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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와 채용 본문
결국 퇴사의 시기가 왔다.
3월 안에, 늦어도 4월 첫 주 안에 나가야 하는데, 안경 디자이너라를 뽑고 인수인계하고 나가야 한다. 생각보다 회사에 오래 있었고, 많이 배웠고, 엄청나게 많이 얻고 나간다. 자리도 남산 아래 위치한 볕 잘 들고 따듯하고 시원한 통유리 사무실에서 혼자 일 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 무엇보다 조용하고 환기 잘 되는 자리에서 대표가 아니면 건드릴 일이 없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직원으로서 성장할 한계는 선명했고, 익숙하고 편하기 보다는 더 큰 시장, 나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긴 가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그 기회가 왔다. 이제는 지금 다니는 회사가 강력한 한방을 통해 긴 기간 동안 또 그 동력으로 굴러갈 수 있는 구조가 됐다. 슬슬 일이 잘 흘러갈 수순일 텐데 회사를 나가야 하는 일이 이제야 오니, 많이 아깝긴 하지만 나의 다음 커리어를 위해 해야 할 일이다. 적어도 다음 사람이 오든, 어떻게 되든 내가 벌려둔 판은 오토로 굴러가도록 만드는 게 나의 큰 남은 일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채용 공고를 올렸다. 사수가 없을 상황이라 1,2년은 했던 사람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 한편으로는 완전 신입이 와도 한달간 빡세게 배우면 일머리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있다. 혹은, 큰 유통회사에서 나랑 동년배인 사람이 와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안경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특히 내가 다니는 회사와 합을 맞추고 가치관을 맞추고, 일을 책임감 있게 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란 생각에 나는 요즘 고민이 크다. 가장 친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그 부분은 내가 고민 할 부분이 아니고 대표가 해야 하는 고민이라고 하는데 나는 왜 이리 고민이 되는가.
이게 디자인만 하면 상관없는데, 이 영세한 로컬 시장에서는 디자이너란 브랜딩, 로고, 라이센스, 제품 기획, 국내 해외로 발주, 송금, 해외 쇼 출전, 국가지원금 받아내기, 채용, 신제품/ 리오더 물량 설정, 입고 시기, 달에 한 번은 국내나 해외 출장, 명함 만들고 발주까지. 그리고 뭔가 필요하다면 다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그 전제 조건엔 대표가 마음에 들게. 아, 홈페이지도 만들었고 촬영, 보정, 업로드 등의 여러 과정도 해야 한다. 물론 그건 내가 해 온 일들이고, 앞으로 올 사람에게는 축소해서 일이 넘어가겠지. 일이 이렇듯 짬뽕이 된 이유는 회사에서 사람 셋을 내보내면서 생긴 일들이 나에게 떠내려왔기 때문이다. 사람을 받고 일을 소화하기 쉽게 간추려서 알려줘야겠단 생각을 한다.
아무튼 지금까지는 이랬다면 나는 앞으로 갈 회사에서 디자인에 온전히 집중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대가 크고, 편하고 안정적인 정규직 자리를 박차고 가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나이가 들어 이 선택에 대해 후회 없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겠지. 필사즉생 골육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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