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os
2021.5.19 본문
요즘 주에 한번씩 있는 컨펌 데이에 만들 안경의 제작 난이도나 디자인이 어려워져 야근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괜히 왠지 내가 맡게 될 파트의 장르를 디테일하게 풀어서 이게 무슨 고생인가 싶다가도, 자잘하고 자칫 진지해 보이는 안경스로운 디테일을 계속 덜어내다보면 나름 쿨한 프레임이 나오는거 같다.
야근하니까 말인데 나는 일 없이 야근하는 사람들을 아주 줏대없고 실력이 모자른 사람이라 생각해왔다. 근데 디자인이 안끝나니 덮고 집에 갈 수가 없다. 그래봐야 선 몇개 더 그어보고 지우고 다시 그어보고 위로 올렸다가 아래로 내리는 정도의 일인데 , 그 사각 안구의 틀에 갇힌듯한 기분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보여주겠다던가, 아직 뭔가 안나와서 계속 붙잡고 있게 된다.
전에 회사는 아홉시까지 야근하고 회사 카드로 밥먹으면 '고작 아홉시까지 하면서 밥을 사먹느냐' 란 핀잔을 들었다면 여기는 뭐 저녁 정도는 전혀 상관없다. 점심도 회사의 아량으로 인해 매일 합정에 있는 맛집으로 투어를 다닌다. 몸 생각해서 종종 샐러드들을 먹는데, 여긴 패션회사라 그런지 바짝 마르고 헐렁하게 옷 입는 사람들이 많다. 멋이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해 젠몬 홀을 멍하니 보고있자면 그냥 젊음이 다인거 같다. 젊은 친구들은 조금 두리두리해도 테가 난다.
열심히 패션안경을 그리고 만드는 중인데, 안경 만들어서 쓰고다니지 가 기본 전제였따면 이젠 돈 많이 벌어서 맘에드는걸 만들어달라고 해야지 가 되었다.
교육
인류는 지금 전례 없는 혁명기에 직면했다. 우리가 아는 옛 이야기들은 다 무너져내리고 있는 반면, 그것들을 대신할 새로운 이야기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따. 이토록 전례 없는 변혁과 뿌리쨰 흔들리는 불확실성의 세계에 우리 자신과 아이들을 어떻게 대비시켜야 할까? 오늘 태어나는 아기는 2050년이면 30대가 된다. 모든 것이 잘 되면 그 아기는 2100년 무렵까지도 살아 있을 것이고 , 심지어 22세기에는 활발한 시민으로 남아 있을지 모른다. 그런 아기가 2050년 혹은 22세기 세계에서도 살아남아 번창하는 데 도움을 주려면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일자리를 구하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고 미로 같은 인생을 헤쳐 나가려면 어떤 종류의 능력이 필요할까.
우리로서는 이 질문의 담을 알 지 못한다. 물론 그 전에도 인간은 미래를 결코 정확히 예측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전에 없이 더 어려워졌따. 기술을 이용해 우리의 몸과 뇌와 정신을 공학적으로 개조할 수 있게 된 이상, 이제 우리는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1000년 전에만 해도 미래에 관해서는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더 많았따. 그럼에도 당시 사람들은 인간 사회의 기본적인 특징만큼은 ㅂㄴ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당시 중국에서 살던 사람이라면 1050년 쯤이면 송 제국이 멸망할 것이고, 북쪽에서 거란이 쳐들어올 수도 있으며, 역병이 닥쳐 수백만 명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따. 하지만 1050년이 되더라도 여전히 대다수 사람은 농사를 짓거나 베 짜는 일을 하고, 통치자는 군대와 고나직에 사람을 충원하며, 남성은 여성 위에 군림하고, 인ㅇ간의 기대수명은 40세 정도에 신체는 예전가 똑같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니 1018년 가난한 중국 농부라면 아이들에게 벼를 심고 비단을 짜는 법을 가르쳤고 부유한 부모라면 사내아이에게는 유교 고전을 읽고 붓글씨를 쓰고 말을 타고 싸우는 법을 가르치는 한편, 여자아이에게는 조신하고 순종적인 주부가 되도록 가르쳤다. 이런 능력이 1050년에도여전히 필요할 거란 사실은 분명해 보였다.
반명, 오늘날 우리는 2050년에 중국이나 세계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돼 있을지 알지 못한다.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군대와 관료제는 어떻게 작동할지, 젠더 관계는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한다. 어떤 사람ㄹ은 십중팔구 직므보다 훨씬 오래 살 것이고, 인간의 몸 자체도 생명공ㅏ꽈 직접적인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덕분에 유례없는 혁명적 변화를 겪ㅇ르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아이들이 배우는 것의 대부분은 2050년이면 별 소용이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지금 너무나 많은 학교들이 학생들에게 정보를 밀어넣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 과거에는 이런 방법도 일리가 있었다. 그때는 정보가 희소했고 기존 지식의 느린 전파마저도 검열에 의해 바복해서 차단됐다. 가령 1800년 멕시코의 지방 소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더 넓은 세상이 관해 많이 알기가 어려웠다. 라디오도 텔레비전도 일간 신문도 공공도서관도 없었다. ㄱ르을 읽을 줄 알고 사설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 해도, 소설이나 종교 책자 외에는 읽을 게 많지 않았따. 스페인 제국은 국내에서 추판되는 모든 서적을 엄하게 검열하는 한편 해외 출판물도 검으ㅕㄹ을 마친 소량에 한해서만 수입을 허용했다. 러시아나 인도 터키 중국의 지방 도시에 살았어도 사정은ㅇ 같았따. 근대 학교가 도입되면서 모든 아이에게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고, 지리와 역사, 생물의 기본 사슬을 교육하게 된 것은 업청난 개선이었다.
반편 21세기의 우리 주변은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로 넘쳐났다. 검열과들조차 정보를 차단하려 애쓰기 보다,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고 하찮은 것들로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느라 바쁘다. 만ㅇㄱ 당신이 멕시코 어느 지방도시에 사는 사람이고 스마트폰만 있다면 위키피디아를 찾아 ㅇ릭고, 테드 가영ㄴ을 시청하고, 무료 온라인 강좌를 수강하면서 평생을 보낼 수도 있다. 이제는 어떤 정부도 원치않는 정보라고 해서 감춰져 있기를 바랄 수 없다. 다른 한편 상종되는 보도와 주위 분산용 낚시성 뉴스로 대중을 혼란에 ㄹㅃ뜨리기도 놀랄 만큼 쉬워졌따. 전세계 사람ㄷ르이 클릭 한 번으로 시리아 알레포가 폭격을 당했따거나 북극의 만년설이 녹아내린다는 최신 뉴스를 접할 수가 있지만 상추되는 설명이 너무나 많아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기 어렵다. 그것 말고도 무수히 많은 뉴스가 클릭 한번에 밀려들다 보니 주의를 집중하기도 어렵다. 정치나 과학만 해도 너무 복잡하다. 그러니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재미있는 고양이 동영상, 유명인 가십, 아니면 포르노가 되기 일쑤다.
'관음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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