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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런칭기_2 (미팅과 비용 협상)

beos 2020. 11. 9. 16:06

브랜드 런칭기 1화를 쓰고 미팅은 이후 2번, 메시지와 통화는 몇 번 오고 갔다. 많은 대화를 하고 느낀 점은 업체가 이 업계를 너무 모르면 서로 어렵다 였다.

 

 새로운 사람들이 안경 업계로 들어오면서 최저가 사이트에서 공산품 가격을 비교하듯 몇몇 안경 공장을 돌며 가장 낮은 단가를 본다. 공장에서는 본인들이 만든 샘플을 꺼내거나 브랜드를 내세우지만, 새로 시작하는 그들은 무엇이 잘 만들어진 테인지, 무엇이 싸게 만들어진 건지 모른다. 새로 접근하는 그 사람들이 아는 거라곤 요즘 인터넷에서 마케팅으로 하는 말인 '마추켈리 시트', '티타늄', '독일산 나사', '30년 장인의 피팅' 등 썩 중요하지 않으면서도 중요하게 언급해 둔 텍스트들을 나에게 열거했다. 그건 기본이기도, 기본이 아니기도 하다. 

남자 고객에겐 안경 성분과 스펙이 중요하다. 그러나 적당히 패션용 선글라스로 쓰는 여자 사람 타겟에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요인이다. 사람마다 중요하다고 느끼는 포인트가 다르겠지만. 티타늄을 다루면 결국 중국에서 흘러온다. 세계에서 한국이 사출이나 스테인레스를 저렴하고 엄청 좋은 품질로 만든다는걸 이 사람들은 모른다. 물론 잘 설계된 안경에 국한된 이야기다.

 

 

아세테이트 시트 이미지. 개성과 매출은 별개이지만, 같이 가면 폭발적이다.

 

 

 

첫 미팅때 였을 것이다. 안경 샘플을 보고 싶다 하여, 일단은 내가 쓰고 있던 제품을 벗어서 보여주니 바닥에 놓고 뒤집어 놓는다. 안경 피팅이 균형 잡혀서 된 건지 보려는 의도는 알겠으나, 이미 내가 쓰고 있는 거라 내 귀에 맞춰져 있느라 비대칭으로 맞춰 놓았다. 그러고는 손으로 안경을 톡톡 눌러보며 다리 양쪽 균형이 다름을 내게 보여준다. 매서운 눈빛으로 '이렇게 안경이 흔들리면 불량이지 않나요? 이런 건 반품 가능이겠지요'라고 운을 띄우셨다. 이 판을 모르는 사람들이 안경 시장에 들어왔다가는 업자에게 먹히기 딱이니, 방어 기재를 갖고 있는건 이해를 한다. 나도 을지로에 가면 애써 아는 단어들을 쉽게 풀어내려 노력했다. 아저씨들은 다 알겠지만.

 

단가와 수량 품질은 유기적인 것이다. 무조건 비싸다고 품질이 좋은것도 아니지만 단가가 낮으면서 수량도 적고 품질이 좋을 수는 없다. 운 좋게 그런 가격대 생산을 한다 한들 그런 상황에는 공장에 요구를 하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샘플링, 빠꾸, 재작업 이런 거 없다. 그러나 외부에서 사업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은 공장가와 품질, 수량에 대한 감이 없어서 적정한 위치가 무엇인지, 본인들의 가격대, 브랜딩 포지셔닝이 어떤지 알고 접근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브랜딩, 시그니쳐가 나와야 제품에 아이덴티티를 심는다 했으나, 브랜딩 업자를 아직 섭외하고 있던 상황에 브랜드 이름도 없었다. 게다가 1월에 전 제품이 들어와야 하는데 11월에 샘플도 없이 미팅을 하며 내가 기획안을 가져가야 했다.

 

합의된 비용에 기획, 디자인에 생산 품질과 기간까지 맞춰주고 최저가로 해줘야 하다니. 서글퍼졌다. 물론 이 정도 비용이면 가세에 도움이 되고 디자인과 생산 주기를 여유 있게 가져간다면 할만하겠지만 지금 상황은 조금 다른 이야기였다. 리스크가 너무 크다. 상대는 나의 몸값에 대해 넉넉하게 잡았다며 견적을 보냈고 나는 고민 끝내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제가 생각했던 해야 할 일은 아이웨어 10 모델 1시즌 기획, 디자인, 컬러링, 샘플링, 감수, 핸들링을 거쳐 소비자에게 하자가 없는 매력적인 제품을 만들어 재고와 판매 수량까지 신경 쓰는 일입니다.

 안경업계에 처음 오시지만 시간, 비용, 사람들 사이에서 헤매지 않도록 도와드리는 길잡이가 될 거고요. 기간이 급한 만큼 분명히 얼굴이 붉어질 일들도 있을 거라 예상합니다. 비용, 수량, 컨셉 등 제가 할 수 있는 바운더리 내에서 투입 대비 소비자에게 잘 팔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말씀드린 함축적 비용이었습니다.

제시해 주신 금액으로는 고민이 되는 일입니다.

 

그리고 결국 업체와 나의 견적 중간 비용으로 잡아서 진행을 하기로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찜찜하긴 마찬가지였다. 경력으로 같은 일을 해도 회사에선 덜 스트레스 받으면서 같은 퍼포먼스로 3배 이상은 받는거 같은데. 라는 생각과 오래간만에 실력 상승이 되겠다 라는 생각이 공존했다. 전에 다른 브랜드 외주를 해주면서 다른 분위기의 프레임을 디자인하고 설계하면서 실력이 향상됨을 스스로 느꼈기 때문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마켓이 다르고 유통 방식이 다르다. 공장 주기가 다르고 발주 수량이 다르다. 이건 일을 하면서 들어오는 비용 외로 나에게 체득되는 엄청난 재산이었다. 그래서 이러니 저러니 일단 해보자고 생각했다.

이후 컨셉이니 돈이니 주기니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1~2주가 흘러갔고 하고 싶은 제품의 이미지를 보내달라 요청드렸다. 마이키타x마르지엘라나 램토쉬, 레스카와 같은 제품들의 사진이 넘어왔다. 마이키타를 제외하고는 썩 미니멀하고 시크하진 않은데. 컨셉이랑 테랑 완전히 상관이 없다고 했다. 그래도 컬러를 모던하게 빼고 너무 빈티지스럽지 않고 현대적인 쉐잎으로 깔끔하게 빼면 할만하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기본 느낌은 가져가도록 노력하고..

 

 

그게 위험한게 요즘 미는 방식이다. '빈티지를 현대적인 눈으로 재해석'하는 어쩌고. 나도 새 브랜드를 기획해주면서 그런 소리를 하고 있었고, 상대 업자들은 흡족하게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말을 하다가 말고 그런 식으로 가면 안 될 거라고 마무리 짓고, 이번 일정이 너무 타이트하기에 리스크가 크다. 큰 돈을 들이는 만큼 여유롭게 고민을 많이 하고 가는 게 좋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대략적으로 잡은 일정은 이러했다. 샘플링, 수정을 할 시간도, 제품의 문제도 용납을 못하는 일정표. 

 

11월 1째주) 기획, 제품 콘셉트, 10모델 러프한 디자인 (브랜딩에 따라 변동 가능한 요소는 남겨 둠)

11월 2째주) 도면화, 컬러링

11월 3째주) 시트 컬러 선택 (대구 출장) 및 최종 발주 (인보이스, 공장 입금) 

12월) 핸들링, 샘플링 된 템플 및 아세테이트 컬러 체크 가능

1월-춘절) 핸들링, 템플 수입, 21 FS 기획 및 제안

2월-춘절) 핸들링, 프론트 국내, 메탈 샘플 확인, 21 FS 기획 및 제안

2월 말,3월 초) 카운터 샘플링 최종 검수

3월 중순) 납기 (PL, 공장 입금) 및 검수, 판매 시작

 

상대 업체는 여기서 일정을 못 맞추면 손해배상을 할 것이냐 말을 했다. 공장에서 서류는 써 줄 것이라 이야기했고, 공장이 자신 있으면 진행하겠지만 내가 보는 입장에서는 못 벌어도 하면 안 되는 일정이었다. 이러다가 실수 나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싸게 하지만 품질은 좋게, 수량은 남기지 않도록 적게, 하지만 급하게 만들자고 요구하는 업체의 문제인가, 할 수 있다고 말한 공장의 문제인가.

어찌 되었든 공장에서는 디자이너가 일정만 맞춰주면 오케이라고 했고, 디자이너인 나야 밤을 새든 휴가를 내서 일을 만들어주면 되니 진행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다만 너-무 급하다는게 문제였다. 도면을 삼일만에 대여섯 모델을 낸다는건 붙혀넣기가 아닌 이상 아니면 디자이너, 도면쟁이 선수와 같이 하지 않는 이상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눈채 하루이틀 안으로 브랜드의 무언가를 닮고 싶은 샘플 구매해서 보내달라고 이야기하고 나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집으로 와서 아내가 차려준 늦은 저녁을 먹었다.

 

 

미팅 다음 날 전화가 왔고 내 말대로 내년 봄쯤에 기획을 들어가서 제품도 일찍 준비해놓고 겨울엔 마케팅이나 촬영 등등을 하면서 시간을 갖고 내 후년에 출시를 하겠노라 연락이 왔다. 나는 일이 진행되지 않았다는 아쉬움보다는 일을 제대로 잡고 갈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훨씬 컸다. 유행을 타지 않는 브랜드를 만든다면, 초반 매출이 크지 않아도 브랜드 분위기로 밀고 나갈 수 있다. 이건 그 회사의 의도였다. 그런건 시기가 급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많은 정보만 얻고 업체는 빠졌다. 아마 나의 말들을 듣고 일을 접거나 다른 곳에 접촉할 확률이 높지만, 전에 언급한 대로 한 청년들의 삶을 곤난하지 않게 만들어줬다 생각한다. 그 일을 집으면서 나에게 들어오는 수입은 앞으로 내 삶에 그닥 지대한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그리고 사람의 일이란 돌고 돌아서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다.

 

대화가 마무리되고 지금 회사도 새 브랜드 런칭이 3월이니 제품 작업 지시서를 다음 주 까지 보내야 한다는 것이 떠올랐다. 또한, 다시 기복이와 하려던 프로젝트도 이 정도 스트레스로 끌고 간다면 무조건 성공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원래 해야하는 일들을 잘 마무리하고 올해를 넘기자고 생각했다. 조급한 일들이 지나가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아직 예정일을 일주일 남긴 아내에게서 배 느낌이 이상하다고 연락이 왔다. 나는 허겁지겁 퇴근을 했다.

 

 

-브랜드 런칭기 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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