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os
this and that 본문
예전에 인도네시아에 놀러 가서 그릇 편집샵을 갔었는데, 그릇보다 가장 먼저 우리를 매료시킨 건 샵의 향기였다. 전부터 나의 사적인 공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채우기 위해 관심 있던 것이 빛과 소리 그리고 향이기 때문에 언젠간 꼭 다루겠다 생각하고 있던 차에 이거다 싶었다. 그리고 그 동네가 항상 시원하게 환기되는 공간에 향을 잘 피웠기 때문에 냄새에 대한 나의 관심도가 많이 올라갔던 시기였다.
전부터 생각하던 이것을 최근 디퓨저나 캔들 아니면 비누 냄새로 사람들이 많이 소비하고 있다. 그러나 냄새라는게 사람들 개인의 취향을 강하게 타기 때문에 어차피 내가 좋아하는, 나만 아는 향을 하나 시그니처로 갖자는 생각이 있었다. 보통 발 빠른 사업가들은 향 관련 산업으로 진입해서 보편적인 냄새로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하나쯤 소비하게 만들겠지만, 나 같은 애들이 후발 주자로 들어간다면 유니크한 나만의 비율을 만들어 매력적인 향을 낸다면 우리 브랜드를 믿는 소비자들은 반드시 소비하리라는 자신감이 있는 거다. 향, 굳이 어떤 모직물에 마크를 달지 않아도 냄새만으로 아군과 적군을 서로를 식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브랜딩 기법이 되리라 생각한다. (브랜드 마크란 결국 전쟁 때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는 부호라 생각된다. 너 응 나랑 취향 비슷하네? 아군. 뭐 이런 식)
문득 남자는 시각이 중요하고 여자는 소리와 향기가 중요하다던 이야기가 떠오르는데 내 주변 남자들은 냄새에 민감하다. 생각해보니 애쉬크로프트나 진저 아이웨어처럼 디렉터가 어느 정도 취향이 있는 사람들은 결국 어떤 형태든 향수를 만들던데, 다들 브랜드 결과 컬러의 차이지 그런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행보가 아닐까 한다.
아무튼 그 편집샵에 물어보니 동글고 작은 조약돌에 에센셜을 아침에 너덧방울 정도 떨어뜨려주면 은은하게 하루 종일 향기가 지속된다 하더라. 브랜드도 물어봤는데 blue stone이었고, 우리는 이후 에센셜의 세상에 빠져들었다. 성년의 날 때 받았던 향수를 다 못써서 방향제처럼 뿌려대던 시기가 있었고, 취향 비슷한 게 생긴 이후부터는 좋아하는 향을 찾겠다고 면세점만 드르면 맡아보겠다며 칙칙 뿌려댔었는데 그런 향수는 기본 에센셜들을 각 브랜드만 가지고 있는 비율로 만든 향들이었던 것이다. 당시 우리가 찾던 향기는 rose geranium이었는데, 그 동네의 모든 블루스톤 가게를 돌아다녀도 잘 취급하지 않는 향이라는 말만 들었다. 결국, 가난한 여행자들은 삼만 원짜리 에센셜 딱 하나만 사서 돌아왔다. 향은 Grapefuit Pink 였는데, 병도 손가락 두마디 정도라 당시는 돈 아깝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껴 썼는데 그나마 이 향도 최근에 다 썼다. 지금은 십만원 어치는 사 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주말 작업실로 가기 전, 여유가 있는 날에 알콜로 집안 바닥 걸레질까지 마치고, 갓 건조기에서 나온 수건들을 제 자리에 다 쌓고 맞바람이 적당히 부는 미세먼지 없고 날씨 좋은 날. 큰 유리잔에 듁스 커피 드립으로 Ethiopa Suke Quto과 얼음을 꽉 채우고 kruangbin이나 늘어지는 음악을 스피커로 적당하게 틀어두고 거기서 산 에센셜을 조약돌에 떨어뜨리고 조금 기다리면 시원한 집에 은은하게 퍼지는 향은 나를 기억이 좋던 그곳으로 데려준다.
이제는 블루스톤 에센셜을 온라인으로 구매가 가능하다. 로드샵에는 없던 향이 인터넷에는 있네.
요즘은 애기 침대를 어떻게 할지로 고민이 많다. 애가 유치원 때까지 쓰게 할까, 일 년짜리 애기용으로 살까 등등. 집 값도 큰돈이 매달 들어가고, 아내도 출산 준비로 일을 스탑 한 이 시점!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는데 또 입맛 안 맞는 아무 가구나 넣기는 싫은 우리들. 예쁜 건 기가 막히게 예쁜 값을 한다. 제 아무리 돈이 부족하다지만 사람 일은 다 풀리게 되어있다. 나만 속 편한 소리 한다며 핀잔을 듣긴 하지만 사실 유머가 있다면 아무 일도 아닐거라 믿는다. 물론 유머가 식을 정도로 인생이 곤궁하다면 쉽지는 않겠지만 노력하면 될지도.
삶은 좋은 인생 힘든 인생이 따로 존재하는 것 처럼 썩 이분법적인 것은 아니다. 옳은 게 있으니 그름이 있고, 비슷한 게 있으니 다른 게 있는 거다. 근데 본인이 맞다며 시비를 따지는 병폐를 고치기 위해 우리는 밝음을 찾아야 한다. 밝음이란 아마 통찰력이겠지. 사물이나 현상을 한 쪽에서만 보는 편견을 버리고 전체적으로 보면, 동일한 사물이 나에겐 '이것'이지만 다른 사람에겐 '저것'이라는 관점도 이해가 되리라 믿는다.
이 말이 갑자기 생각난 이유는 이제 아기가 나오면 저런 여유 나게 향기나 킁킁대는 시절은 지나가겠구나 싶어서다. 몇 주 뒤면 애기가 나온다니! 내가 아빠기 때문에 애기가 나오는 게 아니고 애기가 나오기 때문에 내가 아빠가 된다. 이런 관점처럼 여유가 있었으니 바쁜 시기도 있겠지. 이 시기가 또 지나가면 여유로워지는 것이고 당분간 빡빡한 라이프와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결핍에서 오는 갈증은 나의 취향을 더 진한 농도로 만들어 줄 거라고 기대도 하고 있다. 멀리서 보면 비극은 희극, 여유로운 건 빡빡한 것과 동의어라는 관점을 탑재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저것인 것 처럼.
사진은 발리갔을 때 찍은 사진들 (@flatsat)
<blue stone link>
Rose Geranium | BlueStone Essentials
Description Rose Geranium Pelargonium graveolens is an erect, multi-branched shrub, that grows up to 1.5 m and has a spread of 1 m. The leaves are deeply incised, velvety and soft to the touch (due to glandular hairs). The flowers vary from pale pink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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