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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 본문
식당에서 줄을 서 디저트를 고른다고 해보자. 당신은 복숭아와 초콜릿 케이크 사이에서 고민하다 결국 케이크를 먹는다. 다음 날 거울을 보며 ‘복숭아를 대신 집을 수도 있었는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과거의 경험을 돌아본다 해도 답은 되지 않는다. 또 “더 고민했더라면, 친구가 옆에 있었더라면” 같은 조건적 의미도 아니다. 당신은 그 순간 모든 상황이 같더라도 복숭아를 선택할 수 있었다고 믿는 것이다.
이는 인간만이 갖는 ‘할 수 있다’ 개념이다. 자동차가 스스로 언덕을 고를 수 없듯, 인간은 같은 상황 속에서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곧 우리의 선택이 태양의 일출처럼 미리 결정된 것이 아님을 뜻한다.
하지만 일부는 절대적 의미에서 우리가 다르게 행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우리의 경험, 성격, 유전자, 사회적 환경 등이 어우러져 이미 선택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결정론이다.
결정론이 맞다면 우리는 실제로 자유롭지 않다. 어떤 상황에서도 한 가지 선택만 가능하다. 그러면 스스로를 탓하거나 타인을 칭찬·비난하는 근거가 사라진다. 하지만 이런 사고는 도덕적 혼란을 낳는다. 예컨대 누군가 음반을 훔쳤을 때, 그의 행동이 미리 결정된 것이라면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반대로, 행위가 원인 없이 그냥 일어나는 것이라면 그 또한 내 행위라 부르기 어렵다. 자유로운 행위란 원인도, 설명도 없이 발생한 사건일 수는 없다. 그래서 일부는 “책임을 물으려면 오히려 행위가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케이크를 고른 것은 욕구와 성향의 결과이지 무작위적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우리는 인형처럼 느껴질 수 있다. 모든 선택이 조건에 의해 이미 정해져 있다면 책임은 사라지고, ‘내가 선택했다’는 말은 공허해진다. 따라서 우리가 케이크 대신 복숭아를 선택할 수 있었다는 느낌은 단지 철학적 환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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