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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본문
그녀와 함께 대구로 출장을 갔다. KTX를 예매할 때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다. 아침 8시 서울역 출발, 저녁 7시 대구 출발로 잡으라신다. 세팅만 다 해놓고 가면 공장에서 그렇게 까지 시간을 쓸 일은 없는데 고생 좀 하겠구나 했다. 집에 가면 밤 10시가 넘겠구나. 만삭인 아내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출장을 간 그 날은 날이 무척 주웠다. 수능이 다가오고 있구나 란 생각을 했었고, 코로나 때문에 시험들은 어떻게 보나 까지 의식이 흘렀던 것 같다. (뒤늦게 안 거지만 12월 수능이란다.) 그녀는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는 플랫폼으로 들어가는데 바닥에 엑스가 그려진 출구로 앞장서서 걸어간다. 바닥엔 분명히 진입금지라고 쓰여 있고 방역 직원이 손님! 손님! 하며 소리를 쳐도 막무가내다. 달려가서 팔을 잡아끌고 발열 체크하고 기차를 찾는다. 아 이 출장 심상치 않다.
저 기차가 아닌데 방금 왔다는 이유로 기차에 올라타더니 자리가 어디냐고 대뜸 나에게 물어보신다. 이 차가 맞는지 저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기차가 맞다며 앉아있는 사람에게 갑자기 동대구 가냐고 물어본다. 그 사람은 동대구가 어딘지도 모르기 때문에 어리둥절하다. 뒤에는 사람들이 못 지나가고 서있고 갑자기 그녀는 나에게 빨리 안내하라며 닦달한다. 안내원이 오고 나서야 이 차가 아니구나 라며 내린다. 출발 직전에 맞는 기차로 간신히 탑승.
그녀는 햄버거를 샀다며 나에게 먹으라고 한다. 사실 감사한 부분이지만, 복잡한 심경이다. 요즘 시대에 열차에서는 먹으면 안 되는데.. 마스크를 치우고 만차인 기차에서 드신다. '저기 나가서 드셔야 할 듯합니다' 라고 말했는데 모두 들으라는 듯, 나 코로나 안 걸렸어 냄새 안 나니까 먹어도 돼. 라던 그녀. 앞에 있던 젊은 남자애가 뒤 돌아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복도 쪽에 앉았다가 창가 쪽으로 더 떨어져 앉는다. 그러면서 나와도 눈이 마주쳤는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건 내가 그녀와 심천에 갔을 때도 느꼈던 심정이다. 중국인들이 간식을 준비 해 오자 맨손으로 간식들을 쭈물떡대며 넌 이거 넌 이거 나눠주다가 재채기를 위에 하더니 감기 안 걸렸다며 먹어도 돼 먹어도 돼를 연발하던 그녀. 나를 포함한 선임 및 우리 회사 직원들만 침 발라진 햄버거를 먹고 중국인들은 건드리지도 않았던 그 기억.
시작은 케이스 업체와의 미팅이다. 우리와는 몇 년 쯤 된 거래처다. 작년쯤부터 경첩이 붙어있는 abs소재 부분이 떨어져 나가서 케이스에 관련해 컴플레인이 들어왔다. 당시 이후 들어오는 물량은 검수를 제대로 하기로 하고 추가로 1000장을 새로 받는 조건으로 마무리했던 사건이다.
그녀는 상대방의 흠을 잡아서 자신이 유리한 고지로 올라가 협상을 진행하는 화법을 가졌다. 업체를 상대로 그녀가 그렇게 하니 이후 뒤처리를 하는 나와 같은 직원은 중간에서 고생을 좀 한다. 일례로 점심에 중국집에 갔더니 대뜸 이 집은 김치를 국산으로 안 하나 봐?부터 시작. 김치값을 남기는데 짜장면 양이 적다고 나중엔 안 와야겠다~ 며 운을 띄운다. 그럼 눈치 있는 사장들은 아이고 대표님 양이 좀 적으셨나요? 하면서 요리사를 닦달해 군만두라도 꺼내오는 식이다. 이 동네에서는 유명한지 가게만 가면 알아서 천원 짜리 공기밥 두개 쯤은 그냥 준다. 그게 그냥 속이 편하리라. 최근 젊은 사장이 운영하는 중국집에서 같은 방법을 시전 한다. 주문하면서 양 많이! 를 외쳤는데 주방장은 신경도 안 쓰고 정량을 만들었다. 사장은 두 젓가락 먹더니 '한 두 젓가락 먹었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라며 주방장에게 핀잔을 준다. 그 전에도 올 때마다 시비를 걸던 그녀였기 때문에 주방장은 차마 참지 못하고 '곱빼기를 시키면 되십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다 먹고 재수 없다며 나갔고 짜장면집 사장은 나를 붙잡고 나보다 더 큰 어른이 눈물을 글썽이며 하소연을 했다. 사람들이 있을 때마다 왜 저렇게 시비를 걸고 흉을 보는지 모르겠다고. 나는 부끄러웠다.
또 다른 일례로는 홍콩 출장 때 일이다. 그녀는 안면이 있던 중국인을 호텔에서 우연히 만났다. 중국인은 본인이 이제 프레임 사업을 했으니 좀 팔아달라는 식이었다. 그녀는 별로 할 생각이 없기도 하고, 나중에 저가로 팔 때 써먹을 요량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갑질을 하고 싶었는지.. 기선제압 후 명함 정도만 받아 둘 생각이었겠다. 중국어를 하는 직원에게 시켜서 '너희 테는 싸구려 같으니 거래를 못하겠다' 고 통역하라 했다. 재미있는 건 그 직원은 그런 말은 못 하겠다며 호텔로 쏙 들어가 버렸다는데,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야기한다. 그 일을 사례로 나를 포함, 다른 직원들에게 자꾸 이상한 트집을 잡는데 그 홍콩 출장 이후로 뭔가 그녀의 아집이랄까 사람에 대한 비정상적인 태도가 점점 심해져서 최근 나도 더는 참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 직원도 융통성 없었지만, 아직까지 말하는 그녀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평생 쌓여온 갑질 마인드에 맞춰주는 사람들 때문에 그녀는 아직 착각 속에 산다. (그 중국어 친구는 결국 기업 평점 사이트에 별1개를 던지고 퇴사 당한다.)
아무튼 케이스 업체를 만나기 전 열차 안에서 나에게 '걔들이 아마 내가 가니까 굉장히 준비를 해두고 점심도 비싼 데서 대접하려고 할 거야' 라며 한껏 갑으로써의 즐거움을 만끽할 기대에 가득 차있었다. 나는 '우리 주문량은 걔들한테 아무것도 아닐 텐데 김칫국을 너무 드시는구나' 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녀의 인생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공장에 가자마자 간신배 같은 직원들이 뱀 같은 혀를 놀리며 젊어지셨다는 둥, 직원을 교육하겠다는 둥, 오너의 마음은 오너만 안다는 둥 온갖 아양을 떠는데 나는 쟤들이 왜 저러나. 아무튼 그녀의 습관대로 일단 컴플레인을 걸며 다른 공장이랑 할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너네랑 하니 이런 하자가 들어와 우리 제품의 등급이 떨어져 보이는데 어떻게 책임질 거냐며 으름장을 놓는다. 오너급들은 호들갑을 떨더니 이내 약속이 있다며 사라졌고 그녀와 케이스 업체 직원들 그리고 나만 남아서 사장이 하는 자기 자랑과 이상한 훈육에 고개를 끄덕이기 바빴다.
그녀의 문제는 비교를 한다는 거다. 사람에게 는 가성비를 따지면 안 되는데 그녀는 그렇게 한다. 그리고 사실 나도 가성비 면에서 살아남았다. 사람을 그런 식으로 보는 사람들이 오너가 되고 돈을 많이 벌고 건물주가 되는 세상. 나는 그렇게 될 수 없는 것인가라는 생각까지 흘러가 그녀가 업체와 대담을 하는 동안 갑자기 슬퍼졌다. 저런 사람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벌겠다고 이 자리에 있는 꼴이라니. 세상의 아버지들이 너무 불쌍하게까지 느껴졌다.
나는 그녀의 말에 거의 동의를 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고, 그녀의 인생을 알기에 사실 측은한 마음이 더 드는 게 사실이다. 우리 회사에는 협력사를 포함해 사장이 말하는데 무조건 yes라고 말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한 때는 직언을 하지 못하는 간신배라고 생각했다. 역사에도 무지몽매한 오너나 왕에게 사탕발림으로 뱀 혀만 내두르는 간신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지금은 그 간신배들은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상대방을 안쓰럽게 보는 사람들이 아닌가란 이상한 생각까지 하게 된다는 거다. 그녀의 행동을 따라다니면서 같이 다니는 나는 부끄럽지만 한편으로는 불쌍하기 때문에 그냥 나도 네네 하면서 바보같이 보여도 따르는 면이 많기 때문이다. 사업을 비 이성적으로 꾸려나가도 내가 상식적인 선에서 정리해서 진행하기 때문에 또 크게 엇나가지도 않아 보인다. 본인이 말을 했는데 일을 예쁘게 꾸며서 좀 풀린다 싶으면 자기가 시켜서 된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전에는 그게 아니라 제가 다 바꾼 거예요 말했을 법도 한데 요즘은 '맞아요!' 라며 박수를 쳐주는 간신배가 되었다.
그녀의 고집 혹은 강한 아집은 점점 더 굳어지고 있다. 그 아집이란 딱딱한 기둥의 바탕은 언제라도 흐물어질 모래 위에 얹혀있다. 사무실에서 낡은 그녀만의 세계관을 떠드는 그녀. 젊은이를 포함한 주변인들은 저급한 그 사상에 놀랄 지경이다. 하지만 가끔 고구마라도 삶아오는 날이면 본인은 무한한 아량을 사람들에게 베풀며 사업을 하며 월급을 주고 그 식솔들도 먹여 살리며 간식도 챙겨주는 따듯한 애국자라 떠든다. 그러다가 휴가 이야기(1년에 휴가 2박 3일)에 관한거나 조금 먼저 귀가를 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대번 독설을 내뱉기 일쑤다. 사람의 말에는 아무리 미운 사람이나 멋진 사람도 일정량의 맞는 말과 일정량의 헛소리가 항상 섞여있다. 이런 말에는 취향이 있어서 누구는 좋아하기도, 누구는 싫어하기도 한다. 보통은 싫어할 이야기겠지만, 그저 나는 비위가 조금 더 강해졌나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맞는말 같기도 해서 흠칫 놀란다. 세뇌된게 아닌가란 생각에 종종 우울하기도 하지만 여기서 바보처럼 살아가려면 코드에 맞춰주는게 올바른 생존 방식이다. 그리고, 웃긴건 요즘은 점점 맞는 말도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길지만 이후로 공장 4군데를 방문. 비슷한 레퍼토리로 하루를 낭비했다. 올라오는 기차 시간이 너무 늦었지만 역시나 저녁 한 끼 얻어먹지 못하고 비자발적 단헐적 단식. 케이티엑스에 탑승. 집에 돌아오니 열 시 반. 허탈하고도 지친 몸을 씻기고 작은 맥주 한 캔 까면서 글을 쓴다.
최근 일이 많다. 사무실에도 원래 진행하는 브랜드 +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기로 했기에, 케이스, 제품, 슬로건 등등 3월까지 나와야 한다는데 이건 살인적인 스케쥴이다. 게다가 외주 받는 브랜드도 0부터 100까지 혼자 만들어야 한다니.
회사의 브랜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간 코로나로 인한 암흑같은 매출 때문에 새로운 브랜딩을 소홀히 하며 대금 납부를 차일피일 미루시던 그녀. 항상 나와 눈이 마주치면 나는 얼른 진행하고 돈 주고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소리만 해댔기 때문에, 직원이라 오너 마인드를 모른다며 핀잔이나 들어가며 예상 기간보다 8개월이 더 지났다. 나는 어차피 늦게하나 빨리하나 결과물은 똑같고 비용도 같으니 돈 있을때 주자는 의견이었다. 대번 상황이 악화되어 그 대금조차 지급하지 못할 상황에 그녀가 어떤식으로 뻔뻔하게 굴지는 예상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주엔 드디어 마무리 짓자며 죄송한 마음에 브랜딩 디자이너를 모셨다. 마지막 컨펌받고 결제받으면 끝나실 거 같다고 귀뜸을 했고 업자분도 마음 편히 오셨으리라. 그러나 그녀는 대뜸 '왜 이리 늦었느냐' 라더니 '이런 식으로 해서 먹고 살겠느냐. 늦었으니 비용을 깎아야 응당하나 내가 일 하나만 더 맡기고 마무리하겠다'며 머리에 있는 것들을 마구 던져댔다. 아마 내가 상대 업자였으면 서류대로 하자며 표정이 변했을 테지만, 이 분도 고수였다. 웃으며 그리 하겠다며 약간의 잔금을 받고 일어나 떠나던 그 모습. 더는 이 건물에 있기 싫은지 허겁지겁 내려가던 그 뒷모습에 나는 한없이 죄송하기만 했다. 이렇듯 내가 왜 미안해 해야하는지 모르는 일들 사이에서 나도 점점 이상해지는 건지, 성인이 되어가고 있는지 뭔가 변하는 중이다. 사적으로 커피도 한잔 하자던 브랜딩 업자분은 더이상 그런 제안을 하지 않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아 일단 새로운 브랜드를 하는 업체와는 구두로는 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서로 생각하는 비용이 맞지 않았으나 서로 제시한 비용의 중간선으로 가기로 했다. 이 외주의 가장 큰 문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요구사항은 본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는데 있다. '선 무당이 사람 잡는다'. 일단 일정면에서 전혀 감이 없는 사람들이라, 이게 어떤 일인지 모르는 모양이다.
- 번외 : 케이스 공장에서 나와 함께 일을 하느라 자료가 오고 가는 중인데, 그녀에게 하도 닦였는지 나에게 화풀이를 해서 일하기 너무 힘든 상황이다. 이렇게 울화가 치민적은 전임 팀장과 전임 직원 이후로 처음이다. 나는 매일 겪는 일인데 그녀들은 잠시 당하고 심각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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