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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개 본문
대학 친구가 나 포함해서 딱 셋인데, 채팅방 이름은 서당개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당시에 신문도 읽고 책도 읽자며 이름을 지은 지 오래됐다. 3년이 네 번은 넘게 지나갔지만 역시나 책 이야기는 안 한 지 오래된 거 같다.
그런 종연이가 대학생이 되고 수능을 다시 치고 연댄가 서울대 안갈거면 안 간다고 다시 돌아와서 과에서 최고 성적을 받고 취업 준비도 하고,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졸업하고 인생에 휩쓸려 가는 듯하면서도 자기의 곤조를 찾아가는 듯하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인생의 청룡열차를 쭉 봐 왔다. 아무리 봐도 위태위태했지만 소위 애초에 갖춰진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잘 장착되어있는 친구여서 썩 걱정은 안 됐다. 내가 더 급했으니까.
블로그에 친구 얘기 딮하게 써봐야 좋은 소리 들었던 적이 없어서 별다른 설명은 하지 않겠지만, 종연이가 한 가장 (내 견해로) 베스트는 연화랑 연애하고 결혼한 거다. 몇 해 전 보이, 그리고 몽구 덕분에 제주까지 내려가 작년에 연화차라는 찻집을 오픈했다. 종연이는 평생 서울에서만 살았고 준비하던 게 있었는데 그 걸 위해 생활비 필요하다고 청담동에서 학원을 하던 앤 데 이런 시골로 내려가서 자신을 다 내려놓고 땔감을 주워오고 인테리어 막일을 하는 등 과외도 하고 게스트하우스도 운영하고 별 일을 다 했다. 마치 워홀 갔던 나의 모습이랄까. 이런 점들은 어찌 보면 준수나 나나 종연이나 같은 생각인 거 같다. 앞날을 보면 화이트칼라의 일만이 모두가 생각하는 좋은 일은 아니라는 것. 여하튼 그들이 만든 연화차 라 불리는 그 공간에 들어갔을 때 느껴지는 엄숙함이랄까. 경건함? 나는 그 친구들이 살아온 세상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꽤 무겁고 진지하게 다가왔다. '이렇게 살아서 이런 무게감이 공간에서 나오는구나'라는 느낌이었다. 이래저래 장사를 시작했고 잘하고 있다고 들었다. 네이버 평점이 엄청 좋다! 가끔 재이랑 이안 이를 낳아서 몸에 좋다고 보내오는 차를 마시면 참 향도 좋고 기분도 좋다. 아내는 대번 좋은 차가 틀림없다고 잘 되는 이유가 있다고 했고 나는 동서 보릿차 팩을 뜯어서 나눠 보내줘도 맛있을 거라고 괜히 너스레를 떤다.
학창 시절 성적이 가장 좋던 종연이는 찻집과 학원을 차려 자영업자가 됐고 (추가로 커피숍 준비 중), 디자인이나 음악으로 돈을 벌 수 있을까 고민만 하던 나는 패션회사의 아이웨어 디자이너가 됐고, 힙합퍼에도 계속 촬영을 당했고, 패션(플랫폼 혹은 잡지)을 하려고 했던 준수는 돈 관련된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됐다. 일단 다들 노는 걸 좋아했는데 생각들은 많았다는 게 그래도 쌓여서 이렇게들 된 거 같다. 물론 세간의 시선으로 보면 직장인이요 박봉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어찌 됐든 다들 기분은 좋게 살고 있는 거 같아 보기 좋다. 해야지 하면 다들 어찌 됐든 하고는 있으니까.
이제 다들 다음판을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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