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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의 작업실 본문
장마철로 들어가는 시기다.
회사를 다니면서 하고 싶은 안경은 따로 하겠노라, 19년 말 뚝섬에 작업실을 새로 구했다.
팔리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것에는 어느 정도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에, 본인의 브랜드를 운영하지 않는 이상 이 정도의 타협은 필요하다 생각했다. 그 전에는 문래에 있는 안경 공방에 출근 도장을 찍었지만, 그곳이 잘 되면서 법인화가 되었고 투자자? 사장님이 따로 생기는 바람에 전처럼 편한 분위기는 아니게 된 게 가장 크고, 내가 이사를 가면서 멀어진 게 다음일 게다. 무작정 문래의 안경공방 근처에서 옥탑을 구해버리고 일 시켜 달라고 떼쓴 지 4,5년 정도 지난 것 같다.
최근 안경 공방은 자체 브랜드를 준비하면서 더 이상 수강생을 받지 않는다 했는데, 나도 3년 정도 공방 선생님으로 있으면서 이렇게 수지타산 안 맞는 일은 하면 안 되겠다 생각했던 것 같다. 아무리 좋은 마음과 장인 정신으로 무장한다 한들 수강생을 정해진 시간 없이, 마음에 들 때까지 케어해 준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행히 참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다른 업계나 같은 업계에 계신 분들과 많은 이야기도 나누었으니 나에겐 득 보단 실이다. 덕분에 안경판에도 들어오게 되었고... 전에는 안경원에서 안경파는 일을 해야하나 고민할 정도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안경 공장 사장님들과 같이 중국이나 홍콩으로 출장, 눅눅하고 습한 선전의 junyi 호텔 방구석에 앉아 주걸량이나 선물 받은 마이따오, 수정방에 컵라면 먹으면서 안경 인생 이야기를 하다 보면 즐거운 출장이 마무리되는 것이었다. 최근, 지금 회사에 너무 굳어지는 것 같아서 이직을 준비해 볼까 한다는 말에 공장 사장님께서 한참 통화를 붙들고 만류했던 일도 있고. 아무튼 우리는 우리는 이 일을 너무 좋아한다. 코로나 때문에 파리와 중국, 일본으로 신비로운 새 부속들을 못 보러 가는게 힘든 요즘이다.
- 작업실1 내부
19년 12월 안경 공방에서 만난 기복과 의기투합하여 작업실을 오픈했다. 오픈이라기보다는 각자가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서 나온 결과다. 처음엔 지혜와 윤누나 총 넷이 같은 마음으로 시작했으나, 반년 쯤 지나자 셋만 남았다.
아무튼 작업실비가 은근히 만만찮아 단기적으로 집안 살림에 도움은 전혀 안되고 있으니 재정에 관한 고민이 조금 있다. 이런저런 장비도 수입하고 작업 테이블에 전시 선반도 만들어야 하는데.. 최근에는 일본산 아세테이트도 수입하다 보니 지출이 상당하다. 연마를 위한 가랑도 작업실 메이트 기복과 같이 제작 중인데, 막상 일이 진행되어 안경을 만든다 한들 나는 장사꾼 기질이 적어 제품을 팔 생각이 딱히 없다는 게 문제다. 그저 안경의 끝판을 한국에서 만들어보자는 생각뿐이다. 그 이후는 알아서 풀릴 것이라 생각한다. 취향은 높고 인테리어는 끝이 없으나 돈은 없어서 타협을 해야 한다. 돈 걱정이 없었면 1층짜리를 사서 업자를 썼겠지. 물건을 잘 팔만한 인물은 추후 등장하리라 생각한다. 일을 진행 할 수록 '선수'가 중요하다 느낀다.
고로 뚝섬에 있는 작업실이 워낙 넓으니 몇 명을 더 들여 쉐어를 하자는 게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고정 지출 절감 방법이다.
현재 입주자는
윤누나 주얼리 브랜드 & 영화 의상 제작자
기복 메탈 크래프트 디렉팅&제작자&유튜버
상균 핸드메이드 아이웨어 제작& 안경 디자인 및 디렉팅
+ 준수 웹앱 개발자 가 함께하고 있다.
예전에 생각했던 주상복합 (resimercial)의 오프라인 버전이다. 온라인으로 살고 만들고 파는 생태계를 만들자던..
- 거실
어느정도 정리가 되려다가 이젠 작업을 시작하자며 스탑 한 인테리어. 점점 공간의 엔트로피는 높아지고 있다. 사진에는 옥탑에 있는 방과 작은 방이 안 찍혔는데, 조만간 찍어서 올려보겠다. 현재 나와 윤 누나는 작업실을 잘 못 가는 상황이고 기복이는 다른 메탈 작업실이 하나 더 있어서 작업실 활용도가 낮은 편이다. 같이 이 곳을 쇼룸 겸 작업실로 꾸려나갈 인재가 나오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아마 작은방이나 옥탑을 통으로 임대하지 않을까 한다. 거실과 마루 화장실은 편하게 같이 쓰면 된다.
작업실이 어느정도 마무리 된 최근에 들어와서 일을 꾸며보고 싶다는 친구들이 부쩍 늘었으나 비용적인 측면에서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다들 모이면 신나는 사업 이야기를 하고 있으나 우리는 가난하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최대한 안전하게 스텝을 밟아야 하기에 이런 작업실에서 적은 비용으로 테스트를 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된다. 사실 반 이상은 재미를 위한 것이다. 직장이란 예전처럼 평생 직장이 아니고 나를 완성시켜주는 통로라 생각되는 요즘이다. 결국 우리들은 무엇을 하게 될까.
공무원이 천대받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일반인에게는 최고의 직업이다. 폐지를 줍는 일이 나중엔 각광받을지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어차피 알 수 없는 세상. 하고 싶은 일들에 도전해보자. 안전하게.
아 작업실 이름은 '신윤복'이다. 신상균, 이윤, 박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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