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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런칭기_1 (미팅) 본문
‘돈 쓰고 시간 쓰더라도 만들고 싶은 안경을 만들어보자'는게 작업실을 계약한 이유다. 다른 일들도 더 생기면 좋고.
회사에선 만들고 싶은 모양으로 억지로 만들어봐야 안 팔릴 테고, 회사의 브랜드 결도 그렇지 않으니 그런 식으로 전개할 수가 없다. 철저하게 돈을 물고 올 제품들을 좋은 가격과 맞는 수량, 적절한 시기에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하여 지난 몇 년은 디자인에 할애는 안 하고 부속 값에 제품값, 입고 시기를 정하고 공장을 쉬지 않게 굴려야 하는 등 디자인 외적인 일을 하면서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었다. 뻔한 물건만 만들어야 하는 좋지 않은 사이클에 들어가 있었다. 여기서 에너지가 빼앗기니 작업실에서 만들고 싶은 제품을 만들지도 못하면서 기력이 빠지고 있었다.
그러나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알음알음 안경 브랜드를 기획한다는 회사를 소개받았다. 친구들의 결혼식장에 잠시 들렸다가 주말 낮 이태원으로 미팅을 하러 갔다. 멋쟁이들이 많았다. 좋은 옷을 사고 싶어 졌다. 외주를 성공해서 옷을 사야겠다고 다짐했다.
몇 해 전 온라인 브랜드 몇 개 정도 외주를 받고 디자인은 해봤지만, 기록을 안해서 아쉬운 차였다. 이제는 해나가는 안경 일에 대해 열심히 정리해야지.
상대 회사는 미국에 유통을 하면서 스트릿 브랜드를 전개하는 등 캐쉬카우는 갖고 있었다. 대표 둘은 동업인데 키가 너무 크고 훈훈해서 모델하던 사람들인가? 생각했다. 그들을 소개받은 루트에 패션 전공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입고 온 옷, 테이블에 올려둔 브랜드에서 그 사람들의 취향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결혼식을 다녀오느라 정장을 입고 내가 전에 만들었던 안경을 쓰고 있었다. 나에 대해 외적으로 파악 가능한 건 아마 계산 기능이 있는 카시오 시계와 안경뿐이었을게다.

그분 들은 대구에서 안경 공장도 다 알아보고 온 상태. 원래 훌륭한 아이웨어 디자이너를 먼저 소개를 받았었는데 (언더그라운드에서 유명한 브랜드) 실제품까지 뽑기 위해 공장을 핸들링하려면 MD 경험자가 필요하다고 기회가 나까지 왔다. 보통 작은 아이웨어 브랜드에서는 자금 및 공장 핸들링은 대표가, 드로잉은 대표가 그려달라는 대로 툴 다룰 줄 아는 안경과 무관한 사원이 그리는 게 국룰이다. 그 보단 조금 큰 곳은 대표는 자금, MD는 단가 및 마진 계산과 핸들링 및 수량과 AS 관련 공장과 소통, 디자이너는 대표와 MD의 요구에 맞게 아이웨어 도면을 그린다. 사정이 좀 좋은 곳은 디자이너가 그리는대로 제품이 나온다고 한다.
나는 영업사원만 많은 회사에서 혼자 기획하고 도면도 그리고 다이렉트로 공장에 수량을 예상해서 알아서 넣는데, 이게 빛을 발했다. 미팅도 해보고 주변 안경디자인하는 친구들을 보니 공장 핸들링이 가능한 친구들은 전무했다.
디자이너가 공장만 알면 돈 넣고 도면 넣으면 샘플뽑고 생산이야 할 수 있겠지만, 공장이 도면대로 제대로 만드는 것과 단가, 수량을 맞추기는 어려운 일이다. 머리에 있는 대로 그려서 보내봐야 공장은 도면에 문제가 있어도 정말 그대로 해오던가, 지 맘대로 만들어오기 일쑤기 때문이다. 나야 다년간 여러 번 당해봐서 그 부분은 빠삭해졌다. 회사에서 미친 듯 비난의 화살이 날아온다. 공장은 아기 다루듯 어르고 달래고 때론 화도 내며 설명을 해야 한다. 그래도 틀린다. 그 뒤는 화로에 들어간 그릇이 생각보다 잘 나오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릴 뿐이다.

만약 큰 기업에서 디자인만 하고도 인정받고 넉넉하게 살 수 있다면 디자이너가 좋다.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들이나 제품 디자이너는 회사에 소속해서 그림만 잘 그려도 잘 먹고 산다. 그럴게 아니면 관련 업체를 굴릴 줄 아는 디자이너가 되는 게 생존에 유리하겠구나 라고 다시 한번 깨달았다.
정적인 분위기의 여성 브랜드를 런칭하고 싶다고, 선글라스 위주로, 이미 브랜딩은 진행 중이고 컨셉도 정했다고 한다. (남자 타겟 브랜드는 돈이 안된다.) 이태원에 단독 샵을 차릴 거라 인테리어 디자이너까지 미팅을 했다 한다. 돈 많이 쓰네. 근데 아이웨어 디자이너와 MD를 이제야 찾았다. 내년 3월에 정식 론칭이 목표란다. 너무 촉박하다. 새로운 프레임은 생산만 반년 잡아야 하는데, 춘절도 끼고 요즘은 공장이 잘 안 돌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들으면서 서로 정보를 모아갔다. 솔직하게 다 말했다. 업계가 포화상태고, 있던 회사들도 도산하는 분위기라 괜찮고 마케팅 많이 했던 브랜드 제품들도 도매가로 소비자에게 대량 풀리는 실정이라고. 이거 너무 안 좋게 이야기해서 사업 접는 거 아냐? 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중간에서 잘해주고 대가만 받으면 되는데!
그래도 리스크를 인지하고 진행하는게 대비책도 세울 수 있고, 설령 브랜드 시작을 안 한다 해도 젊은이들의 청춘의 대가를 줄여줬다 생각하자. 그리고 업계의 어색한 분위기는 나에게만 위기로 보이지 다른 관점의 사람들에게는 기회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것.
생각하는 분위기는 카린이나 마르카토 정도라 하길래, 윤 아이웨어 분위기도 참고하라 일러줬다. 테 품질은 퍼블릭 비컨이나 페이크 미, 언커먼 아이웨어 정도를 생각한다 했다. 일단 안경 포함 10 모델, 선글라스 7대 도수 3 비율.
그쪽에서 알아온 안경공장의 단가는 이미 알고 있었고, 문제는 객단가와 수량이었다. 그런데 그건 디테일에 따라 많이 차이 나기 때문에 섣불리 말씀드리긴 어렵고, 생각하시는 정도의 테를 가져오시거나 모델명을 알려달라 했다. 여기까진 지난주 이야기고 다음 주엔 그쪽에서 모아 오는 샘플들을 들고 미팅을 하기로 한다.
새로운 브랜드가 나오기에 좋지 않은 시기는 확실하다. 근데 모두 눈이 돌아갈 만큼 신박한 제품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소비가 일어나지 않는 점도 있다. 그도 그럴게 대구에 하우스 브랜드를 생산하는 두 업체 중 한 업체는 정리하고 젠몬으로 흡수가 되었기 때문에, 남은 H**에서만 하우스 브랜드들을 핸들링한다. 한 업체에서 모든 브랜드를 핸들링하니 암만 도면이 달라도 비슷한 느낌의 테들이 나오지 않을까. 머 물론 이제는 브랜드들도 눈치채고 각자 하도급 공장을 찾고 직접 거래하고 있겠다만. 프로젝트 프로덕트는 실제로 대구에서 Factory 5**이라는 공장을 세워 자체 공장으로 돌린다고 올해 봄쯤에 들었다만 이것도 쉽지 않다. 믿음직한 브랜드나 믿음직한 공장이 아니면 돈 떼이고 야반도주도 많이 보았다. 같이 하는 공장 사장님은 베디베로 선글라스 만들어줬다가 아직도 결제가 안돼서 파산 직전이란다. 세원도 사람들이 대거 빠져나오는 중이다. 옵티션 찰리를 만든 bcd 아이웨어는 브랜드들을 정리하고 잠잠하다가 최근 새로 쿨케이 안경을 만드는 거 같았다. 아무리 브랜드들이 죽는다지만 생명체처럼 다시 생겨난다.
웃기는 건 투자자, 유통사만 죽고 새로 탄생하지만 공장들은 그 공장이 그 공장이라는 것이다. 도주했던 공장들도 기사회생하듯 다시 살아나 스멀스멀 대구로 돌아온다.
나는 그런일을 방지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핸들링하다가 중간에서 괜히 소송당하는 일들도 심심찮게 본다. 위험한 세상이다. 여하튼 남의 브랜드 제품을 만드는데 중요한 요인은 따로 있다. 헝거게임에도 나오는데, 투자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여야 한다는 것. 제품이야 언제나 최선을 다하지만 제품에 사소한 이슈는 무조건 있다. 나는 제품이 나왔을 때 디자이너의 의도와 약간 달라도 소비자에게 팔리는 포인트만 잘 짚으면 약간 성에 안 차는 정도는 넘어는 편이다. '이 정도면 됐다, 혹은 생각보다 괜찮다.' (물론 안 예쁘거나 구조적 문제점은 무조건 반품이지만) 이런 점에 까다로운 사람들은 도면과 정확히 대면서 0.5미리도 차이 안나는 점에 태클을 건다. 이런 점에 예민한 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도면과 별개로 그냥 결과물만 보았을 때 팔리겠다는 판단이 든다면, 시간, 돈, 감정 낭비하지 말고 진행하자는 거다. 그렇게 디테일을 잡아야 하는 건 다른데 있다.
- 다음 미팅 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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