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를 읽고 나서 나는 알 수 없는 묵직한 여운에 빠졌다. 평범한 남자의 평범한 인생 이야기였다. 책을 덮고 나자 내게 남은 질문은 하나였다. 나는 무엇을 바라며 살고 있는가? 자연스럽게 나의 마지막 순간이 어떨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나는 어떤 감정을 품게 될까? 후회일까, 아니면 환희일까. 소설의 마지막에서 스토너는 "나는 무엇을 기대했는가"라고 되뇌인다. 그것은 단지 한 남자의 탄식이 아니라, 누구나 삶이라는 긴 여정 끝에서 마주하게 될 궁극적인 질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그 질문을 미리 마주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40을 앞둔 나는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가고 있다.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고, 오랫동안 꿈꿔온 직업에서 능력을 펼치며 살아가고 있다. 외적인 모습만 본다면 안정되고 충만한 삶이다. 하지만 『스토너』와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함께 읽으며 깨달은 것이 있다. 삶의 진정한 가치는 외적 성취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살아가는 본인이 어떻게 느끼는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 두 작품이 동시에 다가왔던 이유는 아마도 한 남자의 삶과 죽음을 깊이 있게 그려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하나는 자신의 욕망이라 생각하던 것들을 쫒던 사람이며 다른 하나는 길고 지리한 인생을 산 남자이기 때문에, 사실 이 둘은 보통의 사람들이라 생각이 들었고, 결국 나의 삶이 이에 가깝지 않았을까.
스토너가 바란 것은 화려한 성공이나 세상의 인정이 아니었다. 그가 원한 것은 삶이 의미로 충만해지는 것이었다. 삶이 충만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소설은 그것이 삶 속에서 의미 있는 순간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라 말한다. 존재의 이유를 깨닫는 순간, 순수하게 몰입하는 순간, 작고 평범한 행복을 느끼는 순간,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순간들. 바로 이런 순간들이 우리 삶의 의미가 아닐까. 물론 그런 순간들은 언제나 너무나 짧고 쉽게 흘러가 버린다.
스토너는 대학 시절 처음 문학을 접했던 순간의 벅찬 감동, 홀로 책을 읽으며 내면의 충만함을 느끼던 시간들, 어린 딸과 함께했던 짧지만 따뜻했던 기억들을 삶의 의미로 간직했다. 그러나 인생은 그가 기대했던 것들을 언제나 주지 않았다. 결혼 생활은 메말랐고, 직장 생활은 외로운 투쟁의 연속이었으며, 딸과의 관계마저 점점 멀어져 갔다. 그가 정직하게 살기 위해 노력할수록 삶은 더욱 외롭고 고립된 길로 그를 몰았다. 그래도 그는 문학과 사랑, 딸과 교육 등 자신이 열정을 품었던 순간들에 온 힘을 쏟으며 살아갔다. 그런 충만한 감정들은 잠시 찾아왔다 사라지고, 대부분의 시간은 텅 빈 우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한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죽음을 앞두고 비로소 삶의 허망함을 처절히 깨닫는다. 그는 평생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성공을 좇으며 살았다. 그러나 막상 죽음의 문턱에서야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는 후회와 마주했다. 그가 맞이한 죽음은 깊은 회한으로 가득했다.
두 사람 모두 인생의 끝자락에서 삶을 돌아본다. 한 사람은 자신이 원했던 삶의 의미를 조용히 되새겼고, 다른 한 사람은 한 번도 자신에게 진지하게 묻지 않았던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이때 다시 나에게 질문이 돌아온다.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나의 삶에서 의미 있는 순간들은 꼭 화려할 필요는 없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소박한 저녁, 아이들의 맑은 웃음, 평범한 하루의 작은 휴식, 그리고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일에 몰입할 때 느끼는 내면의 충만함. 결국 삶의 의미는 바로 이런 잔잔한 순간들 속에 숨어 있다. 어쩌면 삶이 주는 보상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화려한 순간이 있는 것도 좋겠지. 그런것에 목메며 살지만 않는다면.
언젠가 죽음의 순간이 오면, 내가 기억하고 싶은 건 위대한 성공이나 명예가 아니라 이런 평범하고도 진실된 순간들의 축적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주어진 삶을 더욱 진실하게 살아가고자 한다. 언젠가 나 역시 "나는 무엇을 기대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나는 의미 있는 순간들을 기대했고, 그 순간들을 살았다"고 온전히 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돈과 명예를 좇기보다는 나 자신에게 의미 있는 순간을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나를 알아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할 때 진정으로 살아있다고 느끼는가? 무엇에 몰입하는가? 나는 타인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고, 그 안에서 어떤 기쁨을 느끼는가. 아마 삶은 그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존재의 이유를 찾는 여정은 계속된다. 그냥 살아가는 게 아니라, 늘 생각하며, 새로운 경험을 쌓고, 좋아하는 것을 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문화를 향유하기 위해 더 힘을 내고, 꾸준히 기록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