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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본문
플로리안 (줄여서 flo라고 부름)은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프랑스인이었다. 또래도 맞고 같이 반년쯤 일하면서 수다를 많이 떨었다. 다른 호주나 영국 애들과는 조크나 던지면서 놀았다면 플로랑은 그래도 많은 대화를 나눴고 꽤 재미있었다. 지금이야 연락을 안 하지만.
일과는 일찍 일어나서 식사, 4시간 일, 점심 먹으면 일과 끝. 매일 운동하고 씻고 저녁 먹고 삼삼오오 모여서 weed나 돌려 피던 때가 내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참 평화로운 시절의 기억이다. 정확히 이때부터 일과 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적게 일하고 시간이 남아도는데 돈도 풍족하고 다들 행복하다니? 오래간만에 생각해봐도 경이롭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며 워홀 하듯 살자는 마음으로 왔는데, 어느덧 그 삶과는 정 반대로 살고 있다.
(생각해보니 한국은 돈을 써서 표현해야 할 일이 많으나 호주는 그런게 중요하지 않았다.)
하루는 플로랑 모닥불 피워놓고 글로벌 시대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요는 재미없다는 것이다. 일단 단어 자체가 식상하다. 이제는 외국 한번 다녀왔다고 글로벌 인재를 운운하는 이력서는 위험하다. 세계는 너무 비슷하게 흘러간다. 세계 도시의 빌딩 숲. 랜드마크, 자국어로 된 간판이나 도로 방향만 아니면 어느 나라인지 구분하기도 어렵다. 자동차도 모든 나라의 차가 뒤섞여 도로를 메운다. 동양인 삼십대나 백인 십대나 듣는 음악도 같고 기후는 달라도 도로법, 전철, 집의 형태도 사이즈도 유사하다. 하나의 이론이나 시스템이나 디자인이 히트 치면 전 세계에서 따라 한다. 각 나라로 프랜차이즈가 진출했기 때문에 쉽게 세계 음식을 맛볼 수 있어서 새로울 음식도 없다.
이는 인터넷과 여행의 발달 덕이다. 인터넷이 끊기고, 무역이 끊긴 상태에서 각자의 시간이 더 지난다면 조금 더 울퉁불퉁해져 서로 다른 즐거운 면들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천년의 시간이 지나서 서양인을 만난 동양인처럼 말이다. 인도의 향신료를 처음 먹어본 영국인처럼. 외계인이나 귀신을 만난 것처럼.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유효했다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더 빨리 총기를 받았어야할까, 한글이나 측우기를 만든 머리 좋은 한민족들이 타국보다 로켓을 먼저 만들었을까. 알 수 없다.
`being global` 하는 것은 단군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왔던 우리에게 새로운 물음과 깨달음을 던진다. `무조건 외국의 선진 문물들이 최고다` `한국이니 전통이니 모두 촌스럽고 거추장스럽다`라는 관념을 가진 채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이는 비단 외국물을 먹은 사람들의 문제가 아닌 상황상 가보지 못한 피해의식을 가진 사람들도 그렇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모두가 꼭 그렇지는 않다. 한국의 것이 아닌 세계의 것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던 사람들이 되래 애착을 갖거나, 보수적인 형태를 띄는 사람들을 많이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문화는 정확히 어떤 것 인지, 한국인이기에 느낄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동양의 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끌려가리라. 외국 패션대학에 간 친구들이 자연스레 오리엔탈리즘 적인 영역을 파고드는 이유리라.
서양의 것이기에 더 멋지고 훌륭하다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은 몇 제외하고 이제는 거의 없을거라 본다. 국뽕도 벌써 지루해지는 차에, 세계마다 다른 환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OECD 지표를 들이대는 것 또한 식상하다. 그렇다고 해서 오직 흥선대원군의 정책처럼 한국적인 것만을 추구하고 문화적으로 폐쇄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도 옳지 않긴 한데, 아무 데나 열어 제끼는거보단 요즘 같은 시대에 개성이라도 있지 않을까. The most personal is the most creative. 가장 경쟁력이 있다.
물론 뿌리를 잘 보존하고 유지하되 상호간의 배타성과 우월주의적 의식을 없애고 진실 되게 타문화와 융화되고 발전시켜 새롭게 만들어내는 새 문화로 경쟁력을 가져갈 수 있겠지만 그런 건 아마 천국이 존재한다면 그 곳이다.
몇십 년 지나면 우리 나라 국민의 10%가 혼혈일 거라 한다. 시간이 더 지날수록 잡종이 되어 더 건강하고 우성인자가 더 발현되겠지. 미의 기준도 이미 전 세계가 거의 공통인 마당에. 세대가 거듭할수록 국가간의 얼굴 형태도 비슷해지고 결국 언어도 세개 정도로 줄어들지도. 이렇게 세상이 흘러가는 시대에 전통적인 근무방식과 유통을 고집하는 것은 빙하기의 공룡과 같다. 시스템을 만들던가, 유연하게 짜인 시스템으로 들어가던가. 둘러보는 사이에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두렵다.
아무튼 세계화의 좋은 점은 적당히 좋은 것들을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장소에서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적당한 삶도 좋지. 좀 폐쇄적이어도 좋고. 애플이나 중국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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