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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현 본문
그를 만난 건 내가 2015년 말 문래의 안경 공방에서 선생질을 할 때였다. 나는 공방 형 누나들이 필요로 하는 걸 서포트했다.
2013~15년은 ,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시간이 지나 안경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결정했던 시기다. 한국에 공예라 할 만안 안경은 황순찬 선배님의 '얼굴에 선을 긋다', 뿔테로는 김종필 선생님의 '수작전', 브랜드는 없지만 손님들의 프레임을 맞춤으로 깎아 만드는 '로코 안경 공방'이 있었다. '얼굴에 선을 긋다'는 작가와 안경원 대표가 만나서 라디오 아이즈라는 안경원이 되어 사업화가 되었다고 들었으며 당시 애쉬크로프트라는 브랜드가 블로그 감성 글을 필두로 치고 나오고 있던 시기였다. 그리고 백개가 넘는 하우스 브랜드들이 우후죽순 피어나는 시기였다.
손님으로 온 노태현은 깐깐하고 꼼꼼했다. 도면도 잘 그려왔다. 그는 산업 디자인을 전공하고 에이전시를 다녔지만, 안경을 제대로 만들겠다며 안경 광학과가 있는 대학으로 재입학, 안경사 자격증을 딴다. 사람의 눈, 렌즈나 프레임의 구조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디자이너다. 그는 학교를 다시 다니는 2년 간 대구의 안경 공장에서 포장이나 도면, 디자인 알바를 했지만, 대구 특성상 돈을 못 받는 수모도 겪는다. 그리고 주말에는 서울로 종종 상경해서 공방에서 안경을 직접 깎았다. 대단한 열정이었다. 꼼꼼한 그에게 우석이 형은 대충 하라면서 힘들어했지만 우리는 이런저런 사람 사는 수다를 떨었다.
그는 디테일에 집착하는 까탈스러운 손님이었지만 빈곤한 나의 상황과, 우아하게 서울의 디자인 학과를 나온 그의 교점엔 언제나 '아이웨어’가 있었다. 연령대도 맞고 진하게 겹치는 교점 덕분에 급격하게 친해질 수 있었다. 두 남자는 두 번째 만난 날, 가난한 주머니로 허접한 안경 이야기로 밤새 필름이 끊기게 마셨다. 존댓말 반말 섞어가던 사이였는데, 다음 날 숙취와 함께 어색한 연락을 했던 기억이 난다.
초반에는 서로 수제 안경이 좋아요, 장비는 뭐가 좋아요, 작업실로 오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템플에 심은 어떻게 박았어요, 여자친구 생겼어요, 헤어졌어요, 취업했어요, 요즘은 무슨 안경이 잘 팔리는 거 같아요, 안경 그리는 툴은 뭘로 써요 와 같이 사소하지만 반드시 지나쳐야 하는 시기를 지나 지금은 각자 크게 상사가 컨펌하지 않고 신모델을 낼 수 있는 자리까지 와 2020년 을 다 보내는 중이다.
그와 나는 비슷한 업무에 포지션인데 회사가 다르기에 디테일하게는 부가적인 일들이 조금 다르다.
그는 회사에서 특이한 입지를 가졌다. 오래된 유통회사에서 짬도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친구가 '디렉터'라는 명함을 얻게 되었는데 얼추 듣기에 회사 상무님께서 그의 특이한 이력을 보고 입사 권유를 하게 되어 기업 안의 작은 개인 브랜드를 만든 신기한 사례다. 대기업에서 지원하는 개인 디렉터 브랜드랄까. 그렇게 그가 회사에서 투자받고 만든 브랜드의 이름은 라치오랩 (Ratio Lab) 이고 일 년 반인가 이 년 정도 되었나 보다. 팝업 스토어도 열고, 음으로 양으로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의 브랜드 컨셉은 이렇다. 뇌피셜이다.
통계학적 측면으로 봤을 때, 평균 데이터 밖의 사람들에게 집중. 그 범위를 넘어가는 사람들을 유입시키겠다는 생각으로 브랜드를 전개한다. 평균보다 큰 얼굴의 고객에게, 혹은 작은 고객에게 편안함과 멋짐을 제공하겠다고. 작은 프레임이 예쁘지만 얼굴이 큰 사람은 다리를 크게 벌려야 하고, 안경이 못생겨진다는 이유 등등 안경을 써 본 입장에서 여러 고객의 아쉬움을 만족시키는 제품을 고민하고 솔루션을 준다. 심미적으로 아름다운 안경도 중요하지만 보다 한 단계 더 넘어간 고민을 담고 있다.
너무 빨았나?
온라인 상에서 티 나게 빈 홍보를 하지는 않는 편인 거 같다. 그게 싫은 건 브랜드에 애착이 있기 때문이다. 빈수레가 요란한 법. 빈 수레처럼 보이기 싫은 거지. 이번 주말에는 무의미한 팔로워를 늘리는 게 중요한가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는데, 패션 온라인 셀렉샵에서 일하는 동생은 빅 브랜드는 팔로워가 많지 막상 소비자들은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다는 등 반응을 하지 않는다 했다. 그게 맞는 거 같기도 하다.
그가 나랑 같은 생각인지 모르겠는데, 우리 같은 프레임 설계자들의 문제는 내 취향이 팔릴 거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시기는 지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고가 좀 생기더라도 내 마음에 드는 첫 작품들은 만들어 보는 기회는 디자이너들에게 필요하다. 그도 첫 모델들에 너무 고급 소재를 써서 많이 만든 걸 후회한다 했던 것 같다. 그에 비해 첫 프로젝트의 제품 가격은 괜찮은 편인데 가끔 물건 파는 사람들도 상업적인 측면에서 계산하지 않고 제품을 출시하는 경우가 있다. 이유는 다양하다. 아마 홍보비를 빼고 소비자에게 좋은 제품을 가격적인 어필로라도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크리라.
요즘은 카페에 테스터 모집 공고를 올렸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좋아서 의외란다. 유의미한 사람들이 가져가고 써보고 피드백을 주는 좋은 선순환을 했으면 한다.
직접 홈페이지 제작, 제품 사진 촬영, 모델 섭외, 사진작가 섭외, 헤어 아티스트, 메이크업, 복장 등 모두 디렉팅하고 한여름에 바다에서 촬영을 강행하던 디렉터 노태현의 고생에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다. 모두 처음이었겠지. 촬영 일정을 잡고 사람들을 섭외하고 지시에 맞게 굴러가게 만드는 것. 처음으로 지시를 받는 사람도 지시를 하는 사람도 힘들었을 테지. 어느덧 그는 세 번째 시즌을 준비하고 촬영 경험도 그쯤 되자 조금은 익숙해졌다고 한다. 금액과 일의 관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정립됐단다. 내가 공장과 닿아서 일을 하는 디자이너라면, 그는 소비자에게 보여주는 쪽에 더 닿아있는 디자이너다. 내가 모르는 영역을 그는 점점 알아간다. 그렇다면 나도 내 쪽에 더 가까운 기회를 살려 발전해야 하는데, 주로 공장과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나의 상황에서 요즘 성장하지 못하고 있음에 조바심이 난다. 좋은 기획과, 드로잉. 어느 정도 공장에서 그대로 만들만한 technical drawing을 입으로 설명하지 않고도 그려서 어떤 공장에 맡겨도 나의 의도대로 나오게 하는 것이 나의 궁극적인 목표다.
포지션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도면을 그리는 건 12달 중 한 달도 안 되는 거 같다고. 그건 나도 동감이다. 기획과 디자인은 고민은 오래지만 선택은 순간이다. 이후는 계속 사후 관리와 모니터링, 어떤 제품이 팔렸는지, 왜 팔렸는지, 홍보는 어떻게 했는지, 할인을 할 것인지, 어떤 채널에 더 입점시킬 수 있는지, 아니면 입점하지 말지, 촬영 시기와 촬영 준비들. 이후 업데이트와 보정, 또 다른 기획. 이런 고민들로 나머지 시간들이 흘러간다. 홈페이지 유입 인원과 구매 인원, 오프라인에서 어떤 연령과 성별층이 어떤 제품을 구매했는지. 지지리 멸렬하고 사소하면서 큰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러다 보면 점점 포지션에 대한 정체성이 모호해진다.
제품의 디자인에 대해 고민하는 시기를 지나 마케팅, 홍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더 고민한다. 그건 우리가 할 줄 모르는 영역이기 때문에 어렵다. 디자이너로서 디자인에 관한 부분을 더 날카롭게 다듬으면 좋으련만, 할애할 시간이 점점 없다. 이제는 디자이너인지 디렉터인지 아니면 그냥 직장인인지 알 수가 없다. 내 일처럼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는 회사 일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장 일과는 무관한 사람들 간의 관계나 상사의 지시 등등 많은 것들이 머릿속에 꽉 찼다가 나가고 시간은 지나 아침에서 밤. 여름에서 겨울이 되어있다.
한편으로는 포지션이 그렇게 중요한가. 요리사도 아빠였다가, 사장도 됐다가 급할 때는 배달부도 되겠지. 스스로 다 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나의 지향점으로 날카롭게 다가갈 수 있다. 하지만 작은 단위의 회사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일당 백을 해야 하는 사람들. 작은 기업의 장점은 다- 할 줄 알게 되기 때문에 사장이 될 수 있다 했다. 대기업의 장점은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했지만, 다른 일들에 대해서는 까막눈이라 했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 선택을 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