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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3.22 본문
요즘을 정리해둬야지.
아침에 일어나면 씻고 밤새 지쳐 자고 있는 아내와 애기 사진 한방 찍고 출근한다. 자고 있는 소연이는 든든하고 미안하고 고맙고, 재이는 천진난만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재이나 아내나 나나 밤새 전쟁을 치루고 아침에나 잠들랑 말랑 하면 나는 회사를 가고 둘은 그제서야 푹 잔다. 보통 누가 애기 옆에서 자는가로 다음 날의 컨디션은 정해진다. 주로 아내가 재이 옆에서 자면서 영 안 되겠다 싶으면 나를 깨운다. 나는 그러면 새벽에 일어나서 분유를 타고 먹이고 트림을 시켜준다. 새벽에 두 번 정도 일어나서 하는 거 같다. 아무튼 그 둘이 자는 모습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하고 대문을 조심스레 닫고 전철을 향해 총총걸음으로 나간다. 종종 아침에 재이만 깨서 열심히 팔다리 휘두르다가 출근하는 나와 눈이 마주치면 웃어준다.

지하철로 출근은 40분 정도. 이것저것 걷는거 포함하면 50분 걸린다. 그 날 아침에 모아서 오는 기사를 본다. 근 일 년은 주식이랑 부동산 이야기뿐이다. 최근 들어서는 부동산이 좀 주춤한다는 이야기가 살짝 보인다. 그간 낮았던 금리가 오를 거라는 둥 돈을 더 풀 거라는 둥, 돈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이야기들만 해댄다. 이런 세상에 안경만 줄곧 그려대는 모습이 왠지 좋지 않은 거 같은데, 잘 모르겠다. 왠지 다 구라같기도 하고.. 경제나 금융쪽에선 무지하니 알 길이 없다. 출퇴근과 일하는 동안 (사람과 대화할 때를 제외하고) 나는 이어폰을 빼지 않는다. 지난주 금요일에 대구로 가는 ktx안에서 비싼 애플뮤직을 해지하고 유튜브 프리미엄으로 갈아탔다. 유튜브 뮤직을 듣기 위해서다. 아내에겐 아이디를 공유해줘서 동영상을 본다. 아무래도 헤비 리스너인 거 같은데 왠지 듣는 음악은 09년이나 21년이나 비슷한 거 같다. 오늘은 위캔드가 신보를 냈는데 영 입맛에 맞지 않는다. 인디음악 랜덤 플레이를 하다가 mia gladstone을 접했는데 적당히 좋은 거 같다. 요즘은 무거운 거 말고 아무 생각 없는 이런 게 좋다.
무겁다는 건 고민이 많이 들어간다는 건데, 그건 풀기도 어렵고 결국 어려워진다. kyeol이 그렇고 ratio lab이 그렇다. 고민이 너무 많았다. 심플하게 가기엔 또 잘하고 싶으니 그 마음이 어려운 거다. 회사에서 새로 만든 '대광'이란 브랜드는 제삼자의 시선으로 팔리냐 안 팔리냐 만 놓고 본다. 이쁘냐 안 이쁘냐, 편하냐 불편하냐, 싸냐 비싸냐 이런 문제다. 이런 건 결정하기가 너무 쉽다. 물론 전반적인 디자인이나 폰트 선택, 여백을 결정하는 일에 감이 부족한 사람들이 끼어들어 맞다고 주장하니 그런 부분이 힘들긴 하지만. 아무튼 추후 나보다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이 있는 판으로 가면 닥치고 일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슬슬 나오고 있는 샘플들도 어느 정도 웰메이드 안경들이 나오고 있다. 공장이랑 사 년 넘게 맞춰보니 이제야 생각처럼 나오는 거 같다. 하튼 kyeol도 절대 놓지 않았다! 3d 렌더링 돌리기 준비중이고 착착 진행되고 있다. 죽이는게 나올듯 하다.
새 직원이 나온지 일 이주 정도 되었나 보다. 경력자인데 4년 차다. 안경 이야기도 잘 통하고, 일머리도 있다. 일단 굳이 말을 안 해도 알아서 하는 데다가, 그분에 대해 내가 고민할 게 없어서 참 편하다. 회사 시스템이야 배워가면 되는 것이고, 아무튼 후임을 몇 번 받아보니 같이 일하기 쉬운 직원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직하면 나도 술에 물 탄듯 이렇게 가야하나. 여하튼 일은 쉽게 쉽게 하는 게 서로에게 만족도가 높다. 물론 힘을 뺀다는 것. '쉽게' 느껴지거나 그렇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반복이 있었는지. 그것은 뭔가 쉽지 않은 것을 반복을 통해 쉬워질 때까지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언제쯤 사는게 쉬워지려나
요즘은 토탈브랜드 안경 사진을 열심히 찾고 눈에 익힌다. 명품 브랜드 안구를 따는 일은 내가 좋아하지 않던 일인데, 나름 열심히 보니 그 두께감이나 넘어가는 선들이 ‘고급’ 지다는 느낌을 주는지, 어떤 공통점이 있었다. 최근에는 태현이랑 같이 백화점 명품관에 있는 선글라스나 안경들을 눈에 박았다. 그 하이엔드 브랜드의 선들. 괜찮은 것 도 있지만 대부분 이쁘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도 요즘은 셀린느에서 나오는 아이웨어들이 라인이 예쁘다. 마지막으로 1층에 있는 젠몬 테들을 보니... 명품들에 있는 아이웨어의 선 보다 좋았다. 예쁘다는 말이다. 여기에 나 같은 안경쟁이들의 눈을 끌만한 독자적인 구조 체결 방식을 구현해서 얹으면 나의 포지션이 확실해 질 듯 하다. 다양한 선들을 보유하면서 그런 구조적인 디테일을 풀어나갈 수 있는 캐릭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근데 이런 나의 고민들은 모두 그들만의 리그처럼 안경하는 애들끼리 떠드는 유치한 이야깃거리에 불과하다는 걸 안다. 어찌 보면 몇십억 인구 중 인생에서 안경을 그린 다는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튼 회사에서 음악이나 들으며 라이노로 안경만 하루 종일 그리고 싶은데, 별 자질구레한 일들이 많아서 귀찮은 요즘이다. 가격 택이나 안경 박스나 pop나 배너 기타 등등등 쓸데없는 것들이 고급진 누군가의 취향도 아니고 싸구려 시장판의 입맛에 길들여진 할줌마나 아재들에 의해 디자인이 좌지우지되며 그것을 만들어내라며 나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이제는 참기 힘들어졌다. 낮 4시까지는 제발 끝내고 나 할 일 하자였는데, 한 번도 그렇게 돼 본 적이 없다. 내가 마감을 못 지키는 건지 일이 많은건지 알 수가 없다. 디자인이란 언제나 하다보면 욕심이 생기고 늘어지는 것이렷다.
엊그저껜가 김도마양이 사망했다고 한다. 몇 해 전인가 온스테이지에서 보고 듣고 '음악 편하게 들리네, 편하게 하네'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녀의 인스타로 들어가 보니 막일도 하면서 서울에서 음악으로 생존하기 위한 사투들이 조금이나마 기록되어있었다. 인스타라는 공간은 원체 자랑질을 하는 공간임에도 그녀의 그런 어려움이 느껴졌기에 어쩐지 서글퍼졌다. 젊고 낭창낭창한 친구였는데.. 나도 그저 서울에서 안경으로 생존하고자 에어컨 없던 문래의 옥탑방에서 지내던 때를 생각하다 보면 울컥해질 때가 있기에 공감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바닥이라 올라갈 계단이 너무 높았기 때문에 떨어져 죽을 일은 없던 거 같다. 이제는 중간쯤 올라왔나? 안경을 하면서 회사도 다니고 작업실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다는 게 한편으로는 대견하다. 남자의 직업으로 안경 디자이너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이걸로 평생 내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일'에서 떨어지기 위해 시스템을 만들 차례인데 보통 이런 시스템 이야기하는 30대들이 잘 망하기도 한다. 래퍼들이나 배우들이 돈 좀 모아서 결국 가게를 내거나 빌딩을 사는 거 보면 다 일하기 싫어서 그런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잘 모르겠다. 안정감이 있으면 아무래도 명작이 안 나오잖아. 아무튼 그녀의 죽음을 보면서 쓰여 있는 댓글은 보통 더 친절하게 대할 걸, 음악 좋다고 소리 내어 말할 걸, 소식이 궁금하다고 생각만 했는데 말을 걸어볼 걸 뭐 이런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사소한 행동이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것에, ~할 걸 이란 후회를 하지 않도록 살아야겠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안부를 나누고 생각해주고 후회를 남기지 않게 살아야겠다. 그녀가 저 섬에서 행복하길 빈다.
퇴근하자마자 집에 바로 오면 저녁 8시. 주섬주섬 뭔가 줏어먹고 재이 씻기고 나도 씻고, 격렬한 전쟁의 잔해처럼 늘어진 아이 장난감을 치우고, 아기 체육관도 접어서 자리에 넣어두고, 빨래 거리들을 주워서 세탁기에 돌리고 시간 끝나면 건조기에 넣고, 집 한번 청소기 돌리던가 걸레질하고. 아니면 아내가 그것들을 하게 두고 난 아기를 보고. 설겆이도 하고 옷도 스타일러에서 나와 다시 옷걸이에 걸어두면 9시가 조금 넘는다. 애를 재우러 들어가는데 피곤한 날은 재우다가 내가 먼저 잠이 든다. 아마 나는 주3일 정도 애를 재우나보다. 보통은 아내가 재우러 들어가고 내가 못재우고 애가 기를 쓰고 울기만 할 때가 있는데, 아내가 들어가는데 이내 잠들었다며 나오는 것이다. 내가 들고 아무리 재워봐야 애기는 울 생각만 하는 거 같다. 여하튼 집에 와서 재우기 전이나 자고나면 가습기 2개도 내부랑 구석구석 닦아낸다. 이틀 쯤 지나면 어딘가 미끄덩해 지는데 기분이 왠지 구리다. 이끼가 끼었는데 그게 증기로 나온다고 생각해보면 끔찍하다. 가습기 내부 구조 좀 심플하게 만들라고 하고싶다. 택배 오면 그것도 뜯어서 분리수거 준비하고. 하루는 24시간인데 애기랑 흔들 댈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2시간뿐이다. 예전 아빠들은 육아도 안 하셨다는데 애기 크는 건 보셨을까. 나는 재이가 매일 달라지는 게 아쉬워서 매일 동영상과 사진으로 찍어댄다. 아무튼 이렇게 정리하면 재이도 안 자려고 울다가 몸 흔들어 대다가, 9시 반 10시쯤 잔다. 그럼 내 세상인데, 나도 막상 피곤해서 뭐 놀지도 못하고 잠이 든다. 그러면 다시 새벽에 깨서 애기 분유 타주고 이럭저럭 하다가 출근한다. 반복이다.

지난 주말에는 라치오랩 사진 찍으러 사진 스튜디오 다녀왔는데, 피곤하긴 했지만 재미있었다. 여하튼 위에는 그 사진들이다. 재이는 이제 4.5개월이 지났다. 이제는 의사표현도 좀 하는거 같다. 잘 웃고 소리도 지르고 안겨있는 걸 좋아한다. 나는 뭘 좋아할까. 안경이랑 옷 좀 사고 싶다.
요즘은 말을 좀 아끼자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냥 안하는게 좋을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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