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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신과 일본의 꿈. 그리고 한국에서 새 시작

beos 2020. 11. 25. 18:54
 

안경회사 퇴사와 재입사 (2)

퇴사를 하고 일본으로 날아간 이유는 후쿠이현에 있는 일본 안경 공장에 꼭 가보고 싶었던 것과 조만간 도쿄에서 있을 ioft2018에 가서 일본 프레임들의 진수를 맛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짧게 io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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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에 쓰인 간략한 명신이에 대한 소개다.

 

명신이는 내가 2015년 안경 공방에서 일을 시작할 때쯤 수제안경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찾아온 대학생이었다... <중략>.. 그 쯤 명신이도 우리와 같은 길을 가고 싶다고 공방에서 일한다길래 열심히 말렸다. 공방은 돈 내고 네 거 만들고, 일은 회사에서 하렴. 투자자 만나서 브랜드 내는 게 맞는 거 같다고..

 

라치오랩의 태현이와 주말인가 평일 새벽인가 어쩌다 만나서 커피 마시면서 수다를 떨었는데, 회사에 자신을 좀 도와주면서 생산 MD일도 할만한 유능한 친구가 필요하다고 하더라. 난 명신이가 어떠냐고 말했고, 얼추 알고 있던 태현이는 명신이에 대한 기억이 좋다고 했다.


명신이는 안경하러 간 일본에서 돌아온 지 반년 정도 지났다. 그는 안경업계로 다시 들어오려고 하고 있으나, 코로나 때문에 시기가 너무 좋지 않아서 기회가 없단다. 올 초여름인가 명신이가 코로나로 락다운 된 일본에서 간신히 전세기를 타고 탈출, 자가격리 시간이 지나고 성수에서 나와 족발, 소맥을 기울이며 앞날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전에 같이 안경회사 다니던 분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안경업을 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그와는 알게된지 어느덧 5~6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순수하게 안경을 하고 싶다며 공방으로 들어오던 모습이 나와 비슷해 보였고, 그런 열정만 있으나 방법은 모르는, 가난한 안경쟁이들이 모이는 곳이 당시의 안경 공방이었다. 부러운 건 나보다 대 여섯 살 어린 나이였다.


그랬던 명신이가 시간이 지나 뮤지크 스틸러를 거쳐 일본으로 넘어갔다가 최근 태현이가 한번 힘 써 보겠다며 회사로 이력서를 써 보라고 했단다. 명신이는 글감과 열정은 참 좋은데, 전달력이 부족해서 왠지 회사 어른들이 그를 잘 모를 거 같아 약간 손을 봐줬다. 내가 이 삼 년 전에 MD 관련으로 써 둔 이력서를 활용했다. 그의 역사와 MD의 역할에 대한 나의 생각을 약간 섞었다. 생산관리의 역할은 내가 감초처럼 쓴 부분이 많으나 어차피 직무와 역량이야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도쿄 (2018)

 

아래 부분은 내가 쓴 글의 처음이자 모든 것이라 생각한다. 회사는 모든 파트가 유기적으로 잘 돌아가야한다. 디자이너, 생산자, 판매자. 아무리 좋은 아이웨어를 디자인해도 생산자가 품질을 못 받쳐주면 회사는 망한다. 잘 만들어도 못 팔면 회사는 망한다. 이 세 가지는 각각 유기적으로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려야 한다. 신입이라면 그 관계를 어렴풋이 알겠지만 오 년 정도 굴러보니 너무 중요한 자리다.



" 안경 회사는 훌륭한 디자인 팀에서 아이디어와 경험을 바탕으로 의미 있는 디자인을 내지만, 한국의 한정된 제조기술과 멋지게 융합되어서 그것을 현실로 탄생시키기는 쉽지 않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해내는 MD라는 자리는 회사의 제품이 시장에서 입지를 갖고, 유지하기 위해 사업에서 중요한 자리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



실제로 도면으로 팔리는 제품, 아름다운 제품, 시대를 앞서거나 대표하는 제품을 디자인하는 일도 어렵지만 그 의도에 맞게 제품을 뽑아내는 것이 엄청난 역량이다. 이는 디자인에 미쳐있는 만큼 생산 파트에 열정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오사카 (2019)

 

그는 스틸러에 취업하기 전 그가 좋아하던 EFFECTOR이라는 일본 안경 회사의 생산관리직에 지원했었고 일본으로 날아가 바로 면접을 보았으나 전혀 의사소통이 안돼 1년 뒤 경력과 일어 실력을 들고 다시 면접을 보자는 제안을 받는다. 그리고 경력을 쌓기위해 안경 브랜드에 입사한다. 내가 적극 추천했던 기억이 난다. 업무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능력이 있다고 생각이 되어서다. 젊은 사람들, 야먕이 넘치던 시대였다.

 

effector tokyo 그가 두 번이나 면접을 보았던 곳


공방의 경험 덕분에 하우스 브랜드에 입사했습니다. 초기에는 영업 지원을 했는데, 물류 외로 A/S 관련 소매점의 불만을 해결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과거 예쁜 디자인으로 많이 팔렸던 제품이 도금과 땜, 피팅에 관한 항의가 많았습니다. 소매점의 불만들은 디자이너들이 모두 반영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러한 데이터를 쌓아 최대한 다음 제품들에는 하자가 없도록 디자인과 공장관리, Q/C에 신경을 쓰자 다짐했습니다.


이후 그는 회사의 제품에 클레임이 많이 들어오기도 하고 대구의 공장에게 회사가 휘둘리는 경향이 있어, MD의 자리로 가게된다. 생산 방향에 언제나 관심이 있던 그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열심히 공장을 오가며 나에게 많은 질문도 했다.

 

도쿄 명신 (2018)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본 제품이 들어왔고 수주회를 진행했으나 도매상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제품들이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안경사들은 익숙하지 않은 방식을 보면 잘 고르지 않는다는 점을 배웠던, 그리고 워낙 어려운 디자인은 소비자에게 크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운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비록 좋은 결과는 아니었지만 시즌은 성공시키겠다는 오기를 갖게 해 준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첫 술에 배부르랴. 생산관리 처음 하자마자 하자가 없다면 순전히 공장이 잘 한거지. 안타깝게도 저 당시 그가 다니던 회사는 공장과 결제 관련으로 좋지 않은 인상을 줬었고 하필 어렵고 난해한, 그러나 썩 팔리지는 않을 것 같은 제품들을 많이 출시했다. 윤디자인 서체랑 콜라보를 했던 거 같은데.. 디자인 회사와 콜라보라는 건 굉장히 좋은 아이디 언데, 이 것을 팔만한 제품으로 뽑아내는 것이 어려운 부분이었다. 아니면 팔리게 만들어서 수익성이라도 가져가던가.. 회사에 그런 이야기를 할 사람이 없었다는 아쉬운 부분이다. 당시 내가 수주회에 가서 제품들을 봤기에 하는 이야기다.



 

오사카 명신 (2019)

 


그는 틈틈이 일본어 회화 및 면접을 준비하고 휴가를 내 일본으로 넘어가 두 번째 면접을 보았다. 회사를 다니면서 새벽마다 아침수업에 갔다가 출근을 한 것. 주말에는 매일 일어 공부, 출퇴근도 일어 공부였다. 그리고 일본으로 날아가 면접을 보았고 1년 간 쇼룸에서 근무 가능하냐 물어본거 같고 손님과의 의사소통이 쉽지 않아 이번에는 일어를 떠나 근무에 가능한 회화 실력을 쌓아 면접을 보기로 했단다. 대단한 끈기다. 당시 돈도 없어서 편의점에서 이박삼일을 떼우고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명신은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 퇴사를 하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끊어 일본으로 날아간다.

 

CRADLE 이 곳이 일본 안경의 편집샾인데 1년간 근무를 해야했던 오프라인 쇼룸



1년 동안 일본에 있으면서 목표는 첫째, 일본어 회화를 높여 일본 브랜드의 생산관리로 일하는 것. 둘째, 일본 안경시장을 아는 것.

그는 먼저 생존과 일어 회화 실력을 높이기 위해 현지 일본인들이 일하시는 곳을 찾아 일하게 되었고 한층 더 일어 공부에 매진하게 된다. 이 친구의 좋은 점이 사람들과 친화력이 좋다는 것이다. 눈치가 빠르기 때문에 굳이 의사소통이 필요할까 싶긴 하지만, 역시 일본에서도 기본적으로 눈치가 빠르고 친화력이 좋고 일을 잘하니 주변에서 좋아했던 모양이다. 안경 브랜드로 취업이 잘 안되니 일단 일본 GAP에서 근무하며 많이 늘었다고 들었다. 이후 이펙터와 일본 올리버 피플즈에서 5월 경 면접이 잡혔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전면 취소. 그때까지 잡아둔 월세방 월세만 계속 나가고 일은 못 나가면서 좁은 집에 3달간 갇혀있다가 한국으로 돌아온다.


아쉽게도 꿈꾸던 일본생활은 아니었지만 젊은 나이에 모든 시간과 돈과 열정을 들고 뛰어들었다는 것은 인생에서 너무 중요한 일이다. 그런 것들은 평생의 원동력이 된다. 마치 모든 것을 걸고 중국으로 날아간 준수처럼. (그는 이제 어엿한 고액 연봉의 직장인이자 주식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요즘 시기에 대박을 친 n 잡러다.)

 

 

준수

대학 동기 준수가 새로운 시작을 하려 한다. 사업을 정리하고 개인 프로젝트를 하다가 큰 회사로 이직을 준비하는 중. 러프한 자기소개서를 보내줬고 글만 좀 다듬어서 돌려줬다. 그의 글을 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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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들처럼 외국으로 뛰쳐나가면서 일궈낸 성과는 아니지만 사활을 걸고 뛰어든 업계인 만큼 아무래도 자연스레 졸업이라던지, 전공의 연장이라던지, 나이라던지, 취업을 위한 소개로 인해 업계에 들어온 친구들보다는 전투적으로 임하게 된다. 위의 경험들은 불합리하고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번 더 버티게 만드는 힘을 갖게 한다. 왜냐하면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기엔 낭비를 많이 했고, 더 힘든 경험도 있기 때문이리라. 나는 아직도 문래의 추운 옥탑에서 수입 하나 없던 안경을 만들겠다며 버티던 때를 기억한다.

 

(어찌저찌 2018년과 19년에 도쿄 안경쇼인 IOFT를 간 김에 명신이와 만났던 사진들이 남아있다. 나도 이제는 가기 어렵겠지)

 

eyevan 7285 tokyo

 

태현이가 다니고 있고, 명신이에게 소개해 준 회사는 휴맥스라는 안경회사로 업계에서 잔잔하게 돌아가고 있는 회사 중 하나다. 회사별 성향이 있듯, 휴맥스도 성향이 있는데 공격적이지 않고 안경의 기본에 맞는 제품을 생산하는 크고 안전한 회사 중 하나다. 주 고객은 일본의 메가네 탑인데, 일본은 빅스타(? 이름 까먹음)라는 외주 2차 검수팀을 운영할 정도로 검품이 빡빡한 곳인데, 그것들을 뚫고 대량 수출을 할 정도로 생산 MD의 역할이 막강한 회사다. 

대구 공장판에서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휴맥스의 MD 조 부장님은 대구에 월-목 상주하면서 공장의 모든 문제점, 장난질, 일정을 아주 빡빡하게 굴리기로 유명하다 한다. 어린 후임자들은 그간 모두 못 버티고 나가떨어졌다고. 그래도 안경 생산과 일본과 밀접하게 맞닿아있는 회사는 한국에 많지않다. 프레임 몬타나정도?

 

명신의 안경 라이프에 무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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