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os
죽음 본문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늘 느끼는 건, 그건 결국 남아 있는 사람들의 문제라는 점이다. 죽은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 순간 그는 단지 더 이상 ‘이곳’에 존재하지 않을 뿐이고, 아마도 다른 체험의 장으로 옮겨갈 것이다. 우리가 “죽음 이후엔 무엇이 있을까?”라며 설왕설래하는 시간들 역시, 사실은 살아 있는 자들의 몫이다.
우린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상상할 수 없나? 사실 우리는 늘 그것을 어렴풋이 체험해왔다. 깊은 잠에 빠진 순간, 기억이 사라진 순간, 그리고 의식이 전혀 닿지 않는 경험. 그 공백의 시간을 외부 시선으로 돌아보면, 죽음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영원히 이어진다’는 점만이 차이가 된다. 당사자는 느끼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고통도, 즐거움도, 심지어 기억조차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상태라면, 거기엔 긍정도 부정도 없다. 죽음은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닌, 그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의 정지’일 뿐이다. 두려움은 언제나 “내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전망에서 비롯되지만, 정작 그 전망이 실현되는 순간에는 두려워할 주체조차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죽음은 사라지는 사건이 아니라, 남겨진 자들이 해석하는 사건이다. 누군가는 애도의 무게로 받아들이고, 누군가는 안도의 한숨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죽은 자는 이미 다른 체험으로 나아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지금 우리가 아는 감각의 언어로는 닿을 수 없는 세계다.
결국 죽음을 묻는 일은 곧 삶을 묻는 일이다. 내가 사라진 뒤에 남을 이들의 기억 속에서 어떤 흔적으로 존재할 것인가,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고민해야 할 문제다. 죽음 자체는 아무 일도 아니지만, 그 죽음을 둘러싼 삶의 이야기들은 분명히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나 궁금한건 냉동인간으로 1000년을 보관되다 오면 그 사람이 나인가 하는 것이다. 그 영혼이 있다면 다른 체험을 하고 돌아오지않을까.
'read, think, writ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즈니스 세계에 공식 같은 건 없다 (1) | 2025.09.10 |
---|---|
수렵민족의 생존방식 (2) | 2025.09.01 |
회피의 세대 그리고 커먼센스의 부재 (1) | 2025.08.27 |
타인의 마음 (1) | 2025.08.26 |
자유의지 (1) | 2025.0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