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os
2022.01.15 본문
2022년이 된 지 벌써 보름이 넘었다.
요즘은 당근마켓으로 나의 과거를 다 팔고 있다. 20살 때 정장 살 돈으로 샀던 스윙 텔레캐스터 일렉기타, 호주에서 샀던 렌디 야츠 리미티드 에디션 스케이트보드, 내가 디자인과 브랜드에 관심을 갖게 했던 블랭코브 초기작들과 도큐먼트 셋업. 하물며 수제안경 재료까지도. 호주에서 썼던 배낭과 이젠 못 구하는 장비까지도 다 내놨는데 일부러 어려운 가격에 올렸다. 키보드 이펙터 등등 음악장비도 내놨고 물건값으로 치면 얼마 안 하겠지만 내 스토리를 판다 생각한다. 그리고 썩 팔 생각도 없다. 그래도 이럭저럭 팔려서 다 현금화하고 있다.
2월엔 둘째가 나오기 때문에 경험상 작업실에 1년은 못 갈 거 같아 다른 안경 만들고 싶어 하는 인물에게 내 자리를 넘기고 일 년 정도 빠져있기로 했다. 2월이면 벌써 보름 뒤다. 막상 오픈한 이후원 대한 꿈만 있었지 썩 시원하게 쓰지는 못했던 거 같다. 멋지게 나아가고 싶지만 살기도 바쁘다.
요즘은 회사에 안 나가고 재택근무는 거의 한 달을 채워가고 있는 거 같다. 집에서 도면을 치고 보스에게 컨펌을 받고 넘기고 있긴 하지만, 사무실에서 압박을 받는 동료들과는 조금 공감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전화를 해봐도 크게 정보나 감정이 와닿지는 않는다. 그냥 서로 힘들게 일을 할 뿐. 올해도 아무튼 더 빡세졌다. 우리 팀에 포폴을 거쳐 면접을 본 사람들 전원 탈락했다. 기존에 있는 사람들도 더 고급화되고 더 디테일해지고 더 멋져지며 더 기발해야 한다. 다들 더 전문적이고 더 빨라져야 한다. 디자인해야 하고 출시해야 하는 양도 늘어났다. 평가기준도 생겼단다. 디자이너들은 점점 힘들어진다. 여하튼 내가 들어왔을 때와 지금의 눈이 많이 달라졌고 그게 뭐든 전의 나와는 너무 다르게 된 거 같은데 이게 좋다. 그럭저럭 쓸만한 거 말고 모두에게 영감을 주거나 어떤 장르의 프레임이라 하면 대명사가 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제품. 그 분야에서 실력자가 되면 좋겠다. 제품 디자이너가 그런거 아니면 딱히 더 연명할 방법이 있나..
안경 디자이너란 너무 협소한 직업이어서 다른데 가봐야 할 게 없다. 이런 분야에서 열심히 패션과 오브제, 감각의 지경을 넓히는 게 장기적으로 나와 가족에게 유리하겠다. 결국은 감각있는게 중요하고 어렵다. 태생 혹은 유전적 이란 단어와 비슷하게 보인다.
카카두 동료로 베란다에서 지겹게 포카를 치던 코트니에게 결혼했다고 페북으로 내 생일 축하 겸 메시지가 왔다. 야 난 애가 둘이다. 벌써 7년 전 사진이다. 코트니는 초혼인데 그녀의 남편 될 사람은 이미 애가 둘이란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잘 모르것다~
몇 년 전 여자 친구, 지금의 아내와 같이 발리에서 20일인가 있었는데 그녀가 한국으로 돌아간 이후의 바다 사진이다. 발리섬의 북쪽 amed로 기억한다. 게이 놈들이 옆방에서 시끄럽게 굴었고 파도소리에 정신이 혼미했었다. 별생각 없이 수영하면서 앞으로 갔다가 해안가로 다시 헤엄쳐 돌아오는데 물에 맨몸으로 2시간 동안 떠있으면서 심한 오한과 공포감을 느꼈던 날이었다. 물 속이 그렇게 까맣고 아무것도 안보이는지 처음 느꼈던 날.
그럭저럭 한국으로 돌아와서 나름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 느끼며 살고 있다. 힘들긴 하지만 할만한 거 같다. 검은 물위에 떠있듯 외롭긴 하나 재미는 분명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