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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성

beos 2025. 1. 31. 21:46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개별성과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처음엔 ‘자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책을 펼쳤는데, 내가 기대했던 추상적이고 개인적인 자유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적 자유, 시민의 자유를 다루고 있었다. 그런데도 묘하게 빠져들었다. 언젠가 회사를 운영하고, 또 가족이 우리 공동체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읽다 보니, 그 이야기들이 지금 내 고민과 맞닿아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200년 전에 쓰여진 책이 2025년의 한국 현실을 그대로 비추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프게 다가왔다.

계엄과 탄핵 이후 정치는 적색과 청색의 공격으로 얼룩졌다. 거짓이 거짓을 낳고, 가짜가 가짜를 퍼뜨리며, 이념과 이념이 타협 없이 개싸움으로 치닫는 모습은 지겹고도 지치게 한다. 그런데 자유론을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것도 다양한 사회적 모습 중 하나일 수 있고, 더 나아가 건강해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탄핵을 정치적 무기로 휘두르거나, 말장난과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들로 시간을 허비하는 모습은 비극적이다. 하지만 극과 극의 충돌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태어날 가능성 또한 있다. 다만 오늘날의 세상은 트럼프 같은 극단적 인물이나 자극적인 유튜버가 주목받는 시대다. 미묘한 균형, 중간의 목소리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밀의 글 중 눈에 들어온 대목이 있다. 바로 군중과 천재의 이야기다. 밀은 군중이 가진 압도적인 힘이 종종 개별성을 삼켜버린다고 지적한다. 다수의 목소리가 곧 ‘진리’로 둔갑하는 순간, 사회는 기계처럼 획일화된다. 그러나 그 속에서 드물게 등장하는 천재, 즉 새로운 감각과 생각을 내놓는 이들은 비난과 오해를 감수해야 한다. 밀은 그런 존재들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것이 자유로운 사회의 근본이라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파격과 차이가 결국 사회 전체를 풍요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한국의 현실이 겹쳐 보였다. 회사 안에서도, 정치권에서도, 심지어 가족 모임에서도 다수의 목소리에 맞추라는 압박이 흘러넘친다. “괜히 튀지 말자”, “적당히 맞춰 가자”라는 말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통념이 되어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밀의 문장을 떠올린다. “만약 모든 의견이 같다면, 하나의 의견은 불필요하다.” 다수의 의견은 편안할 수 있지만, 새로운 씨앗을 틔우진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천재가 무조건 옳다는 것도 아니다. 밀은 천재와 군중이 부딪히는 과정, 그 갈등 자체가 사회를 건강하게 한다고 보았다. 한국 사회의 극단적 양극화도 어쩌면 그런 충돌의 연장선일지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충돌이 창조적 긴장이 아니라 단순한 파괴로 흐른다는 점이다. 토론이 사라지고 혐오만 남는 순간, 사회는 자유를 지키기는커녕 자유의 이름으로 폭력을 정당화하게 된다.

결국 나는 이런 결론에 닿는다. 자유란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고요가 아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그 다름이 불러올 불편과 마찰을 감당하는 힘이다. 군중과 천재, 극과 극의 언어들이 오가는 그 불편한 장에서만 새로운 질서와 가치가 태어난다. 그리고 그것을 감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자유를 말할 자격조차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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