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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의 고뇌 - 1 본문
그와 일 이야기가 나온 때는 2019년 초 겨울이었다. 그는 젠틀몬스터에 아이웨어 디자이너로 운 좋게 입사했다가 아무래도 짤릴 위기라며 나를 찾았고, 겨울날 합정의 스타벅스에서 차 한잔 사주며 이야기를 들어줬다.
나는 그 때 그를 만나지 말아야 했다. 사람과 일을 시작하는 것은 절대 정으로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오피스 편
내용을 듣자하니 아무래도 따돌림을 당하는 듯했다. 그 회사에 만연한 분위기라며 도면을 아무리 열심히 그려도 반응을 안 하거나 뭐가 자꾸 별로라고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디자인팀은 5층에 위치하는데 자기 자리만 지하 1층 샘플실 앞에 두었다는 것. 디자인 직원들이 자꾸 살살 퇴사하라는 분위기로 몰아간다 했다. 나는 분개했다. 사람을 그런식으로 대하느냐고. 아무래도 니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든다기보다는 너라는 사람이 싫어서 그러는 거 같아서 그러는 거 같다고 귀띔을 해줬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게 먼저일 거 같다고. 추후 그와 일한지 크게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그들이 디자인팀에서 그를 내쫓으려고 했는지 알게 되었다.
안그래도 그는 젠몬에 입사 후, 항상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며, 도면도 굉장히 열심히 그린다고 나를 포함한 안경하는 주변인들에게 쭉 이야기를 해왔다. 우직하고 진실한 면이 있던 친구라 나는 그의 성실함을 알고 있었고 항상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들이 디자인에 대해 무슨 요구를 하는지, 너는 어떤 도면을 그렸는지, 그 사람들의 스타일은 어떤지, 그 감성을 파악하려면 그들이 그린 도면을 봐야 하므로 한번 보여달라고 이야기를 했으나 이상하게 그런 쪽으로는 절대 도면을 보여드릴 수 없다며 단호하게 이야기를 하길래 썩히 도와줄 방법도 없었다. 무척 답답한 스타일이었지만 한편으론 정직한 친구라고 생각했다.
당시는 보안에 대해 철저해서 라고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지나 그를 알고 나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이나 정보를 나누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다니는 회사마다 제품 도면들을 저장해서 외장하드에 저장했다. 젠틀, 에끌레시아 대표의 도면들을 어떻게 갖고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공장의 모든 도면도 저장을 해뒀고, 결국 우리 회사도 퇴사하면서 모든 도면들을 저장해서 나갔다. 그는 단지 도면을 '수집'하고 남에게 보여주기를 싫어하는 듯 했다. 또한 그 수집한 도면을 활용해 수정. 나에게 쉽게 디자인을 제안했으나, 철 지난 혹은 도매스틱으로 팔기 어려운 모양들이거나 이쁘지 않았으므로 대다수 거절을 했다.
그는 젠몬에 디자이너들이 뽑는 정식 채용이라기 보다는, 당시 변동이 있던 자리 이동에서 온 에끌레시아에 있던 공장장이 따로 뽑은 인물이었다고 대충 들었다. 그러다가 그 팀이 와해되면서 자연스레 디자인팀으로 흡수되는가 싶다가 같은 방법으로 채용된 입사 동기는 디자인 팀에 흡수되고 그는 영 스타일도 안맞고 답답하고 느린데다 고집은 세고 말귀도 못알아 들으니 따로 책상을 뺀 모양이었다.
당시 나도 혼자 반년정도 일하면서 지쳐있었기에 촬영도 하고 그래픽 관련한 직원을 하나 뽑아야겠다 생각하던 차였는데, 안경 도면을 칠 줄 알던 그 친구를 영입해서 제품력을 키우자 다짐하며 채용의 크게 방향을 틀었다. 계획이 바뀌었다며 사장을 설득했고, 평소 신입사원이 받을 연봉보다 높게 요청을 하여 나는 사장님과 옥신각신 하기도 했다. 사장님은 그 직원을 알지도 못하는데 그 월급은 무리라고 했으나 내가 간곡히 부탁해서 그나마 올려 책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입사 직전 나에게 연락을 해서 더 올려달라고 말할 수 없느냐며 나에게 전화를 했다. 나를 보고 들어오는 사람이라는 책임감에 사장에게 한마디 꺼냈으나, 그 친구 실력을 보고 생각하자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들어오면서 청년 채움 공제를 신청해달라 했고, 이건 나도 하고 싶던 건데 내가 처음 들어오던 초기에 내 팀장과 윗선은 귀찮다며 안 해줬던 일이라 내 다음으로 오는 직원들은 꼭 해주고 싶었기에 흔쾌히 승낙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이것 때문에 그를 쉽게 내보낼 수 없게 만들었고, 나라의 명이라는 미명 하에 회사 돈을 빼서 가입된 직원만 배불리는 제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관계 좋고 부지런하고 열심인 직원이라면 그렇게 도와주는 데에 불만이 없겠으나 그는 나중에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오는데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어떤 일에 대해 누군가 도와주거나 호의를 베풀면 그런 상황을 인지하고 보답하려는 마음을 갖기 보다는 자신의 이익이 우선에 있던 친구였다.
청년 채움 공제는 매 달 직원 월급에서 10만 원 회사 30, 나라가 얼마씩 돈을 모아 1년이면 대충 800인가 1000만 원 정도 맞춰서 돌려주는 시스템이었다. 그는 아둔했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한 일에는 예리했다. 많은 서류가 필요했고 여기저기 팩스를 보내야 하는 일이었고 정기적으로 연락도 받아야 하는 일이었다. 수시로 팀장인 나나 고문에게 종이를 들고 찾아가 도장과 싸인을 요청했고 이후 채움 공제에 내용을 기입하는 과정 중 고문의 실수로 그의 월급을 반년간 10만 원씩 더 준 일이 있었는데, 나중에 그에게 고문이 월급 더 들어가는데 왜 말을 안 했냐 하니 돈이 더 들어온지 몰랐다고 했다. 고문은 그냥 자기 실수니 앞으로도 월급 십만 원 더 받으라며 쿨하게 근로계약서를 수정해줬다. 이렇듯 그는 자신이 아둔하다는 이미지를 이용해 편하게 활용한다. 십만원이 더 들어올 땐 조용하다가 언젠가 보험료 관련으로 삼만원이 평소보다 덜 들어오자 그건 귀신같이 고문에게 물어 본 기억이 난다.
나는 직원인 나를 위해 전임 팀장이 사장과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하물며 커피 한잔 산 적도 없던 그였기에 나는 직원에게 잘해줘야지 라고 다짐을 했었다. 종종 커피를 사주고 한 달에 한 번은 특식이라며 주변 맛집에서 점심을 먹고 내 돈으로 계산하고 같이 산책을 했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는 딱히 고마움이라는 감정이 마음에 없었으며 그저 '한 끼 값 굳었다, 커피값 굳었다' 정도의 계산 방식을 갖고 있던 것 같다. 본인의 이익을 위한 일에는 예리했다. 연에 두세 번 직원들끼리 저녁에 호프라도 가면 그는 단 한 번도 돈을 보탠 적이 없었다. 내가 내지 말라고 한 점도 있지만 그는 그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언젠가 그가 근무하던 시기에 고문이 우리 층 사무실은 왜 이리 휴지가 빨리 없어지냐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1주에 휴지 2~3 롤은 없어진다며. 나는 무슨 휴지 가지고 그런 소리를 하시나 생각하고 넘겼던 사건인데, 최근 고문이 나에게 요즘은 1주일에 휴지 1 롤도 안 쓴다며 그가 도대체 휴지를 얼마나 쓴 거냐고 나에게 웃으며 말을 했었다. 평소 가방을 들고 오지 않던 그가 마른 가방을 들고 출근하길래 ‘뭐가 들었을까’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저녁엔 빵빵한 가방을 들고 퇴근하길래 ‘뭘 가져가는 걸까’ 라고 생각했던 기억들이 뇌리를 스치며 이제야 모든 실마리가 맞춰졌다.
그는 근무 초기에 심심한지 종종 내 책상의 기역자로 생긴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와 내 의자 뒤에서 내 모니터를 한참 들여다보곤 했다. 나는 그 행위가 굉장히 불쾌했지만 딱히 뭐라고 하기도 좀 그랬다. 하루는 아침에 봤던 인터넷 뉴스창이 작게 하단에 위치해 있었는데 내 뒤에 서서 '경향신문이라~' 하면서 습~ 소리를 내며 혼잣말을 해대길래 어처구니가 없어서 앞으로 뭐 보고하거나 물어볼 때 이 안쪽으로 들어오지 말고 건너편에서 말하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그게 잘못된 건지 몰랐단다.
나는 회사에서 딱히 일 얘기 말고는 대화 자체를 안 하는 편인데 그는 자꾸 나에게 사소하고도 쓸데없는 대화를 걸면서 상황극을 했다. 여자 친구와 어디를 갔는데~부터 시작해서 뭘 주문한 이야기와 그 가게 직원의 심리까지 한참을 떠들었는데 나는 관심도 없는 이야기를 항상 다 듣고 있기가 힘들었다. 점점 대꾸를 안 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계속 따발총처럼 무의미한 말을 내 귀에 쑤셔 넣길래 결국 나는 일하면서 듣지도 않던 이어폰을 사 끼우게 되었다.
그는 수시로 침을 끓이는 듯한 '스~읍'소리를 자주 냈다. 습관이나 틱 비슷한 것이었으리라. 조용한 빈 사무실에 그의 침 당기는 소리가 점점 거슬렸다. 가뜩이나 말이 많은데 말 시작부터 그 소리를 내고 중간중간 계속 냈다. 아마 그 소리를 듣기 싫어서인지 그의 말을 더 듣기가 싫었을지도 모르겠다. 이후로 더 심해졌는데 혼자 가만히 있다가도 갑자기 엄청 크게 습! 스읍~~! 소리를 내는데 더 참기가 어려웠다. 한 달 정도 참다 참다 너 그 소리 자주 내는데 알고 있니? 덜 내는 게 좋겠다며 좋게 타일렀는데 대뜸 그는 '팀장님도 말할 때 쩝쩝 소리 내던데요?'라고 바로 받아쳤다. 나는 부끄러워져서 미안하다고 하고 다시는 그 소리를 내지 않았으나 그는 여전히 습습 소리를 냈다.
이후 일주일을 더 참다가 다시 이야기했다. 내가 쩝쩝 소리를 내느냐고. 한 번도 못 들었단다. 근데 넌 왜 고치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는 이제 자기 여자 친구도 뭐라고 하니 고치겠다고 했다. 그는 내 말은 안 듣더니 여자 친구가 말하니 고친다는 뉘앙스였다.
여름에 고문, 사장, 나, 그와 함께 냉면집으로 갔다. 그는 자기가 사 먹을 땐 다이어트를 한다며 안먹거나 가장 저렴한 음식을 시키는데 얻어먹을 때는 항상 곱빼기를 시킨다. 이 이야기에 관해서는 따로 서술하겠다. 나도 소위 '면치기'라는 후루룩 땡기며 먹는 기술을 먹방을 통해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사장과 같은 어른들의 세상에서 음식 먹을 때 소리를 내는건 금기시 되어있는 일이다. 그는 눈치없이 곱빼기를 시키고 정말 미친듯이 젓가락을 오르내리며 후루루룩 소리를 강렬하게 내며 주변에 육수를 튀며 먹었다. 나는 그렇게 상기된 사장과 고문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사장님은 애둘러 말하며 '맛있나 보네'로 일축했다. 그 날 사무실로 돌아가며 나는 면치기 좋아하는건 알겠는데 어른들과 먹을땐 조용히 먹는 거라고 슬쩍 일러줬다.
하루는 아래층에서 사과를 먹는다길래 내려가는 김에 오면서 하나 주면 고맙겠다 이야기했더니 내것을 가져왔는데 한눈에 봐도 크고 까만 구멍이 난 썩은 사과였다. 그걸 내 책상에 뒀는데, 항상 모르는 척 하면서 누군가를 골탕먹일 궁리를 하는 걸 몇번 봤기도했고 당시 내가 일에 관련해서 주의를 준 직후여서 이 친구가 날 엿먹이려는구나 라는걸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사과는 썩었으니 다시 가져다 두라고 말했다.
당시 주의를 준게 사진 보정일이었는데 내가 하면 2틀이 걸리는 일을 5일을 달라는 것이다. 여러 일들을 통해 나는 직원을 믿고 채근하지 않기로 마음먹었기도 하고, 일이란 언제나 생각보다 더 걸리기 때문에 그럼 넉넉하게 시간을 줄터이니 꼭 그 안에 잘 해오라 이야기하고 5일간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다. 말도 안걸었다. 아래층에서 인력이 필요하면 일 하라고 하고 내가 내려갈 정도였으니까. 월요일에 시켰으니까 목요일에야 말을 걸었다. 많이 했느냐고. 그는 대꾸를 안하길래 다시 물어봤다. 그랬더니 짜증난다는 듯 '하~'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이가 없었다. 그는 월요일에 휴가였고 그가 금요일에 보정을 완료하면 월요일 부터 내가 업로드를 할 예정이었다. 얼마나 했는지 보고하라고 대답없는 그에게 닥달을 하니 그제서야 종이에 끄적이면서 보여준게 절반을 했더라. 말이 안나와서 야근을 하든 뭘하든 금요일 가기 전까진 완성하라고 말을 했으나 그는 여자친구와 약속이 있다며 퇴근을 했다. 그리고 금요일에도 한마디도 안하더니 퇴근 5분전에 덜했다고 말을 하길래 나는 회사에서 일을 그런 식으로 하지 말라며 주의를 줬다.
속이 답답했다. 일 속도가 안나오면 적어도 수요일 정도에는 조정을 요청하던 빠르게 하는 방법을 물어보던가 찾아보든가 해야지, 언제까지 그 방법으로 하나하나 누끼를 딸 것이며, 약속한 시간에 일 덜끝내고 휴가를 가겠다는건 무슨 심사냐고 말이다. 그는 나의 질문에 답답할 정도로 죄송하다는 말도 없이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 상황이 짜증나 보였다. 결국 그냥 좋게 말하고 휴가 다녀와서 마무리하라 당부를 했다. 사실 살짝살짝 다니며 그의 모니터를 보았을땐 여행 갈 곳의 블로그나 뒤적이면 카톡질을 하는 것을 자주 보긴했다. 다 안다. 그래도 그 시간을 섞어서 5일을 말했을 거라는 나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이렇듯 그는 눈치껏, 요령껏, 상식적 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나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그런 단순하고도 이걸 뭐라 해야하나 라고 고민 할 일들이 쌓여 지쳐가고 있을 즈음. 그와 사장, 공장 사장님 두 분과 나 총 5명이 홍콩으로 전시회를 참여하는 긴 출장을 가게 된다. 여기서 모든 사람들이 경악을 하는 일을 겪게 되고 사장은 그를 내치라고 하게되는 사건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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