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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8 본문
정신을 차려보니 6월이다. 재이는 태어난 지 7개월 차로 접어들면서 이가 나고 있다. 애기가 새벽에 계속 깨고 있어서 정신과 체력적으로 아주 힘든 시기다. 디자인은 익숙해지는가 싶었는데 다시 어려워졌다.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의 훌륭한 옷이 보인다고 나를 제외한 모두들 박수를 칠 때 나만 안 보여서 어리둥절한 느낌이랄까. 그 사람들은 그 옷이 보이기는 하는 걸까, 내가 바보인가. 하지만 믿고 따라가는 중이다. 그래도 말은 많이 들어서 언어적으로는 이해는 된다. 점점 그렇게 임금님의 옷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나에게 체화되는 시간이 필요할 뿐.
아무튼 오케이라고 나오는 적이 없으니 덮고 집에 갈 수가 없다. 혹은 집에 빨리와서 집안일 조금 하다가 다시 앉는 것. 그래 봐야 선 몇 개 더 그어보고 지우고 다시 그어보고 위로 올렸다가 아래로 내리는 정도의 일인데 , 그 사각 안구의 틀에 갇힌듯한 기분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보여주겠다던가, 아직 뭔가 안 나와서 계속 붙잡고 있게 된다. 아무튼 디자인에 갇히는 느낌은 처음 받는다. 세상에 할 디자인이 얼마나 많은데?라고 생각이 들면서 계속 파고들다가 빠져나와야 하는데 파고 들어갔던 구멍이 아까워 계속 그 안이나 매만지는 꼴이다. '디자인의 유연한 사고'와 '포기'라는 언어를 다시금 이해하게 된다. 그간 뭣도 모르고 쥐처럼 여기저기 구멍을 팠다면, 이제 여기서의 내 업무 스타일을 잡기 위해 감을 잡아가는 중이다. 질문을 많이 한다. 짧은 시간에 많이 고민하고 많이 그리고, 다양하게 보여줘서 빨리 까이고 뭘 원하는지는 몰라도 뭘 싫어하는지 캐치하고 빨리 진행되는 게 서로 쉬운 길인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다만 말도 안 되는걸 자꾸 가져가면 서로 지칠 수 있으니 전략적으로 디자인해서 가져가야 하는데. 젠몬이 좋아할, 젠몬이 필요로 하는 디자인이 무엇인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나의 아이웨어 바운더리를 아득히 지난 디자인을 요구한다는 생각이 든다만 또 나도 눈 뜨면 날씨보다 먼저 뒤지는 게 안경 이미지요, 자기 전에 보는 게 안경 이미진데 그렇지도 않을 거 같단 생각도 들고. 하여튼 잘 모르겠다. 이젠 보던 게 보던 거라 별 감흥도 없다만 그건 나의 민감도가 아직 예리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일이다. 나이가 들어 봤던 영화를 다시 보면 어릴 적과는 다른 감정을 받는 것과 같은 그런 감각으로 안경을 대하면 다른 게 보이는 법이지만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젠몬에 입사하고 3주가 지나 정직원이 됐다. 원래 인턴 3달을 본다고 들었는데, 빠르게 전환 된 경우란다. 초반에 디자인 한 목업에 대표님께서 관심을 가졌었는데 가능성 있게 보였는지 테크 도면을 치고 공장에 샘플 발주를 넣으면서 업무 메일 오고 간 금요일. 정인 파트장이 정직원으로 기안을 넘기라 했다. 젠몬에 대한 감을 잡으려고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그려가면 쓸만한 아이디어에는 힌트를 줬는데 그런 걸 열심히 캐치하려 했다. 하튼 지금은 그때 오케이 됐던 도면의 샘플이 왔는데 생각보다 임팩트가 적어서 새로 디자인 중이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다 좋고 그저 디자인이 힘들 뿐이지 사람 간 사이에서 이렇게 신경 안 쓰이는 곳도 흔치 않은 거 같다. 생각의 방향이 뾰족하게 '디자인'으로만 향한다.
짧은 기간동안 있으면서 디자인에 관한 몇 가지 힌트랄까. 방법을 캐치했기에 남겨둔다.
타깃을 확실히 정한다. 돈을 벌기 위한 베스트 모델인지, 쇼를 위한 이미지용인지, 패셔너블한 사람들이 좋아할 디자인으로 입방아에 오르내릴 제품일지 (브랜드를 알릴 수 있다), 브랜드의 앞날을 정해줄 미래적인 제품인지 등등 여러 이유가 있는 아이웨어인지 방향을 먼저 정해야 한다.
비교군을 확실히 한다. 돈을 벌기 위한 베스트 군이라면 안에 있는 제품들과 싸워도 충분하다. 일단 기본값은 무조건 '새로움'이다. 아무리 비슷하다고 해도 (잘 팔리는 쉐잎은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뭔가 작게 다른 요인을 넣어 확 달라 보이게 만드는 방법도 있다. 문제는 그 새로움이라는 감정이 나와 네가 다르기 때문에 그 '정도'의 감을 잡는 게 어렵다. 나는 그걸 맞춰가는 중이고. 그리고 다른 경쟁사 제품들과 늘어놓고 더 손이 가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감정적인 부분을 잘 고민해야 한다. 왜 그 제품으로 손이 갈지, 써보고 어떤 기분을 느낄지, 다른 제품을 쓰고 어떤 감정이 들어 최종 결정을 내가 디자인한 제품을 결제하게 만들지. 모두 디자이너의 몫이다. 이 것은 나 혼자 밤새고 야근하면서 열심히 디자인했으니 애착이 들어도. 만들어진 수준이 웰메이드라도 이런 메커니즘과 맞지 않는다면 출시되지 않는다. 여기는 아무리 봐도 좋은데 출시되지 않는 프레임들이 50배는 더 있는 곳이다. 아이웨어의 지옥 혹은 아이웨어의 천당과 같다.
참 좋은 것들을 많이 배우는 중인데, 나는 일개 디자인을 하면서 인생을 배워간다. 하이앤드 브랜드 제품들과 내가 디자인한 제품을 같이 늘어놓고 대결을 시킨다. 나는 그리고 절대 객관적인 결과를 내놓기 어렵기 때문에, 다른 감도가 좋은 사람에게 물어본다. 이번 회사를 토대로 디자인의 기준은 내가 아니게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았다.
여기까지는 오직 디자인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원래도 알고 있었지만 더 확실해진 건 디자이너는 굉장히 성능 좋은 렌즈를 탑재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줌을 하면 섬유에 붙은 미생물까지 보였다가 풀면 지구와 우주가 러프하게 보이는 수준의 렌즈. 넓게는 2020년대의 시대를 보고, 소비자를 보고, 사람들 보고, 디피 된 매장을 보고, 온라인 시장을 보고, 안경 쉐잎을 보고, 안구와 브리지, 미미를 보고, 0.1mm 단위로 수정하면서 툴로 최대한 확대를 했다가 풀어가며 다시 줌을 쫙 풀고 그 제품을 쓴 어떤 상황을 상상해보며 또 수정을 하고 수많은 샘플을 깔아서 다른 시선으로 디자인된 제품들과 경쟁을 하고 드롭되고 살아남는다.
그래서 너는 살아남을 수 있겠냐? 그건 잘 모르겠다.
셀럽의 시대요 관음(?)의 시대다. 그리고 알고리즘을 통해 사람의 취향을 점점 만들어나가는 초기단계의 시기이기도 하다. 나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끼 인세 대라 생각하는데, 이제는 디지털을 지나 알고리즘의 시대로 빠르게 넘어가고 있다.
네이버 블로그가 유행을 하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 블로그 유입자의 비밀을 알아낸 사람들은 사무실을 차려 블로그 홍보를 도와주고 수익을 버는 형태도 성행했다. 그것이 네이버 블로그 유입 알고리즘인데 같은 키워드를 다섯 번 언급하고 글은 수정하지 않고 등등의 몇 가지 법칙이 있었다. 추후에는 다들 그 방법을 쓰자 네이버 측에서는 알고리즘을 바꿨고 다들 새로운 알고리즘을 찾기 위해 혈안인 때가 있었다. 사람들이 사람의 마음이 아닌 알고리즘의 마음에 들기 위해 글을 쓰는 때가 온 것이다. 유튜브도 마찬가지다. 영상에 어떤 키워드가 들어있으면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인해 생뚱맞은 사람들에게도 퍼져나가 갑자기 엄청난 조회수를 찍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사람들이 그 알고리즘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영상을 편집한다고 한다.
딥 러닝이 가능한 세상에 알고리즘은 사람들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몸집을 불려 나간다. 더 방대해지고 더 정확해진다. 요즘 살려고 아침에 수영을 다니는데 샤오미 미 핏이라는 시계를 차고 나의 운동 데이터를 받는다. 단순하게 나 몇 미터나 수영했고 몇 칼로리 소비했나 보고 싶을 뿐이지만, 시계에는 나의 심박수를 체크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센서가 더 발전해서 나의 호르몬 수치를 체크할 수 있으면 상황에 따른 나의 기분도 알 수 있을 테고 나의 건강, 나의 심리까지 알아낼 수 있을 거다. 아마 애플 와치의 빅 픽쳐는 그런 개개의 데이터를 긁어모아 개인별로 광고를 정확하게 보내는 것일지 모른다. 예를 들면 내가 누구 앞을 지나갈 때 엔도르핀이 돌면서 심박수가 높아졌다던가 하면 그런 데이터를 캐치해내서 딥 페이크로 그런 비슷한 모델이 선전하는 제품을 선전하거나, 내가 주말에 엘피빠에 가서 봐 뒀던 한정판 엘피 음악을 들으며 일렁이는 나의 마음을 캐치해 절묘한 타이밍에 (내가 월급을 받았고 왠지 돈을 쓸만한 기분일 때) 그 한정판 엘피를 특가 세일을 한다며 메시지를 보내는 등의 일 말이다. 그런 유혹을 이기기 쉽겠는가? 그런 세상에서는 센서를 활용한 샤오미나 애플과 같은 웨어러블 장비회사, 데이터를 전달해야 하는 통신 회사, 아마존과 같이 빅데이터를 보관할 서버를 가진 회사, 그런 정보를 구매해서 홍보를 할 힘이 있는 쿠팡이나 ssense, farfetch와 같은 회사들이 모든 소비자의 재화를 독점할지 모르겠다. 브랜드들은 그런 플랫폼들에게 거대한 비용을 지불하며 본인들 제품 좀 팔아달라고 애원할 시대가 곧 올 것이다. 그런 개인정보의 활용은 법률화가 관건이겠지만 자본 앞에 장사 없는 법이다. 여하튼 개인 정보를 가장 많이, 오래, 깊게 소유한 회사가 가장 강력해지는 때가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시대에는 더 휴머니티 한 일, 혹은 전문적인 일이 아니면 또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이미 집 앞 마트의 계산대는 8개의 무인 계산대로 바뀌어 10명이 넘던 종업원은 4명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그럼 6명의 캐셔는 어디 가서 또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여하튼,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항상 고민하며 살아가야 한다.
모든 판매 관련된 시장에서는 셀럽을 최우선으로 놓는 시대가 되었다. 유명인 사는 물론이요 일반인이지만 많은 팔로워나 어떤 영향력을 끼치는 인플루언서에게 잘 보이기 위한 제품을 만드는 시대인 것이다. 제품의 타깃은 일반인이 아니다. 셀럽이 마음에 들어서 직접 쓰고 올리면 일반인들은 해당 제품을 벌떼같이 몰려가 구매한다. 그것은 유독 중국과 한국에 잘 맞는 방법인데, 다른 나라는 어떤지 내가 잘 몰라서 하는 소리기도 하다. 이제는 셀럽이 자연스레 픽을 한다기보다는 금전적 대가를 지불하고 피드 하나를 올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해 요즘은 #광고를 꼭 달라고 권장되는 이상스러운 시대가 되었다.
예전에 썼던 글 중
2020.08.10 - [분류 전체보기] - 샘플링 3
"LP 한 장 얹어놓고 tameimpala를 시점으로 예전 fuzz 사운드 시절 얘기를 하면서 지미나 레드 제플린 머 요런 노래들까지 흘러갔다가 왜 그때 음악이 좋으냐! 그건 겉 멋 좀 든 우리가 좋아한 형들이 그 음악이 좋았다고 하기 때문이다.라고 결론 냈다."이라는 부분이 있는데 우리는 셀럽의 개념이 없던 때부터 뭐 좀 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따라 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인가.
단어가 조금 과격하지만 관음의 시대라 한 것은 별다른 게 아니라 남의 일상을 몰래 들여다보는 콘텐츠들이 성행하기 때문이다. 다른 단어가 기억이 안 난다.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르지만 브이로그나 '나 혼자 산다' , 나 군인 땐 '나는 펫' 등등을 보며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다들 남의 일상에 되게 관심 많네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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