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os
아내가 집을 나갔다. 본문
소연이가 제주도로 친구들과 여행을 갔다. 산모가 비행기라 걱정되는 마음에 공항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왔다.
아내가 처가로 가던가, 여행을 가서 비운 사이 눈물을 글썽이다가 그녀가 사라지는걸 눈으로 확인한 후, 눈이 번뜩이며 비밀스레 어디론가 갈 곳이 있는 남자들을 상상했다. 부부간의 법에서 불법을 저지른다던가 하루 종일 하고 싶은걸 하는 자유 남편들을 상상해서 왠지모를 신남이 나도 없지않아 있었는데 집에 도착해서 한숨 자고 그냥 서너시간 지나니 심심함만 있을 뿐이었다. 락스 냄새를 싫어하는 아내가 없는 김에 화장실과 부엌 락스청소를 편하게 할 수 있었다는 정도, 아 그리고 3일정도 아내를 안보자 체중이 잠시나마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게 그동안 부었던 건지 잘 먹은건지 잘 모르겠다. 기묘한 체험이었다. 한편으로는 완벽한 자유의 순간에 갈 곳이 없거나 할 일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었다.
그래도 소연이가 놀러 간 토요일. 작업실에는 윤누나의 지인이 왔다. 나는 평생 있기 어려운 기회인지라 친구인 수환이랑 양주 마시면서 음악 동영상이나 신나게 보면서 기타나 치자고 불렀는데, 어찌저찌 합석을 하게 됐다. 아 원래는 캠핑을 가려고 했는데 비가 너무 많이와서 급 변경했다. 서울숲도 몇바퀴 돌았는데 정신이 맑아졌다. 내가 그간 얼마나 회사에 찌들어 있었는지. 수다는 환상이나 미래적인 이야기가 즐겁다. 하긴 이상적인 직장생활도 환상일지 모른다.
맥주소주양주에 포도주까지 섞어먹은 윤누나와 사람들은 엉망 진창이었다. 나는 그 날 새벽부터 아내를 바래다줬기에 너무 집에 가서 자고 싶었고, 솔로이신 진배햄은 누나랑 둘이 있고 싶어했으며, 누나는 다들 집에 안가길 바랐다. 수환인 결국 나랑 새벽 5시가 넘어서 집에 택시타고 도착했다. 우리는 다음날도 기타를 쳤고, 서울숲을 걸었다.
이제는 가끔 들 때마다 녹슬어있는 기타 줄을 본다. 19살 부터 쳤으니 지금쯤이면 에릭클랩튼처럼 쳐야 맞는 건데 내가 살면서 끝까지 치고 싶었던 환상의 곡들은 접근도 못하고있다. 시간이 중요한건 아니고 실력은 지속적인 흥미와 끈기가 필요한 일이다. 이제는 치는 것 보다는 리스닝을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