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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 본문
아기를 보고 있자면 나는 윤회 혹은 환생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뭔가 정신이 있는 듯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대해 나에게 전달을 하고 싶어 했지만, 목소리나 손, 몸이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아 답답해하던 그 모습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결국 그가 내던 소리라곤 울음 뿐이었으나 이조차 덜 발달된 성대로 인해 미약했고 마치 근육이 다 빠져버린 노인의 몸이 마음 같지 않은 것처럼 생각만 대뇌속에 둥둥 떠다니며 해골 속에 갇힌 듯 보였다.
당시 노인과 같이 쪼글쪼글한 주름과 뻐끔거리는 입모양, 덜 발달된 동공으로 주변을 열심히 살펴보는 그 천진난만함. 또 같이 덜 발달 된 신체의 부자연스러움 덜 자란 건지 다 빠져버린 머리카락. 미약한 가죽 안에 덮인 생명력. 그리고 그 안에서 답답해하는 인간을 보았다. 가끔씩 현타가 온 듯한 아기의 표정이나 현실 속에서 아웅다웅하는 나를 보는 아기의 눈빛과 애잔한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이놈은 나보다 세상을 더 아는 녀석임에 틀림없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을 관찰하기 좋아하는 성향이라면 아마 누구든 나와 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노인과 같이 욕구만이 남아 배가 고프면 누군가 돌아가신 것 처럼 울고, 어딘가 축축하면 울고, 더워서 울고, 심심해서 울고, 이유를 알 수 없이 운다. 이 운다는 행위는 버튼과 같아서 바깥과 소통하기 위한 신호다. 스티븐 호킹의 자아는 답답한 육신 안에 갇혔지만 손가락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듯, 아이는 일단 울음이라는 행위를 통해 외부와 소통한다. 좀 일방적이긴 하지만 아무튼 한다.
오늘은 월초라 간만에 아내와 치킨 한 마리 시켰다. 퇴근하자마자 아기를 허겁지겁 씻기고 나도 씻고, 아기 로션 바르는 동안 아내 혼자 고군분투했을 집도 정리하고, 가습기도 살균하고 정수된 물을 채워 튼 후, 아기는 우리 대화를 들을 수 있도록 쿠션에 올려두고 와인 한 병 까면서 두런두런 수다를 떨었다. 요즘은 이런 게 낙이다. 상상한 대로 나아가자며 이야기를 한다. 아무튼 이런저런 젊은 부부의 인생살이와 요즘 회사에서 채용으로 인해 여러 사람 면접 보는데 거기서 느낀 애잔함과 스트레스. 이런저런 생각. 그리고 다음 스텝을 어찌 가야 하는지, 세상의 흐름에 맞추는 게 옳은지 우리가 생각하는 속도로 가는 게 맞을지 친구와 같은 부부의 잡담을 애기가 조용히 듣더니 부처와 같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보일 듯 말 듯 끄덕이며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리는 깜짝 놀라서 '이거 봐 얘는 우리말을 다 알아듣는 거야'라고 이야기했다. 이해를 하는 수준을 넘어서 이미 왕년에 긴 삶을 통해 다 겪었다는 듯 짓는 그 은은한 표정을 보았다.
치매에 걸리셨던 할머니가 제정신이었다가 또 어떤 때는 아기처럼, 혹은 완전히 방전된 사람처럼 정신을 빼던 것을 본 적이 있다. 이와 같은 빈도로 아기도 눈빛이 오락가락하는 것을 100일 넘게 보아왔다. 요즘은 발도 빵빵 차고 고양이 꼬리처럼 그냥 몸에 달려있던 손과 손가락도 나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지 신기해 보이는 표정이다. 웃음소리에도 힘이 생기고 있다. 점점 마음대로 되는 게 생기면서 전생의 기억들은 점점 잊어가는 표정이다. 썩 허탈한 표정들이 얼굴에서 사라지고 새로운 가족과 이 집에 나름 만족스러운지 신기한 표정을 지으며 자주 웃는다. 말을 하고 싶은데 아직 혀가 덜 발달해서 웅얼대는 소리만 낼뿐이다. 우리는 알아듣는 척 이랬어? 저랬어? 하지만 아기의 몸속에 들어간 노인 입장에서는 속 터지는 노릇 이리라. 아마 점점 우리의 말을 배우려고 집중하고, 주변 환경에 익숙해질수록 이전의 기억들을 잊어가겠지.
그래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는지, 잠 잘 시간이 되어 방 불을 끄면 온 힘을 다해서 운다. 아이는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을 향해 온 몸을 돌리고 끝까지 바라보며 발악한다. 아직은 잘 시간이 아니라고, 어둠에 휩싸인 본인을 꺼내달라며 온몸으로 저항하는데, 이는 노인이 어두운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을 쥐어짜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람을 키우게 되면서 느끼는 순간들과 시간, 공간이란 당연히 있던 것도 아니고 사람이 만든 영역 또한 아니기에 다른 존재에 대한 생각도 점점 하게 된다. 이런 생각들에 시나리오를 쓰고 인간의 행위와 본성에 대해 깊게 성찰하고 글로 옮기고 사람들에게 전파를 하면 그게 종교가 되거나 영화 감독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아기는 분명 나의 자식이지만 원숭이었거나 나보다 먼저 산 무언가가 아닐까란 생각을 하며 키우고 있다. 오늘도 재이는 아기였다가 노인이 된다. 시간은 3차원에서는 선이지만, 그 다음 차원에서는 시작과 끝이 꼬여서 이어진 무한궤도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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