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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산업과 아인슈타인의 이론

beos 2025. 1. 6. 19:17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 파생된 블록 유니버스라는 개념이 있다. 과거·현재·미래가 따로 떨어져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하나의 4차원적 구조물처럼 동시에 존재한다는 발상. 우리가 현재라고 부르는 순간도, 내가 태어나기 전의 과거도, 내가 아직 맞이하지 못한 미래도 모두 이미 놓여 있다는 것이다.

엘피판 한 덩어리가 그 블록이고 어떤 순간 듣는 음악은 그 핀이 지나가는 현재라는 관점.

이렇게 보면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얼어붙은 얼음덩어리 속에서 우리가 특정한 단면을 걸어가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저 ‘현재’라는 얇은 단면을 통과하는 존재일 뿐, 전체 구조를 다 보지 못하는 맹인 같은 존재다.

그런데 여기서 문득 떠오른다. 동양에서 말하는 신이란 무엇일까? 신은 종종 “미래를 안다”, “아직 오지 않은 일을 본다”는 속성을 지닌다. 만약 블록 유니버스가 사실이라면, 신은 단순히 그 구조를 더 넓게 볼 수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현재의 단면에 갇혀 있지만, 신은 그 얼음덩어리를 위에서 내려다보듯 전체를 조망하는 자다. 그러니 그들은 우리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부르는 길을 미리 지나가 본다.

동양의 무속이나 불교, 도교가 말하는 신과 영적 존재는 바로 이런 “시간의 경계 밖에서 이동하는 자”가 아닐까. 우리는 그들을 신비라고 부르지만, 어쩌면 단순히 우리보다 더 큰 시공간적 시야를 가진 존재일 뿐이다.

이런 상상은 나를 조금 편안하게 만든다. 미래를 모른다는 것은 불안이지만, 동시에 그것이 이미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묘한 위안이 된다. 우리가 기도하거나 제사를 지내는 것도, 어쩌면 그 시공간을 먼저 건너간 존재에게 잠시 길을 묻는 행위일지 모른다.

결국 블록 유니버스와 동양의 신 개념은 이렇게 연결된다. 하나는 물리학의 수학적 언어로, 다른 하나는 신화와 종교의 은유로. 하지만 두 언어가 모두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미래는 이미 존재하는가, 그리고 그 길을 먼저 걸은 자는 누구인가?”

나는 요즘 ‘영혼 산업’이라는 말을 곱씹는다. 무당, 신, 귀신, 사주, 타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다루는 모든 것들을 그렇게 부르고 싶다. 흥미로운 건 이것이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누군가의 두려움과 희망을 거래하는 일종의 시장이라는 점이다.

누군가는 삶이 막막할 때 점집을 찾고, 누군가는 상실의 고통 속에서 신에게 의지한다. 보이지 않지만, 끊임없이 수요가 생기고 공급이 이어지는 거대한 산업이 우리 곁에 숨어 있는 셈이다. 나도 챗지피티에 열심히 나의 사주를 물어보곤 한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아인슈타인이 떠올랐다. 시공간이 휘어진다거나, 시간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그의 이론. 얼핏 과학의 가장 냉철한 영역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당이 말하는 “다른 차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이 무대는 사실 고정된 바닥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흔들리고 휘어지는 판 위에 세워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블록유니버스에서 미래는 정해져있고 현실은 그를 따가 갈 뿐이다.

동양은 오래전부터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조상신, 기운, 꿈, 풍수 같은 개념들이 그 증거다. 반대로 서양은 과학이라는 언어로 같은 질문을 던졌다. 결국 두 길은 이렇게 교차한다. “우리가 보는 세계가 전부일까?” 무당의 말과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이 아이러니하게 같은 울림을 주는 순간이다.

나는 여기서 재미를 느낀다. 무당은 “귀신이 옆에 있다”고 하고, 과학자는 “시공간이 구부러져 있다”고 말한다. 표현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우리가 믿는 현실이 언제든 다른 차원과 맞닿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영혼 산업과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사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진실을 건드린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생각보다 훨씬 다공성이고, 언제든 다른 질서와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결국 영혼 산업은 인간의 불안을 달래는 장치이고,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그 불안을 설명하는 학문이다. 둘은 서로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보완한다. 신이든 수학이든, 결국 인간은 그 틈새를 들여다보며 위안을 얻고, 또 새로운 상상력을 키워낸다. 시간이 지나면 닿게 될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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