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os

사주팔자와 애플 주식 본문

diary

사주팔자와 애플 주식

beos 2020. 9. 24. 11:24

9월 23일인 어제는 해빈이가 월급을 탔다며 저녁을 사준다길래 해피까지 셋이 만났다. 을지로 경일옥에서 퇴근 후 회동을 가졌다. 분명 며칠 전만 해도 선선했는데 이제는 쌀쌀하다고 해야겠다.

 

 경일옥은 화덕 피잣집이었다. 먼저 아주 바쁜데 혼자 일하시는 사장님께서 불친절했지만 맛도 내 입맛엔 걍 그래서 요즘은 불친절하고 맛없는 것도 개성인가 머 이런 이야기를 했던 거 같다. 하지만 그건 한국 피자 입맛에 길들여진 내 입장이고, 이태리에서 꽤 지내다 온 해피의 말에 의하면 이 정도면 거의 오리지널에 가깝다 했다. 오리지널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그런가 보다 하고 쩝쩝댔다.

 

 

 가게의 불친절에 대해 꼬리에 꼬리를 물었는데, 홍대에 무슨 타코야키집이 있는데 테이블도 두 팀만 앉을 수 있고, 먹는 거도 제한되어있으며 대화를 하면 눈총 받는다 한다. 나는 와 얼마나 맛있길래!라고 물어봤더니 맛도 없단다. 해피가 근처에 살아서 여자 친구랑 가게 앞을 지나가다가 보면 종종 고객들이 돈 아깝다며 주인 욕을 하며 나온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들어가서 먹는다는 건 도대체 무슨 연유인지 요즘처럼 평점이 중요한 세상에 어찌 보면 본인의 스타일이 맞다고 강단이 있는 건지 자신이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최근 지방에서 까페를 정리한 친구는 본인의 가게를 본인의 취향대로 운영하고 싶었는데 소비자들의 댓글과 평점에 그러지 못하고 민감했다고 한다. 원두에 자부심이 있는 커피 전문점인데 인테리어 보고 들어와 사진 찍기 좋은 망고 주스를 그렇게 시킨다는 것이다. 가게 안과 밖에서 피팅모델이 옷 입고 주스 한잔 시켜놓고 사진 찍는 건 예사고, 셀카 찍느라 찰칵찰칵 소리와 떠드는 소리를 견디지 못한 친구는 카페를 정리했다. 머 카페 운영하면 당연한 거 아니에요 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래서 그 친구는 조금 불친절해도 자신의 취향대로 운영하겠다며 가이드라인을 동업자와 함께 만들고 있다고 한다. 내가 기복과 즐거움을 위해 만들려는 브랜드도 아무래도 그런 식으로 가는게 맞겠지. 재미있는 일들이 될거다!

 

경일옥 피자.

 

발리에서 먹었던 이탈리안 피자. 난 이게 더 맛있던데.

 

 화덕피자.. 이게 또 은근히 들어가서 두 판을 다 먹고 한판은 포장해서 나의 산모 아내에게 들고 갔다. 집사람은 늦게 도착한 내 피자가 맛있다고 아주 잘 먹었다. 해빈이도 잘 먹더라.

 

 계산하면서 사장을 봤는데 기묘한 인연이다. 오륙 년 전쯤 동묘에서 점프슈트를 찾고 있었는데 백태가 낀 희한한 뿔테를 낀 남자가 빈티지 옷을 뒤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한참 특이한 안경에 빠져있을 때라 부끄러움도 없이 물어봤다 어디서 샀냐고. 그랬더니 이태린지 파린지 벼룩시장에서 샀다며 한참 설명을 하시길래 문래에 안경 작업실 오셔서 폴리싱 한번 받으시라고 얘기해줬다. 이후로 언젠가 진짜 오셔서 광을 냈던 거 같고 무슨 대화를 했을 텐데 그렇게 끝이 났었다. 남았던 잔상은 '와 힘들게 산다. 기구한 인생이구나' 정도. 근데 그 남자가 을지로 화덕 피잣집 사장이 되었다니.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마음이 훈훈해졌다. 좀 더 맛있고 친절했음 좋겠구만. 나도 나중에 뭔가 차릴텐데 어떻게 해야하나 생각을 하게 된다.

 

좁은 피잣집이 부산하기도 하고 더워서 시원한 야외에서 맥주나 먹자며 발걸음을 옮겼다. 아마 깊어지는 가을 밖에서 마시는 마지막 야막이 아닐까 한다.

 

 만선 호프나 이런데 어수선하고 사람 많아서 싫다. 그래서 우린 골뱅이 술집 뒤편에 있는 생맥주 타운으로 갔다. 티넷을 봤는데 재미는 있으나 이해가 안 된다는 둥, 놀란이 이제 유머도 없이 무조건 작품성이나 물리학적 가설로 영화를 만든다는 둥, 근데 영화는 진짜 잘 만든다 머 이런 얘기들 하다가 우리도 나이가 들어서 부동산에 애플 테슬라 주식 얘기도 조금 하다가 오컬트, 귀신, 점치는 이야기로 넘어갔다.

보통 점보는 무당은 통찰력이 높거나 전문 영업인이라 사람의 행동만 보고도 무슨 답을 원하는지 등등에 대해 신기하게 던진다는 것이다. 보통 귀신 점 보는 사람은 과거를 잘 본다고 들었으나 미래는 결국 사주팔자를 통해 알 수 있다는 이야기도 얼핏 들었던 것이다. 귀신들이 점집에 들어온 사람의 과거는 다 알고 그걸 점쟁이에게 말해 준다더라.

 

내가 학창 시절 '주역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에 심취했었는데, 이런 동양적인 점이나 사주 관련해서 흥미롭다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주는 통계다 뭐 이런 말들이 많은데, 중국의 어떤 시대부터 아주 긴 기간 동안 모인 인간들의 인생 데이터를 정리해서 공통점들을 모은 것이 사주라고들 한다. 생년월일시로 분류된 사람들의 데이터를 모아서 축척된 정보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접목할 수 있다면, 요즘 같아선 핸드폰에 은행에 잔고, 컨디션,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주변인은 어떤지에 대한 모든 정보가 모이기에 빅데이터로 써서 현대판 사주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란 생각도 해본다.

 

결국은 아이폰으로 이런 메시지가 오는 거다 '누구님 오늘은 위험한 날이니 부적을 사세요 (1000원)' 아니면 맞춤 광고들도 잘 오겠지. 개인 정보로 미래에 엄청나게 돈을 버는 시대가 올 거다. 애플이나 구글 혹은 삼성처럼 전화기로 개인 정보를 긁어모으는 기업들의 주식을 사야 하는 게 아닌가란 생각을 하게 됐다. 아무리 테슬라니 엔디비아래도 사람 패턴과 식성 취향에 맞게 제공하는 기업들보다 가치가 높아질까.

 

생맥주타운 (2020)

 

반응형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scan file  (0) 2020.09.28
this and that  (0) 2020.09.28
복권과 가족  (0) 2020.09.22
혁신과 소비  (0) 2020.09.16
송탄  (0) 2020.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