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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와 단기적 결과

beos 2020. 8. 20. 18:56


회사 제품의 이야기다.

 

작년 11월인가 홍콩으로 출장 가면서 공장 관계자 만나고 도면을 넘겼었는데, 제품은 이후 8개월이나 지난 7월에 나왔다. 그리고 출시는 한 달 쟁여뒀다가 이번 8월에 했다.

이 공장은 그리면 그린대로 잘 나온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지만 초도수량이 크고 긴 제작기간, 단가가 타 공장에 비해 많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유행과 상관없이 꼭 필요한 제품들은 모았다가 발주한다. 안경 자체의 때깔이 좋은 편이라, 고급테를 지향하는 우리로썬 같이 가고 있지만 나랑 일하는 중국애가 말 많고 까탈스러워서 같이 일하기 굉 장 히 피곤하다. 공장마다 각자의 특징들이 있어 하나만 끌고가기엔 아쉬운 점이 있다. 

 

 

회사에서는 안경 성수기인 3~5월간 코로나로 인해 기존 전략인 폭발적으로 신제품들을 내지 않고 수도꼭지를 잠그듯 적당히 출시했기 때문에 신모델들이 밀려있었다. 덕분에 10월까지는 디자인을 안 해도 매달 2~3 모델씩 출시가 가능하다.

 

도면과 샘플



밀려 밀려 터질듯 7월까지 신제품들이 몰려있었는데, 이렇게 새로 출시될 물건이 어느 달에 몰려 갑자기 새로운 모델들을 잔뜩 가져가면 소매점에서 신제품 선택의 자유도가 너무 넓어져, 그중 제일 팔릴만한 것만 픽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덕분에 괜찮고 의미가 있는 모델들이 더 잘 팔릴만한 같이 나온 신제품에 밀려 외면받는 경우가 있어 마음이 아팠다. 게다가 그렇게 눈에 한번 익은 제품은 '구모델'로 인식되기 때문에 아무리 괜찮아도 추후 잘 선택이 안된다. 



한국의 소비 시장은 편식중에 편식이다. 잘 나가는 모델, 누군가 썼던 모델, 팔아봤던 모델과 선호하는 컬러만 다시 선택되고 팔리기 때문에 약속이나 한 듯 한 모델, 그 컬러만 미친 듯이 팔린다. 이는 어찌 보면 돈 벌기 쉬운 구조인데, 예측만 정확히 한다면 재고나 손해 없이 한모 델 한 컬러만 대량으로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라고들 생각하시겠지만.., 그게 또 그렇지 않다. 베스트 모델도 한두 해 안에 시들해지기 마련이고 항상 최다 매출을 만들 제품들을 빠르게 디자인하고 생산관리를 해줘야한다. 그리고 A라는 모델이 잘 팔리는 이유는 B라는 모델이 그 모델을 돋보이게 만들기 때문인 것도 있다. 게다 공장에서 들러리 모델을 만든다고 수량을 적게 해주는 것도 아니다.


여하튼 적당한 간격으로 많이 팔릴 물건과 무드를 보여 줄 수 있거나 기술력을 보여줄 의미가 있는 물건을 고르게 균형잡아서 적절하게 출시를 해줘야 한다. 애석하게도 언제나 쉽게 팔리는 제품은 쉽게 만든 제품이다. 쉽게 여러개를 던지면 그중 쉽게 집는 것들이 꼭 잘 팔린다. 요즘은 싸고 쉽게 팔 제품들에는 크게 머리를 굴리지 않고 약간 습관이나 반사적으로 기획해서 꺼내고, 뭔가 보여줘야겠다 싶은 제품에만 온 신경을 쏟는다. 고로 에너지를 분배한다.

 

제품 컨셉 촬영

 


그동안은 물건이 몰려나오면 몰려서 출시, 공장에서 밀려 안 나오는 달은 신제품이 없이 지나가느라 영업선에서 불만이 많았는데, 드디어 개선되었다. 이게 먼저 내느냐 나중에 내느냐 문제라 조삼모사 아니냐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게 또 그렇지 않다. 물건이 나와야 하는 타이밍이 있는 거지 어떤 게 지금 나오고 나중에 나온다고 똑같은 양으로 팔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거슨 마치 설렁탕을 몇 입 뜨고 김치를 얹어 먹어야지, 김치를 먼저 몇 조각 먹고 설렁탕을 오분 뒤에 먹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코스요리를 먹듯 순서와 시간이 중요하다.

 

여하튼 공장에서 출시 시기를 조정하기 어렵다면 유통 판에 꺼내놓는 우리가 받아놓고 조정해서 보낸다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었는지 의문이지만 이 단순한 것들도 이제야 시행되었고, 자리를 잡아가자 슬슬 당연하다는 분위기다. 그러니까 주방에서는 순서가 안 맞아도 홀서빙에서 순서를 맞춰 내놓으면 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그러나 자본을 투입한 대표님의 경우에는 식기 전에 빨리 결과를 보고 싶은 것이다. 돈을 들였으니 빨리 걷어서 공장에 나머지 대금을 납부도 해야 하고 직원들 월급도 줘야 한다. 하나하나 다 이해가 되지만 최적의 결과를 위해 해야 할 일들이라 생각한다. 덕분에 '왜 만들어놓고 안 파느냐'라고 한소리 들으면서 '신 과장은 생각이 어리다, 내 상황을 모르느냐'는 이야기도 듣긴 하지만 결과를 보고 다시 설명을 드려야한다.

 

 

팁에 포인트를 줬다

 

이번 프레임은 중간 길이의 아세테이트 팁을 새로 만든 게 포인트다. 컬러도 블랙 프레임에 녹색 마블링 팁을 쓰는 등 나름 전 작에서는 해보지 않은 시도들이 들어갔다. 그리고 안구 길이 45에 브리지 22 길이는 영업사원들의 원성을 듣기에 마땅했으나, 발란스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나와야 하는 디자인이었다.

 

팁에 무게가 실리면서 얇은 베타 티타늄 템플임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무게 분산이 가능하다. 그리고 작은 렌즈 사이즈라, 고도수자도 착용 가능이다. 보통 안경다리는 땀 때문에 팁이 있음에도 도금이 벗겨지는데, 중간 길이 팁은 그럴 일을 크게 줄여준다. 이 팁을 중국에 발주하고 완성본을 한국공장에 가져가니 60대 공장 사장님께서 본인도 쓰게 해 달라며 아주 좋아하셨다. 그래서 팁만 더 발주했다.

안경이 작으니 얼굴이 커 보이는게 아니냐는 말도 흔하게 들려서 몇 컬러는 림에만 투톤을 올려 집중되게 만들었다.

 

 

이런 노력에도 8월 3일 출시, 보름이 지났건만 판매량이 시원하지는 않다.

 

8월간 코로나도 다시 상승하던 중 8.15 집회와 사랑교회 발 코로나로 경기 침체가 심화되어 오프라인 안경판에 타격이 굉장히 크다. 3 모델 각각 보름 동안 100장 내외로 나갔는데 이런 시기에 그래도 대단한 결과라는 의견과, 렌즈가 더 컸으면 더 잘 나갔을 거라는 의견, 시장 경기상 알 수가 없다는 의견이 분분하다. 재주문각은 보통 한 달 안에 나오는데 예측을 할 수가 없다. 왜냐면 연말이나 내년에 경기가 나아진다는 걸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경기에 이 속도면 해도 될 거 같은데.. 잘못 선택하면 몇 천만 원어치의 재고가 남는다. 재주문과 새 모델의 주문을 넣느냐 마느냐.

 

인생은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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