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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cafe office 본문
2010년 내가 대학도 휴학하고 임베디드 거쳐서 앱 개발한다고 깝죽거릴 때의 일이다.
당시 삼선동 꼭대기층에서 보증 3000에 월 30짜리 널찍한 집에서 자취하면서 놀던 시기였는데 미대 다니던 친구가 소개해 준 카페에서 죽치는 게 또 내 삶의 행복이었다 이후 서른이 넘은 지금도 모든 영감의 시작은 그곳이랄까. 나중에 내가 만들 작업실의 롤 모델이다. 난 아직 그때에 머물러있다. 혜화동 cafe office. 이제는 사라진 공간이지만 기억을 더듬어서 설명을 써본다.



높은 천정에 필로티 식으로 앞 테이블이 있어서 커피 찌꺼기에 담배를 터는 맛이 있었다. 그 동네는 적당히 부유한 집들이 많아서 큰 개들을 끌고 다니는 노 신사나 레깅스 (당시에 그렇게 입지 않았거든 2010년)를 입고 산보하는 아가씨들이 눈에 띄고 사실한 적한 동네라 손님은 단골 2명 정도가 그 큰 카페에 전부였다. 카페 안에 유리창으로 만든 공간은 아뜰리에인데 기가 막힌 건 여기 사장이 조명을 빈티지 조명을 만드는 '배상필'이란 아저씨였던 것이다.
우린 커피 마시고 옆에 아저씨는 땜하고 부식시키면서 조명을 만들고. 까페는 천만 원짜리 조명들로 분위기 죽이고 보통 카페는 뭔 커피빈에서 항상 sg워너비나 흘러나오는 게 정석인데 여기는 50-90년대 재즈부터 한물 간. 그러나 음악적으로 좋은 팝송. 날 밝을 때 알바 누나는 가끔 일본 시티팝을 틀어줬던 것이다. 악기 좀 친다고 깝죽댔지만, 재즈라니? 당시 아이튠즈 라디오 가능에 jazz 카테고리가 있었는데 24시간 재즈가 나오는지 그때 알았다.
메뉴판도 가죽에 고리를 달아놨었는데 사실 지금은 흔하겠지만 지금부터 8년 전 (이 글을 쓰던때는 2018년) 그런건 본 적이 없었다. 인듀스트리 얼 인테리어라고 이제는 한물갔지만 당시에는 그런 건 만들다 말았다고 욕먹던 시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간을 그런 분위기로 채운건 80프로가 사장의 감각 덕분이다. "아 죽인다!" 입에서 탄성이 절로 나오고 가끔 여학우와 대화를 나눌 때 굳이 그 구석에 있는 카페까지 데리고 가 익숙한 척 드립 커피라도 주문하면 휴학한 선배에서 멋진 오빠로 둔갑하는 마술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큰 페인팅도 흰 벽에 쿨하게 걸려있었는데 페인팅의 의미를 그 때야 알게 된 것이다. 뭔 그림을 잘 그리고 구도가 맞는 그런 게 아니라 공간에 어울리는 그림이 좋은 페인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야말로 '기운' 혹은 '느낌'만 맞는다면 최고의 페인팅이 된다는 것을 알고 나의 방향이 정해진 것 같다. 나야 박스 떼기나 영수증 포스트잇에 깨작대지만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고 큰 캔버스에 휘휘 물감질을 해서 그 공간을 멋들어지게 채워 준다면 더할 나위 없다 이거다. 뭔 밴드 한다고 주야장천 earth wind and fire, prince, MJ, oasis, nirvana, two ton shoe... 뭐 한국 음악은 시나위나 윈디시티 이런 것들을 들으며 동방 구석에서 찌그리고 앉아 마샬 앰프와 대화를 나눴는데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정체불명의 음악들이 그저 그 시간과 공간을 채워줌에 있어 세상은 넓고 나는 우물 안의 개구리이며 좋은 음악도 많구나! 라며 알아듣지도 못하는 불어 음악 제목을 알아내려고 음악 찾기 앱 sound hound를 틀고 (지금은 네이버에 있다더라) 폰을 허공에 들며 음악에 대한 마인드도 많이 달라졌었다. 공간과 영감, 그 중요성을 알게 해 준 곳이다.
이후 가끔 맥으로 음악도 만지작대고 기타도 치다보니 사장이 공연하라고 해서 했다. 동영상이 남아있어 그 시절이 남아있는데, 틀어 본 적은 없다.
https://youtu.be/w1eN8vyVFIM
당시 즐겨듣던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