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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인 세대 본문
나는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를 '끼인 세대'라 말한다. 뭐냐면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 끼었다.. 뭐 이 정돈데 이는 또한 대단한 경험이라 생각한다.
LP시대와 플로피디스크, 카세트테이프를 다 향유하면서 어떤 학생에 의해 mp3파일이 개발되어 급격한 음악 디지털 시대로 넘어갔다. 덕분에 모든 장비들이 바뀌고 플레이어들의 외형과 사이즈가 바뀌었으며 음반을 구매하는 가게들은 사라지게 되고 본격적인 음악 공유의 세상으로 빨려 들어간다. 덕분에 공유 플랫폼이 생기면서 책도, 만화도, 비디오도 '소리바다'에 넘치게 된다. 비디오나 만화책 대여점은 망하고 와레즈에는 비번 걸린 압축파일들이 부유했다. 기술의 발달은 디자인의 급격한 변화를 이끌어내기 충분한 시기였다.
나는 왜 브라운관과 초기 lcd 모니터에 열광하는가. 손목엔 돌핀 전자시계가 채워져있지만 때가 되면 가짜 뻐꾸기가 벽시계에서 나와 뻐꾹 대던 끼인 시절. 핸드폰이 없기에 집 전화기로 친구에게 전화하면 친구 엄마가 받던 경우가 다반사라 '개똥이 있어요?'라고 말했다간 수화기 건너편으로 십오 분간 예절교육을 받기 일쑤였다. 하물며 친구 놈이 전화예절을 지키지 않으면 엄마는 가정교육 못 받은 친구와는 놀지 말란 잔소리를 듣던 시절이다. 그게 싫으면 무작정 친구 집으로 가 '개똥아~ 놀자~'를 외쳐야 했다.
인터넷이 되지 않던 PC를 붙들고 친구 집에 있던 삼국지 3을 압축해서 플로피디스크 열댓 장으로 옮겨오는데, 디스크 한 장이 뻑나 다음에 놀러 가기를 고대하던 숱한 밤들을 겪었다. 이후 인터넷이 보급화 되었지만 52 kbyte의 속도로 거리의 시인들 -삥. mp3 하나라도 받을라치면 30분은 족히 걸렸고 다운된 음악은 오랫동안 음악이 6개밖에 저장되지 않는 엠피쓰리에 저장되어있었다. 정말 많이 음미하듯 들었던 것 같다. 그 시절의 음악들은 가사도 외울 지경이다. 마치 정성스레 드립 커피를 내려마시듯 끼인 세대는 어릴 적부터 기다림을 배워온 것 같다. 이문세의 별밤을 들으며 카세트에 타이밍 맞춰 음악을 녹음 '신상균 컴필레이션 vol.5' 따위로 모음집을 늘려나갔다. 아쉽게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금방 줄어들면서 광고가 들어가는 바람에 멀쩡하게 녹음 된 곡들은 잘 없었다.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나는 애어른으로 남들 좋아하는 엄정화나 HOT, SES나 핑클보다는 패닉, 서태지나 산울림, 팝송을 들으며 또래 친구들의 음악 성향에 콧웃음을 쳤다. 이들은 모두 카세트테이프로 들어야 했다. 고등학생 때나 mp3 플레이어가 보급화되었고 핸드폰, 아이리버 mp3를 따로 들고 다니던 시절이다.
중학교 때 리복 신발을 크게 사서 꽉끈 해신던 시절, 당시 경희대에 다니던 사촌누나가 사준 에코 청바지 옆에는 수건걸이가 있었고 큼직한 맨투맨티를 입고 다녔다. 나는 선구자였으나 빠르게 찾아온 스키니 시대에 대응이 늦어 좆 찐따로 낙인찍혀 권지민과 함께 다니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다행히 공부는 잘하는 편이어서 학년이 올라가며 친구 무리가 변동되며 자연스레 큰 문제는 없었다.
DOS를 다루던 세대로 간단한 명령어들을 입력해 컴퓨터를 썼어야 했으며 도스의 몰락과 윈도우의 탄생을 지켜본 세대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변화에 익숙하면서도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는 운명의 끼인 세대.
지금 우리의 세상이 왔다. 전에도 언급했던 레트로가 그 증거인데, 단순한 소비자로서 돌아온 유행을 즐길 것인지 아니면 이 급류에 경제적 이득을 얻을 것인지는 우리의 행동에 달렸다. 우리는 변화를 즐기는 세대로써 이에 앞장서 앞으로 통화 수단이 될 것이라는 비트코인의 유행에 올라탔다가 빤스도 못건지고 빠져나온 수모를 겪기도 했지만 우리는 잘 헤쳐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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