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os

2018년 9월 퇴사 본문

diary

2018년 9월 퇴사

beos 2020. 6. 17. 19:53


현재 디자인 팀장이 된 후 예전에 썼던 글을 읽으니 부끄러운 점이 있다. 웃기는 건 저 때 사원이었던 나와 지금 나와 같이 일하는 사원, 그리고 지금 내 위치였던 나의 상사였던 사람과 지금 나의 마음과 상황은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누가 더 낫거나 내가 잘한다는 게 아니다. 그냥 다르다는 것.

 

사무실 자리

 


20180906 퇴사 2주전

중소기업보다도 작은 회사. 아무튼 이익집단을 다니면서 드는 생각을 정리한다. 퇴사를 앞두고 나보다 먼저 있던 내 또래, 나보다 약간은 어리거나, 열정적인 사람들이 분명 있었을 것. 그들은 왜 나갔을까. 왜 오래 전부터 남아있던 사람들 (좀비)은 새로 들어온 신선한 자들을 공격하면서 끝까지 살아남는지 의문이었다. 내 상사의 경우 부정적인 언어를 많이 쓰는 사람이다. 물 고문 중 한 방울씩 미간에 정확하게 떨어뜨리는 고문이 있는데 이게 시간이 지나면 굉장히 고통스럽다한다. 바위도 뚫는 물. 그렇게 별 것 아닌 부정적인 언어나 행동들이 계속 나에게 조금씩, 주기적으로 떨어지던 것이 일년반 쯤 지나니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그래 솔직하게 무능한 사람한테 별 소릴 다 듣자니 도저히 못견디겠어서 나간다.

이런 작은 사이즈의 회사에서 위험한 건 업계에 오래 있던, 본인을 베테랑이라 칭하며 끝까지 남아있는 좀비 같은 자들이다. 그들은 새로 들어온 사람들을 자신과 같은 주파수로 맞추려 하며, 그들의 아이디어를 뽑으며 그 아이디어는 원래 내가 생각했던 것이라 한다. 창의력이 고갈된 자들이 살아남으려면 사실 타인에게서 빼앗는 수밖에 없거나 혹은 신선한 사람들의 아이디어는 실현 가능하지 않다 하거나 검증을 못하게 만들어 본인보다 능력이 높음을 보여 줄 수 없게 만든다. 시장에 나와보지 않으면 진위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작은 회사, 같은 팀에서도 이러한 협잡질이 무궁무진하다는데 정말 놀랐다. 누군가 없는 사람을 흉보며 책임을 미루는 건 기본이요, 뭔가 잘 된 것은 일명 ‘숟가락 꽂기’라고 본인은 어떤 아주 작은 쌀 한 톨만 한 한마디를 했으며 그것이 자라 잘 된 것이라며 자신의 큰 공으로 돌린다. 그리고는 만약 묵살 당하면 (일에 대한 것도 아니다) 이해해주지 않는다며 타인에게 자신의 의견에 동의를 구하는데 그들이 월급을 받으며 주어진 근무시간 중 온 시간을 쏟는다. 그리고는 일을 아주 열심히 했다고 자랑스레 퇴근한다. 왜 이런 현상이 계속되는데도 회사라는 덩어리는 묵인하고 있을까.

젊은 우리들이 주목할 점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현재 있는 회사는 그들의 긴 여정의 마지막 종착지이자 관짝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곳을 멋지게 가꾸지 않아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루지 않아도, 그저 자신이 아는 정도로만 이 작은 우물을 유지만 해도 물은 똑똑 떨어져 갈증은 좀 나지만 나는 목마르지 않다고 자신을 세뇌하면서 혀 정도는 축이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우물이 작고 볼품없다는 것을 안다. 보통 그들은 젊은 시절의 상승되는 경기에 올라타 본인이 잘한 것이라 착각하며 살다가 2018 연초 비트코인의 하락처럼 어떤 이상이나 희망 없이 그대로 바닥, 지하에 처 박혀버린다. 그들이 그렇게 강하게 박힌 곳이 지금 있는 그곳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상한 아집과 고집, 유리처럼 약한 멘털을 청테이프로 칭칭 감아 정신무장을 해서 버텨야만 생존이 가능하다. 덕분에 테이프 밖으로 삐져나온 조각에 어린 친구들은 찔리고 다치기 십상이다. 과거의 영광만을 추억하고 매일 그 시절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본인 아래 있던 후배들 누가 잘되었고 누가 잘 나간 이야기를 자랑스레 떠들지만, 본인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들은 그런 추한 자신의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 꿈 많은 젊은이들을 현혹하고 해코지하기 일쑤다. 혹은 일을 편하게 하기 위해 상투적인 말들로 꼬드긴다.

젊은이들이 회사에 들어가 가장 위험한 것은 바로 그들에게 물드는 것이다. 그들은 그런 상황은 보통 한두 문장으로 쉽게 타당화시킨다. '이게 다 널 위한 일이다.' 온갖 잡일을 하지만 다 배우는 일이라며 당신의 성장이라 이야기한다. 그들의 방식대로 일을 처리해야 하고 비효율적이거나 타당하지 않다 이의를 제기하면 몰라서 이해를 못한다고 언성을 높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되돌아봐도 아무 쓸데없는 일인 경우가 태반이다. 그리고 시키는 본인 조차 모르는 일을 주문하고 어처구니없는 성과를 기대한다. 가끔 주도적으로 뭔가 행하고 성과가 나오면? 아시다시피 평소 트레이닝시켰다며 본인의 공으로 돌린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 그리고 보통 안 해봤거나 남이 한걸 간접적으로 들어보기만 하고 본인이 했다면서 충고한다. 본인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내 말대로 하라는 뻔한 말 속임수다. 물론 그들이 직접 해 본 경우도 있는데, 난 네가 아니잖나요? 결과는 다르다. 단례로, 파리 silmo라는 안경 박람회를 가고 싶어서 내 휴가를 쓴다니, (1. 내 휴가가 길어지면 본인이 일을 해야한다. 2. 나를 보내기 위해 사장님께 양해를 구해야한다. 3. 자질구레한 일을 시킬 사람이 없다.) 못 가게 하면서 하는 말이 '내가 거기 열 번도 넘게 갔는데~ 별거 없어~ 가지 마 후회할 거야.' 고집부리길래 '다녀왔다고 괴롭히면 안 다닌다’라는 생각으로 사장님에게 박람회 보러 가겠다 말을 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다녀오시란다. 되래 감격을 하시며 숙박비 하라며 용돈도 찔러주셨다. 파리 박람회에 갔더니 정말이지 신천지였고 한국에선 볼 수 없는 진귀한 안경들이 넘쳤다. 돌아와서 넘치는 아이디어로 작업을 했지만 팀장 선에서 모두 탈락. 작년에 출장가서 줏어온 썩은 중국 테 샘플이나 공장에 발주하기에, 회사에서 진빼지 말아야겠다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그 다짐과 동시에 나도 그들의 주파수에 맞춰져 버리는 것이다. 그들처럼 죽었는데 안죽은 척 하는 좀비 혹은 월급 루팡이 된다. 그러나 회사는 이익집단이다. 열심히 하는 사람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좀비 같은 자는 같은 평소에는 공격하지 않다가 피같은 돈 냄새 혹은 사장의 부름에는 민감하게 반응해 격렬히 물어뜯으며 싸워댄다.

이 모든 상황들을 바람처럼 흘려버릴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 그게 아니면 퇴사가 답이다. 가장 중요한 건 나도 저 위에 그들, 혹은 좀비로 칭하는 사람처럼 행동할 때도 많다는 것이다. 언제나 주의하고 조심하며 살길 바라면서 기록을 남긴다. 이주 뒤 퇴사다.


20180914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한 글
안경회사 퇴사와 재입사(1)

반응형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8 말 정리와 다짐  (0) 2020.06.18
안경과 사람들  (0) 2020.06.17
마무리  (0) 2020.06.17
2010 cafe office  (0) 2020.06.17
림보  (0) 2020.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