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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피의 세대 그리고 커먼센스의 부재 본문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아이들의 교육과정은 잘게 쪼개지고, 내신은 요령 싸움이 되었으며, 수능은 피할 길만 찾는 방식으로 변했다. 공부의 회피가 어느새 습관처럼, 마치 패시브 스킬처럼 몸에 배어버렸다. 시험 범위는 줄지만 난이도는 더 높아지고, 학습량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결국 무엇이든 어렵게만 느껴지고, 끝까지 붙잡고 갈 힘은 점점 사라진다.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붙들고 간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 많다. 요약본을 찾고, 누군가 대신 정리해주길 바라며, 도움에 기대는 태도에 익숙하다. 하지만 정작 시험은 누구도 대신 치러줄 수 없다. 그러니 시험장에서는 핑계만 남는다. 사탐을 피하고, 수학을 피하고, 기하를 피한다. 하지만 대학에 가서는 어디로 피할 수 있을까. 기본적인 학습 능력과 지구력이 없는 상태에서 과연 전공 이수 요건을 맞추기나 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물론 모든 아이가 공부를 잘할 필요는 없다. 모두가 전문직을 꿈꿀 필요도 없다. 하지만 문제는, 세상이 아이들을 공부라는 좁은 레일 위에만 올려놓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조차 이제는 실력보다 자존심을 위한 종착지처럼 소비된다. 그래서일까, 온라인 질문 게시판을 둘러보면 차라리 없애야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초등학교 수업시간에나 나올 법한 질문들이 쏟아지고, 아이들의 상식은 허전하기만 하다.
한국은 사실 공부 환경만 놓고 보면 드문 나라다. 지역 격차도 크지 않고, 교육 인프라는 비교적 평등하게 깔려 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상식이 비어 있는 걸까. 대치동 아이든, 지방 아이든, 결국 공통된 문제는 같다. 얕고, 짧고, 회피적인 공부 습관.
전문직에 대한 인식 역시 안타깝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공부해야 하는 게 전문직인데, 자격증만 따면 끝이라는 식으로 가볍게 여긴다. 그 뒤에 이어지는 평생 학습과 치열한 자기 관리의 무게를 알지 못한 채, 문 하나만 열면 모든 게 해결되는 줄 착각하는 것이다.
혹시 우리 집만 이런 건가 싶어 다른 부모들의 이야기도 들어봤다. 그런데 다 비슷했다. 아이들의 질문, 사고, 태도는 지역도, 환경도 크게 구분되지 않았다. 공통된 건 단지 얕음과 회피. 결국 지금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건, 고급 지식이 아니라 너무도 단순한 커먼센스? 상식 혹은 태도였다.
그렇다면, 커먼 센스를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끝까지 읽는 습관이 필요하다. 요약본만 훑는 게 아니라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붙들고 가야 한다. 그 과정이 결국 내 사고의 뼈대를 세우는 거니까.
그리고 대화와 토론. 친구나 부모, 선생님과 일상 속 사건이나 사회 문제를 두고 얘기하는 습관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 생각도 균형을 잡을 수 있다. “왜?”라는 질문을 자꾸 던지는 것, 그게 깊이를 만든다. 지금 내가 왜라는 질문을 꺼내기 위해 책을 읽는 것 처럼.
생활 속 경험도 빼놓을 수 없다. 직접 은행에 가서 통장을 만들어본다든지, 여행 경로를 내가 짜본다든지, 뉴스 사건의 배경을 파고들어보는 것.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이런 작은 경험이 상식을 단단하게 만든다. 나는 아이들과 여행을 다니면서 뭔가 시켜볼 요량이다.
그리고 기록하고 설명하는 일.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 읽은 책의 요약, 뉴스에 대한 내 생각을 글로 적는 습관. 이게 쌓이다 보면 내 머릿속도 정리된다. 게다가 내가 아는 걸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을 때, 그제야 비로소 진짜 내 것이 된다.
생각해보면 이게 무슨 거창한 일도 아니다. 커먼 센스라는 건 교과서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생활 속 작은 경험과 습관에서 자라는 거니까. 중요한 건 회피가 아니라, 꾸준히 붙들고 끝까지 가는 작은 완주들이다.
결국 필요한 건 단기간 성적을 위한 비법이 아니지. 세상을 이해하고 버텨낼 수 있는 지구력, 그게 진짜 힘이다. 회피의 패시브가 아니라, 삶의 액티브 스킬을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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