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os
2018.6 메모 본문
메모장에 2018-06-26 에 썼던 글이 들어있네.. 생각의 흐름으로 쓰다가 조금 더 다듬어서 올려야겠다 하다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듯.. 그냥 올리자.
나이가 어렸을 때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에 집착하고 열광한다. 그러다가 점차 나이를 먹으면서 그것들이 부질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손에서 놓는다. 그러나 누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그것들이 세상에 전부인 양 그것들을 키워나간다. 과도기의 나이에 있는 나는, 문득 무엇이 옳은 것인가 하고 다시 출발점에서 생각을 하게 된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면서 생기는 근심은 본질적으로 우리의 삶이 유한한 시간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간은 유한하므로 이번 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한 분야를 정해 평생을 해나가면 성취할 수 있는 정도다. 한 분야를 10년 정도, 그러니까 하루에 3시간 총 10,000시간을 채우면 득도할 수 있는데 중간에 잡생각이 들지 않고 꾸준히 10년을 하는 일이란 참으로 어렵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나약하기에 중간에 자꾸 편한 것을 찾으려 하고 사회 구성원들의 큰 흐름을 따라가길 원한다. 나에게 당장의 이익을 주는 것들을 쫓게 된다. 그것들이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들은 굉장히 유혹적이다. 그러나 만족감은 오래가지 않는다. 사람이 성장한다 하면 그것은 육체적인 성장을 뜻 한다기 보다 정신적으로 성장함을 뜻 한다. 정신적으로 성장했다는 것은 이 세상의 진리, 그러니까 절대적인 참을 하나하나 배워 알게 됨을 말한다. 우리 세대가 열정적인 학생 시절 추구하던 것들에 멈칫하게 되는 이유가 모든 초점이 돈에 맞추어져 있었던 사회적 관습을 쫓고 있었기 때문이다. 돈은 절대적인 참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정신적인 성장을 이룬 사람들은 멈칫하게 된다. 멈칫해보니 세상의 다른 것들이 보인다. 그러나 그것들은 넘기에 더 높고 커 보인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그것을 못 본 척하거나 나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 진리를 깨닫기란 죽은 지식을 얻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그러니 겉으로 드러나도록 성취한다는 건 얼마나 어렵겠는가. 그것을 추구하고 싶어하는 자들이야말로 식자우환이다. 근심. 근심.. 또 근심... 행복은 저 멀리 가버리는 것 같다. 행복은 늘 내 가까이에 존재한다는 것은 옳다. 그러나 그러한 행복은 본능적인 행복, 질이 낮은 행복이다. 그것이 전부라고 말하는 자도 있겠지만 혹자에게 그것들은 그저 작은 위안이 될 뿐이다. 그 절대적인 진리를 쫓고 싶은 자들은 피폐해져 간다. 더 옳은 것을 알게 된 이상 어찌 그 쪽으로 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다.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버리는 것만 같다. 다른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성취들을 조금씩 이루어 가고 있다. 그 시점에 나는 모든 것을 버린다. 불안하고 외롭다. 위험이 크다. 무엇보다 방법도 잘 모르겠으며 길도 흐릿하다. 그 고민을 상담해 줄 사람도 주변에 없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 진정한 독서가 시작되는 것이다. 훌륭한 작가들은 나의 고민을 깊이 공감하고 있으며 이따금 강렬한 해결책도 내놓는다. 그것들에 용기를 얻는다. 그러나 책을 덮으면 또다시 외롭고 공허하다. 다시 책을 읽는다. 그 반복도 곧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현대인들이 자기 계발서에 열광하는 이유와 다를 것이 없다. 오만가지 생각들이 스쳐간다. 그러다 결론을 내기도 하고 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끊임없이 흔들린다. 생각은 번뇌를 만든다. 번뇌는 고통을 준다. 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그래서 부처가 말했나보다. 원래 인생은 고통이라고)
2018-06-26 썼던 메모를 발견한 종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