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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마켓 본문

아들 돌잔치가 다음달이다. 돈이 들어올 구멍은 좁지만 나갈 구멍은 크고 많다. 빚지면서 하기는 싫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이 남기는 역사인데 잘은 하고싶고, 딱히 뾰족한 수는 없는 마당에 주말에 집정리를 하면서 안입는 옷들이 잔뜩 나와 팔아 치우자 생각했다.
허리 28사이즈의 생지 청바지들, 폴로셔츠, 핼멧백, 가방 등등 이제는 안입는 스타일이거나 몸뚱이에 맞지 않게 된 것들을 다 올렸다.
사진의 바지는 멜버른 여행 당시 호스텔이나 백배커, 스튜디오에서 묵지 않고 텐트로 한달 살면서 모았던 돈으로 산 역사적인 apc 쁘띠 스탠다드였다. (추후 당시 찍었던 사진들도 보충할 예정) 그때 털보 김어준 양반이 그지였는데 보스 정장을 사서 인생이? 뭔가 달라졌단 이야기에 감명을 받았던 것 같다. 나의 탄탄하던 20대를 화려하게 대변하던 이 청바지는 재이 돌복 대여하는데 보탬이 될 예정이다.

사만원으로 깎아달라는거 거절하고 오만원에 개찰구에서 고고하자는 당근 메세지를 받고 달려갔다. 20대 빼빼마르고 키작은 청년에게 건네주니 멋쩍게 웃으며 쌈짓돈을 꺼내주더라. 멋부릴 준비가 된 가치를
아는 청년이었다.

내 젊은 시절의 시그니처를 팔고나니 왠지 헛헛해져 맥주 좀 사고 남은 돈은 아내에게 다 줬다.

아빠가 된 나의 젊은 날들은 이제 기념할 물건도 남지않아가는 거 같아 왠지 적적하다. 이러다가 실수로 사진도 다 날아가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것만 같다. 내일부터 디자인 팀은 다시 컬렉션 준비로 빡세진다. 일요일도 오분 뒤면 끝이다. 이번엔 잘해보자. 아마 그냥 가을을 타는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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