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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권과 가족 본문
썩은 시체가 하늘에서 무더기로 떨어지는 꿈을 꾸고 결과를 본 후, 뭔가 기억에 남는 꿈을 꾸면 복권을 사기 시작했다.
그렇게 말하지만 아무래도 큰돈이 필요한 시기라 아무래도 요행을 바라게 되었다. 매주 이천 원 정도에서 오천 원 쓰는 정도지만, 그 효과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언제 나에게 10억이나 20억이 생기면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겠는가? 아니면 매달 700씩 나온다면 어디에 쓸지 나름대로 노트에 끄적여본다. 나름 오천 원으로 계획도 세우게 해 주고, 한 주를 즐거운 상상으로 보내게 한다는 정도로 괜찮은 값은 한다. 10억 생기면 아파트 대출금 갚고 인테리어까지 해서 7억, 나머지는 가족과 주변인들에게 좀 베풀고 유학과 육아를 동시에 해야겠다. 가끔 망해가는 사업체에 대표라고 하면서도 고급을 향유하는 사람들을 보면 연금복권에 당첨된 건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언젠간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가 와닿았다면 요즘은 빡시게 일하고 시원하게 쓰고 더 시원하게 벌자는 생각이다. 경제를 콸콸 돌리는 그것이 '애국'인 것이다. 아무튼 복권에 당첨되든 임원이 되든 사업을 하든 저 돈을 만들어내야겠다.
토요일 점심. 아버지보다 나이가 훨 많으신 큰 아버지를 뵈었다. 가족 중에 유일한 서울 사람이셨고내 기억엔 캐나다로 이민을 준비한다고 하셨다. 어릴적 송탄엔 없는 파파이스도 얻어먹고, 63 빌딩이나 아쿠아리움을 따라가서 신세계를 경험했던 기억이 있다. 젠틀하고 유복한 가정이었다.
25~30년 만에 뵌건데, 집안이 망해있었다.
오래전 좋은 공기업에 다니시다가 불의를 참지 못하고 퇴사했다고 하는데, 덕분에 그 시기 어렸던 사촌 동생들과 큰 어머니가 아주 고생을 하셨다고. 큰 아버지는 이후 일을 안 하셨단다. 큰 아들은 집 나가서 살다가 결혼한다고 통보, 식만 치르고 또 사라졌다 한다. 작은 아들은 그나마 서울대에 가서 석사 중이라는데 집에는 안 들어온단다. 큰 어머니는 우리가 뵈러 갔는데 나오지 않으시고 큰 아버지 혼자 등산복 차림으로 나오셨다. 점잖은 분으로 기억하는데 아주 꾀죄죄하고 괄괄한 노인이 되어 계셨다.
우리집에 초대해서 차 한잔 마셨다. 나야 당연히 네네 하면서 웃으며 들었지만. 답답한 소리만 하시면서 사회에 불많도 많고, 뭐 하나 풀리는 것도 없고 본인 인생도 한스러운 것이었다. 이십 년 전에 나왔던 그 회사를 아직도 말하며 '그때 내가..'를 연발하셨다. 간만에 본인이 말하면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는게 신이 나셨는지 네 시간째 큰 목소리로 뭔가를 주장하신다. 그냥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행복해 보였다. 뭔가 신문이나 뉴스에서 봤던걸 자꾸 알려주고 싶어 하신다. '이런 것도 있지 않을까요'라고 제안했다가 아니라고 어디서 본 본인 생각을 계속 말씀하셨고, 말이 너무 길어져서 산책을 나가자! 하니 당신께서 아는 산이 있다며 앞장 서신다. 하염없이 따라갔는데, 한 시간을 걸어서 산 입구까지 가시더니 등산을 하자고 하신다. 그건 너무 늦을 거 같다며 다시 한 시간을 되돌아왔다. 고집이 장난 아니다.
누가 말하면 완곡하게 설득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꼭 말해야만 하는 사람들. 그것도 고집이다. 고집있는 사람은 꼰대가 되기 쉽다. 큰 아버지가 노인들은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하다 보면 결국 주먹이 오고 간다고 했다. 서로 고집만 부리니 주먹 던지는 게 습관 된 사람은 이야기 중 대뜸 주먹을 날린단다. '깽값 물어주면 그만이야!'라고 외치며. 큰아버지는 본인이 착해서 사람을 때리고 난 후의 상황이 걱정돼 그러지 않다 보니 주로 맞는다고 하셨다.
나는 슬퍼졌다. 노인이 되면 다 그런건가. 단란했던 가족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추하게 늙은 노인만 남았는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시면서 자꾸 맞다고 하시는지. 본인들이 부정당하는 것이 그리 싫은가.
나는 큰아버지가 왜 남의 말을 그렇게 안들을까 생각하다가 그런 파악은 그만하기로 했다. 대신 나는 누가 뭔 말을 해도 다 들어줘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말을 적게 하고 많이 듣자. 충고도 하지 말자. 마음에 있는 소리 다 하는 사람은 젊고 소신 있다 생각했지만, 사실 본인의 세계가 맞다고 생각하는 젊은 꼰대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실 요새 사람들은 꼰대라는 단어에 본인들을 엮고싶지 않을 뿐, 다들 그런 기운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살아가면 되겠다. 그리고 큰 아버지를 보면서 인생 너무 힘들게 살면 말년이 더 힘들다는 걸 느꼈다. 고생 뒤 행복은 없다. 고생 때문에 생긴 질긴 아집이 길고 긴 지루한 인생을 지나면서 점점 더 수렁으로 빠지게 할 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행복해야한다.
신혼은 금방 끝이난다. 우리들도 곧 늙고 병들어 귀가 안들린다고 목소리 높여 꿱꿱대거나 밖에선 말을 안들어준다고 온라인 상에서 상주하며 악플이나 다는 노인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나를 점검할 수 있는 여유와 사람을 곁에 둬서 나를 변화시키고 타인들과 싱크로를 맞춰줘야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 있겠다. 언제나 부드럽고 경쾌하게 살면 좋겠다. 전제 조건은 건강함과 돈이다.
그래서 난 오늘도 복권을 사러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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