력적인 쉐잎을 들고와 나를 환기시켜 줄 것 같았다. 그때가 4월. 전임 팀장에게서 연락이 온건 5월 정도니까 팀장이 퇴사한 지 반년이 넘은 시점이었다.
아마- 내가 자신의 자리에 올라와 본인이 쫓겨났다는 생각도 당연히 했을 것이다. 나도 마음에 짐이랄까 죄송함이란 게 있었다. 내 위에 업무 능력이 보통만 되는 사람이 있었다면 나는 아직도 사원의 자리에 있었을 테지. 별별 생각이 다 나던 차에 물어보지도 않은 자기 자랑을 하더라. '네가 다니는 회사보다 좋은 자리에 왔다'고. 나는 미안한 마음도 잠시 짜증도 안났고 그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부탁이 있다며 일러스트랑 라이노 좀 받아서 달라는 것이었다. 자꾸 그냥 메일로 보낸다는데 와서 깔아달라는 거였다.
같이 일 해보면서 일러스트랑 라이노를 화면에 띄워두는 의도는 하나밖에 없다. 일하는 척하려는 거다. 레이싱걸 사진 뒤적이다가 누가 다가오면 창을 내려서 뒤에 깔아 둔 도면이 보이는 그런 식이다. 그거 전에도 깔아줬도니 뭐 쓸 줄도 모르는데 왜 자꾸 깔아달라는 거예요? 안구 딸줄 알아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다가 그래도.. 같이 일하던 사람인데 라는 생각에 퇴근하고 그 쪽 회사까지 넘어가게 된다. 같이 일하던 직원은 그걸 왜 가냐고 극구 말렸던 기억이 난다.
그는 자기 회사는 퇴근이 5시인데 일찍 올 수 있냔다. 우리 회사는 7시에 끝나는걸 빤히 알고 놀리려는 건지 자랑하려는 건지 자꾸 재촉했다. 배고픈 시간이어서 프로그램을 좀 깔아주는 동안 도시락 혹은 커피에 빵이라도 한 조각 얻어먹을 줄 알았으나 그런 일은 일절 없었다. 월급도 더 올랐다는 양반이 땅콩 한조각을 안사더라. 밤 9시 반까지 뭔가 문제가 있어서 안 깔려 낑낑대는 동안 그는 별별 소리를 한다.
"팀장님이 말이야(본인 지칭) 사장님이 이래저래 핑계를 대면서 나가라길래 스와로브스키에 입사 지원하고 다 돼서 가려는 찰나에 일이 꼬여서 취업이 바로 안됐어. 근데 한 두군데 금방 답이 오길래 잘 되려 나보다 했는데 그렇게 지나간 게 반 년동안 안되더라? 마음 고생에 그렇게 좋아하던 낚시도 끊고.. 살도 빠지고 머리가 다 빠졌어."부터 시작, 지금 다니게 된 회사는 20년 전 큰 유통회사에 있을 때 같이 일했던 상무님께서 이사 자리로 오면서 당겨왔다. 작은 프랜차이즈들을 흡수해서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프랜차이즈 안경원이다. 연차, 휴가 마음대로 쓸 수 있고, 출근 9시에 퇴근 5시, 내 앞에 이 빈 자리들에 이제 마케팅하는 여직원이랑 도면 치는 남자애 하나씩 두려고 한다. 나만의 팀이 완성된다는 둥 물어보지도 않은 자랑들을 지껄였다. 자기 팀만 있을 사무실이라며 작은 방을 내줬단다. 전에 같이 일하던 공장 사장님이 대충 사업자만 파둔 썩은 브랜드도 끌고 와서 자체 pb상품을 만들 거란다. 그썩은걸 큰 회사에서 쓴다고? 뒷돈을 받았나 란 생각도 잠시 들고, 그 전에 같이 일하던 공장 사장이란 작자가 울 회사와서 너 씹었는데. 란 말도 할까 하다가 말고, 네 잘되면 좋겠네요! 라고 파이팅을 하고 어두운 남대문 길을 나섰다. 나는 그에게 침묵을 배웠기 때문이다.
배가 고팠고 억울했다. 이 아저씨는 끝까지 진상이었다. 인간 된 도리로 늦은 시간에 전임 직원을 부려먹었으면 저녁은 사줘야하는거 아닌가. 나는 그 날 차가운 자취방에 맥주 4캔 만원과 포카칩을 사먹고 혼자 취했다.
그 뒤 일 년이 넘게 지났으나 그는 연락 한 통 없고 나도 안 한다. 결혼식 때 부르고 싶지도 않아서 퇴사한 다른 부장님껜 연락했으나 그에겐 하지 않았다. 조금씩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우리 회사 다닐 때 거래하던 공장들에게 공짜로 샘플 하나씩 만들어 달라고 간간히 연락이 온단다. 중국에서도 도면만 여러장 받고 잠수 탔다가 올해 초 2 모델을 발주했는데 결제가 6개월째 안되고 있다며 그 양반 지금 뭐하냐고 연락하냐며 중국 공장에서 나에게 직접 연락이 왔다. 나는 연락도 안 하는 사이라고 그 사람 회사 크다던데 기다려보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번외 (선임의 시선)
2020년 7월 신과장 일기
언제나 전에 있던 선임의 모습을 닮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턱과 배에는 기름이 끼고 그가 했던 행동들이 나에게서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전과 같은 형형한 눈빛이 사라진지 오래, 경기와 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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