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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에 대해

by BEOS 2023. 12. 31.

자신이 받는 월급과 실제 일의 무게가 비례하지 않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불만이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쥐꼬리, 저 사람은 변변한 일도 하지 않는데 꽤나 받고 있다, 이건 불공평하다. 이런 말이 하고 싶겠지.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말은 별로 정확하지 않다. 월급에는 '불공평'이라는 게 없다. 있는 것은 '월급이 적다'는 사실 뿐. 자신이 받는 월급이 내 능력에 비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신이 받는 월급이 내 능력이 잘 평가된 적정금액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세상 사람 99퍼센트는 내 월급은 부당하게 적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능력이 부당하게 낮게 평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대 곁에 '그대보다 일도 못하는 주제에 그대보다 많은 월급을 받는 사람(가령 MK라 해두자)이 있다고 하자. 이 MK가 그대보다 많은 월급을 받고 만족하는가 하면, 물론 그도 전혀 만족하고 있지 않다. 엠케이 역시 자신의 월급이 적다는데 대해 마음속으로 깊이 화내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대와 완전히 같다. 혹은 수입이 적은 그대의 대우를 부러워할 수도 있다.

'내가 이렇게 일하는데 너는 변변한 일도하지 않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아. 그런데 꽤 많은 알바비를 받고 있지. 좋겠다, 너는.. 너는 사실 1시간 가운데 실질적으로는 5분밖에 일 안 하잖아. 좋겠다 너란 놈은. 그만두고 싶을 땐 언제든 그만둘 수 있고(나는 대출이 있고 애들이 있으니 때려치우고 싶어도 못 그만두는데)라고 MK가 생각한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MK의 이런 생각은 그대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딱히 틀리지 않았다.

원래 그렇다.

들으면 놀랄 수도 있지만, 실은 그대보다 많은 월급을 받는 사람들조차 대부분 '내 능력은 부당하게 저평가되고 있으며, 나는 원래 내 능력에 지불되어야 할 임금보다 훨씬 적게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대만이 아닐세. 안심했나? 딱히 안심할 일은 아닌가. 그러면서 사고방식을 바꿔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를 생각해 보자.

 

그대는 능력주의 사회를 희망하나?

그대는 그대의 능력이 엄정하고 적절하게 평가되어 그 애말로 그에 딱 들어맞는 월급을 받고 싶다고 바라나? 보통 회사에서 일하면 인사고과라는 것을 받는다. 상사가 그대의 근무 태도를 체크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승진이나 승급이 결정된다. 이 인사고과가 적정하게 이루어진다고 믿는 사람은 세상에 별로 없다. 대부분의 샐러리맨은 자기보다 동료가 빠르게 진급하여 출사헤만 '나보다 능력이 좋아서 그것이 적정하게 인사고과에 반영되었기 때문이야'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딱히 별다른 능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우연히 '상사의 마음에 들어서'라고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출세가 늦는 것에 대해서는 '남보다 능력이 떨어져서 그것이 적정하게 평가되었기 때문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단 하나도 없다,라고 말씀드려도 좋으리라. 내가 출세를 못하는 건 그저 상사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일 뿐이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일을 못해서가 아니라 일을 너무 잘해 서고,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머리가 너무 좋아서이며, 성격이 나빠서가 아니라 성격이 너무 좋아서다. 보통 사람은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

머리가 너무 좋아서 그만 상사의 실수를 지적하고, 일을 너무 잘해서 그만 동기의 질투를 사고, 업무 지도가 너무 엄격한 탓에 그만 후배가 멀리한다.. 그래서 좀체 출세하지 못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내 출세가 늦다'는 데 내심 불만을 품고 있는 샐러리맨의 99퍼센트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같이 화를 낼 일은 아니다.

세상이 그런 곳이라는 체념 또한 99퍼센트의 사람이 공유하고 있으니까. 생각해 보면 분명 상사도 사람, 명절 선물, 연말 선물을 보내는 마음 씀씀이에 나쁜 기분은 들지 않을 것이다. 부하가 사장의 친척이라면 인사고과 점수를 좀 높게 매기는 일도 있으리라. 잘 치켜세워주는 아부쟁이 사원과 직언을 꺼리지 않는 카리스마 사원이 있다면 아부쟁이 녀석을 좋아하는 일도 있겠지. 확실히 사람은 약한 존재다. 상사라 해도 그 정도는 눈 감아줘야겠지. 보통 샐러리맨은 이런 식으로 생각하며 인사고과의 '불공평'을 나름대로 합리화한다. 하지만 인사고과가 엄청하지 않다는 바로 그 사실 덕분에 자신의 시원찮은 업무 성과가 정당화된다는 점은 편하게 잊고 있다. 그는 인사고과가 불공평하며 신용할 수 없다는 사실로부터 불이익과 동시에 이익도 얻지만, 그 부분은 홀랑 까먹고 있는 것이다. 상상해 보시라. 그대가 바라듯 인서고과가 실로 엄정하다면 어떻게 될지를. 나이도 가적구성도 근무연수도 학력도 무엇도 관계없이 순수하게 '능력만'으로 월급과 직급이 결정되는 회사에서 근물 할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때 회사 내부의 모든 위계 차이와 월급 차이는 그대로 '공공연히 드러난 인간적 능력 차이'가 된다. 

'적정한 인사고과에 따른 완전한 능력주의 사회'는 완전한 '지옥'이다. 왜냐면 거기서는 그대의 월급이 적은 것에 대해서든 직급이 낮은 것에 대해서든, 평가에 관한 어떤 '변명'도 도무지 통하지 않을 테니까. 월급이 적은 것은 명백하게 '능력이 보잘것없다'는 기호이며 그 잇아도 이하도 아니다. 어째서 세상의 모든 샐러리맨이 '내 능력은 부당하게 저평가되고 있다'는 불만을 품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완전한 능력주의 사회의 도래를 바라지 않는지? 인사고과가 적정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데서 그들은 전체적으로는 인사고과가 적정한 경우보다 더 큰 이익을 이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인사고과가 엉터리이기 때문에 그들은 '내 능력은 지금 평가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해'라는 달콤한 환상 속에 잠길 수 있다. 그리고 바로 '내 능력은 적정하게 평가되지 않았으며 내 월급은 원래 받아야 할 액수보다 훨씬 적다'라고 믿기 때문에 그들은 그 '적은 월급'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란 그런 생물이다. 그런 슬프면서도 꽤나 교활한 생물이다. 그대는 자신의 월급이 부당하게 적다 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생존 전략상으로는 옳다.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그대는 그 적은 월급을 견딜 수 없을 테니까. 현재 시급이 그대의 노동에 대한 적정한 대가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그대의 자기애, 자존심, 장래의 꿈을 비롯한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사방으로 흩어져버릴 테니까.

아카데믹 허레스트번트라는 말이 있었는데, 대학의 선생이 제자들의 업적을 평가할 때 개인적인 호불호를 기준으로 판정하기 때문에 능력이 있으면서도 부당하게 낮은 평가를 받는 연구자가 많으니 이것을 시정하라는 주장이었다. 제자의 연구 능력을 공정하게 평가하는 선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것도 곤란하다. 능력 평가란 지극히 부정확한 것이다. 학술 논문은 어떤 면에서는 예술작품과 같은 것이므로, 그 완성도의 '좋고 나쁨'에 대한 판단은 감상자의 취향에 크게 의존한다. 어떤 권위자가 절찬하는 논문을 다른 권위자가 혹평하는 일은 일상다반사다. 누군가의 논문이 '쓰레기 논문'으로 오물취급받는 한편 "당신이 쓰는 글은 참으로 개성적이더군"이라고 말해주는 분도 조금은 있다. 취향이 달랐던 것이니 어쩔 수 없다. 이는 미술이나 음악이나 문학 작품에 대한 한 사람 한 사람의 호불호에 보편성을 기대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완전히 공장한 능력 평가에 바탕을 둔 완전능력주의 사회란 있을 수 없으며 있어서도 안된다. 그것은 인간의 자부심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사회다. 그것은 구성원 대부분이 살아갈 기력을 잃어버리고 조직의 사기가 치명적으로 떨어지는 사회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사회의 도래를 사실은 바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