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기업의 흥망성쇠

by BEOS 2023. 12. 31.

기업은 전반적으로 창업자와 창업 당시 직원이 가장 우수하다. 창업자는 기존 기업이 시도하지 않았던 비즈니스 모델을 생각해 낸 사람이니 창의력을 갖추고 있다. 그럭저럭 능력이 있으면서도 구태여 월급쟁이의 길을 박차고 홀로 걷는 위험을 선택했으므로 자립심도 왕성하다. 창업자가 우수하면 사업은 성공하고 기업은 급성장한다. 이 급성장 과정에서 매월 '인력이 부족한' 사태가 일어난다. 그래서 이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시기에,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고양이 손보다 조금 나은' 반 한량 같은 젊은이들이 이 기업에 우르르 들어오게 된다. 창의력이나 자립심은 창업자만큼 갖추고 있지 않지만, 본바탕이 '반 한량'이므로 그 시대의 지배적인 가치관을 순순히 따르지 않으며 살짝 삐뚤어진 데다 상당히 수상한 인맥이나 의외의 비법을 가지고 있다.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으로 왔지만 회사가 급성장하는 통에 어느 틈에 깊숙한 곳까지 발을 내디디고 만 이런 젊은이들이 몇 년 지나면 관리직이 되어 기업의 중심 부대가 된다.

여기까지는 기업으로서는 상당히 좋은 전개다. 하지만 이 뒤로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기업이 성장하고 주식이 상장되어 사장의 얼굴 사진이 경제신문에 뻔질나게 나오게 되면, 이 회사로 이제껏 온 적 없는 타입의 젊은이들이 모여든다. 국내, 해외의 유명대를 나온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귀사의 장래성을 기대하며 우르르 몰려드는 것이다. 그 즉시 구직 지원율은 쑥쑥 올라가게 된다. 인사의 어려움은 여기에 있다. '약간 명 채용'에 구직자가 천 명이나 몰리면 모두를 아르바이트생으로 일단 뽑은 뒤 장래성 있는 녀석만 남기는 식의 느긋한 진행은 할 수 없다. 서류전형에서 적어도 백 명으로 후보를 줄이고 싶다. 그렇다고 '도쿄대 경제학부 졸업'이나 '하버드대 로스쿨 졸업'이라는 학력을 가진 은시자를 서류전형만으로 떨어뜨릴 수도 없다. 뭐 떨어뜨리더라도 한번 만나봐야지라고 하게 된다. 백이면 백 그런 고학력자라면 삼류, 지방대는 자연스레 면접을 볼 기회조차 없어진다. 요컨대 창업자들 같은 자립심도 없고 급성장기의 사원처럼 괴짜도 아닌, '큰 권력, 많은 정보, 높은 임금'을 노리고 온 모범적인 예스맨들이 거의 배타적으로 신입사원 무리를 형성하게 된다. 

이리하여 기업은 기백있는 창업자, 태평한 관리직, 성실한 신입사원으로 어우러진 아름다운 삼색기 상태일 때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창업자 세대와 태평한 세대가 은퇴하여 예스맨만 남게 되었을 때, 회사는 예외 없이 곧장 쇠퇴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조직은 다양한 요소가 뒤섞여 있을 때 가장 활기가 넘친다. 이 점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번창한 조직에 나중에 모여드는 개인은 '먹음직한 이야기가 있다'는 말에 이끌려 오는 '먹음직한 이야기' 지향형, 사리추구형 개인이므로 그 조성이 매우 균질하다. 그리하여 아무리 활기차고 다영성 넘치는 조직이라도 불과 몇 세대 마문에 꼭대기부터 바닥까지 권력과 정보와 임금에만 관심을 두는 개인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이다. 
사리사욕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 개인이 일정 비율 조직에 포함되어 있는 편이 조직의 생존 전략상 유리한 시기도 있다. 그러나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사람들만 남게 되면 조직은 더 이상 굴러가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다양성을 유지할 때 번성하고, 번성하고 있다 는 이유 때문에 균질한 개인을 결집시키며 그 결과 조직으로서의 다양성을 잃고 쇠퇴한다는 사실이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큰 권력, 많은 정보, 옾은 임금'을 줄 수 있는 기업은 성공한 기업인데, 이런 조직에는 독창적인 연구 재능을 가진 사람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견해 내는 지완을 가진 사람도, 지배적인 가치관에 회의를 품는 사람도, 의외의 것을 연결시키는 네트워크를 가진 사람도 더 이상 없다. 이리하여 기업은 내리막길로 접어들고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보다 적은 권력, 보다 적은 정보, 보다 싼 임금이라는 축소 재생산의 과정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이 축소 재생산에 들어간 곳에는 미래가 없으며 질 높은 일을 하는 사람에는 몇 가지 부류가 있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한가해서''부탁받았으니까''나를 알아준다고 느꼈으니까' 처럼 아무래도 좋은 이유로 일을 하는 사람. 대개는 이런 사람들이 가장 '질 높은 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