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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의 고뇌 - 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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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의 고뇌 - 2 [director's c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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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출장 편 2
나는 친한 공장 사장님과 호텔방을 쓰고 싶었으나, 두 분 다 밤잠이 예민하다 했다. 그리고 그는 이가는 소리를 심하게 내면서 잔다고 미리 이야기했기 때문에 내가 같은 방을 쓰기로 했다. 그와 같은 호텔방을 들어갈 때부터 찜찜했다. 호텔 객실에는 애매하게 일회용 면도기 하나, 일회용 칫솔 두 개 가 있었다.
나는 입실하면서 슬쩍 둘러보고 이따가 들어오면서 하나씩 더 챙겨달라고 해야겠다 생각했다.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그러나 그는 하나만 남으면 그것을 쟁취하고야 마는, 이는 마치 식당에서 고기 한 점이 남으면 참지 못하고 이내 누군가에게 빼앗길 새라 젓가락을 먼저 뻗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보통 이런 상황에는 하나를 더 구하거나 반으로 나누거나, 합의, 양보 끝에 나오는 결과를 서로 도출하지만 그는 달랐다.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다 같이 국자로 떠먹는 음식에 젓가락을 뻗어 야채는 젓가락으로 쳐서 밀어버리고 고기만 건져먹는 모습을 보여주며 나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했으나, 서른 넘어도 아직 남은 식탐이나 편식으로 뭐라고 할 수는 없었는데 이 모든 게 같은 맥락이었다.
그간 같이 먹었던 식사에서 느낀 불편함이지만, 이 작고 작은 면도기 또한 그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는 먼저 씻겠다며 들어가 하나뿐인 일회용 면도기를 가장먼저 쓰고 쓰레기도 세숫대야에 그대로 놔두고 나온다. 웃긴건 양치는 안했는지 칫솔은 까져있지도 않았다. 그 꼴을 본 나는 나는 하우스키퍼를 찾아 생수 몇 개 더랑 칫솔, 면도기를 하나씩 더 가져왔다. 그는 이런 상황과 나의 심리에 대해 전혀 인지를 못하는 듯 보였다. 출장 내내 생수 하나 남으면 슬쩍 챙기는 모습들이 나를 거슬리게 했으나 모르는 척했다. 나중엔 하우스키퍼가 물과 비품을 넣어두는 곳을 알려줬는데 언젠가 보니 칫솔이나 면도기를 한 뭉텡이 가져와 귀국짐에 넣는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낮은 탄식을 내쉬었다.
전시는 완전히 꽝이었다. 당시 홍콩 시위 관련해 이슈가 있었기 때문에 애초에 방문객 자체가 극히 적었다. 나는 공장 바이어나 영어로 대화를 할 일이 생길 때만 응대를 하고 보통은 다른 브랜드의 제품들을 보거나 공장관을 탐험하거나 공장 사장들과 신박한 부속들을 찾으러 전시 구석구석을 누볐다. 그게 디자이너이자 핸들러의 주요한 할 일이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나는 우연히 '유리'를 만났다. 그는 브랜드관에서 전시 중이었다.
홍콩 출장 2편 - '유리'
홍콩 전시 전, 19년 6월에 중국 선전으로 출장을 갔었는데 거기서 만난 ‘유리’라는 공장장이다. 광저우의 안경성 (안경이 엄청나게 많은 건물)에 갔다가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제품을 만났고 그거 만든 사람 누구냐니 그 가게에서 유리를 소개해 준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무턱대고 유리를 찾아갔다. 그는 우리를 참 좋아했고 공손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 출장 하루 종일 우리를 에스코트했으며, 진귀한 양고기와 비싼 중국 술인 수정방을 사주었다. 우설, 오리고기, 양고기, 삼겹살 등등 한국 스타일과는 다른 중국 남방의 정취가 물씬 나는 음식들로 우리를 대접했다. 그는 안경 산업을 사랑하는 것 같았다. 무슨 안경디자인으로 상도 받았다 한다. 나는 이 정도 열정에 진취적인 중국인이라면 뭔가 도와주기도, 같이 일을 만들어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한껏 배부르게 취해 그리고 비 오는 정취에 취해 같이 열심히 하자며 마치 한중 대결이라도 되는 듯 술을 퍼부어 마셨다. 그리고 다음날 유리는 숙취 때문에 아무 일도 못했다며, 한국인들 술 잘 마신다는 이야기들도 나누며 즐거운 관계로 남았다. 그랬던 그가 이번 홍콩 전시에 와 있다니, 사장님께 같이 만나자는 말씀을 드렸다. 보통의 공장장과는 다르게 유리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다. 우리 사장은 중국어를 할 줄 아는 그 친구를 대동해서 유리의 부스로 인사를 간다고 했다.
보통의 우리와 같은 유통사와 공장이 만난다면, 제품도 봐야 하고 단가, moq , 품질 등등 비교해보고 초반에 작은 거래를 통해 장기적 거래까지 가는 관계가 된다. 그들이 유리의 부스로 떠난 동안 나와 한국 공장 사장님이 우리 부스를 지키며 전시장을 다니면서 봤던 좋은 부품, 때깔 좋은 제품을 만들던 공장 등등 이야기를 하며 즐겁게 있었다.
유통회사 사장과 공장 사장이 만나면 기본 삼십 분에서 한 시간은 수다 삼매경일 텐데 어쩐 일인지 십 분도 되지 않아 사장이 씩씩대며 돌아왔다. 유리가 사장에게 우리는 거래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공장이 유통회사랑 거래를 안 할 리가 없지 않은가?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사장은 상대를 깔아놓고 대화를 시작하는 화법을 가졌는데 그걸 눈치 없는 그가 그대로 전달한 모양이었다. 사장은 성격이 급하기도 하고 똑같은 말을 자주 하는데 알아서 중간에서 말을 잘 전해야 한다. 아마 이런저런 이야기를 기분 나쁘게 전했나 보다 라고 생각했는데, 사장님께 '유리에게 뭐라고 하셨나요?'라고 여쭤보니 사장은 단순히 ‘안경 품질 좋네 얼마야?’만 물어봤는데 이 사달이 났다 했다. 그럴 리가 없었다.
나는 유리를 찾아가서 그의 짧은 영어로 자초지종을 들었는데 사장이 아주 경우 없이 말을 했다는 것이다. 사장이 말한 것과 그의 말이 맞지 않았다. 유리는 본인 브랜드 제품을 만드는 공장이었고 우리에게 제작해서 판매 가능한 제품군은 따로 있었는데, 사장은 본인 브랜드 제품만 뒤적거리며 팔라고 했다는 것이다. 유리는 '이건 안되고 저쪽 제품들은 가능하다'며 예의 바르게 이야기를 했으나, 우리의 신입 친구는 사장에게 ‘안된대요’ ‘안 판다는데요?’라고 일축 이 사단을 만든 모양이었다. 사장도 이것저것 가격만 물어봤는데 다 안된다고 하니 화가 났고 유리도 저쪽에서 보라는데 자꾸 여기 서서 물어봐대니 짜증이 나 보였다. 내가 아무리 달래도 그는 우리와는 거래하지 않겠다 했다. 그렇게 좋았던 유리와의 관계는 끝이 났다.
좋은 관계가 될 수 있었는데, 허탈하게 한국관에 위치한 우리 쪽 부스로 돌아오니 사장이 노발대발하고 있었다. 그에게 밥 처먹으러 왔냐고 소리를 치며 말이다. 그는 입가에 음식 먹던 티를 내며 어색하게 서 있었다. 나는 장사도 안되는데 자꾸 일어나는 자잘한 사건들에 완전히 지쳐있었다. 그냥 웃으면서 지나가면 자연스레 끝나는 전시회인데 왜 자꾸 사장을 열 받게 만드는 일들이 생기느냔 말이다. 출장의 목적은 단 하나, 사장을 만족시키면 된다. 사장도 같은 말을 몇 번씩 하는 피곤한 스타일이긴 하지만 단순해서 열심히 하는 모습만 보여줘도 결과가 어떻든 신뢰를 딸 수 있는 유형의 사람이라 그녀와 일하는 것이 어떨 땐 어렵지만 좋은 인상만 심어두면 수월하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식탐이 이 단순한 공식조차 실패하게 만들었다.
홍콩 출장 2편 - '버디'
우리는 홍콩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빅바이어가 있었다. 홍콩 바이어 '버디'라는 키가 크고 수완이 좋고 아주 젠틀한 사내였다. 우리 제품을 꽤 많은 양 수입해주던 빅 바이어였는데 우리 쪽 수출 관련된 사람이 갑자기 퇴사했기도 하고 버디네 회사의 수입 담당자도 그만두면서 그와의 연락이 전혀 안 된 지 일 년이 넘게 지났었다. 그랬던 빅바이어 '버디'가 한국관에 있는 우리를 다시 만나려고 온 것이다. 그는 사장을 '마마'라고 부른다. 부스 저쪽에서 사장을 알아본 나이 든 버디가 '마마!'라고 외치며 직원들을 끌고 우리 부스로 오는데 사장이 얼마나 고마웠겠는가. 한국관 사람들도 그의 풍채와 직원들을 보며 우리 회사가 이번에 크게 터뜨리려나보다 하고 날리는 파리를 쫓으며 내심 부럽게 바라보고 있었으리라. 당시, 나도 유리를 만나러 가서 없었고 중국 통역관도 없었지만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우리 직원이 사장과 부스를 지키고 있었다.
때마침 그는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는데, 사장의 증언에 의하면 버디가 왔는데도 힐끗 쳐다보더니 밥만 꾸역꾸역 먹고 있었다 했다. 사장은 웃으며 '누구 씨? 준비해야지~'라고 한국말로 했는데 그는 '거의 다 먹었어요'라고 하고 허겁지겁 남은 도시락을 먹었고 이 모습을 보던 버디는 '그럼 식사 다 해, 다음에 올게'라고 하고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한다. 사장은 버디를 붙잡고 곧 제품을 보여주겠다며 손짓 발짓을 했지만 영어가 되는가 중국어가 되겠는가? 버디는 웃으며 떠났다. 열 받은 사장은 제품 팔러 왔지 처먹으러 왔냐며 그에게 독설을 뱉고 있었고 다른 한국관 부스 사람들도 구경이 났는지 힐끗거리고 있었다. 그때에 맞춰 내가 도착한 것이다. 그렇게 마지막 판매 기회도 날아간 채 우리는 그 출장 판매 0원으로 귀국길 짐을 싸게 된다. 사실 정말 문 닫기 전에 버디가 다시 들려서 내가 응대를 했으나 시간이 부족해 대충 눈에 띄는 제품 몇 개만 모델번호를 적어주고 서로 명함 교환만 했다.
홍콩 다섯 명의 호텔값, 비행기 값, 부스비는 모두 날려버린 채 우리는 패잔병처럼 나왔다. 뭐, 나와 공장 사장님은 괜찮은 중국, 홍콩의 부속 공장을 알아내서 그렇게 성과 없는 여정은 아니라 위안하고 있었다.
우리는 부스를 정리하고 공항으로 가 새벽 비행기를 타기 위해 호텔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 마지막 호텔 로비에서 사장은 또다시 가슴을 쿵쿵 내리쳤고, 귀국하는 공항에서는 다른 공장 사장님들이 참지 못하고 한 마디씩 하는 사건이 생긴다.
홍콩 출장 2편 - '러브 도어 번역 사건'
우리 회사가 5~6년 전에 거래하던 큰 안경케이스 회사 ‘love door’에서 일하던 사람이 자기 사업을 하겠다며 저가 온주산 안경테를 팔러 보부상처럼 다녔다. 사장은 첫날 홍콩의 호텔 로비에서 그를 우연히 만나 반갑게 손짓 발짓을 하며 인사를 했고 그는 서툰 영어로 자기 물건 좀 꼭 보러 와 달라했다. 그는 절름발이였는데 같은 회사에서 만난 여직원과 결혼, 이후 목숨 걸고 자기 사업을 키워보기 위해 이 업계로 뛰어든 것이다. 아내와 그는 불편한 다리로 캐리어를 끌고 다녔고, 아내는 영어를 조금 할 줄 알아 나와 대화를 했다. 전시기간 중 나와 눈치 빠른 공장 사장님이 선발대로 먼저 그의 부스로 찾아가 제품들을 훑어보았으나 우리가 거래할만한 고급 제품은 아니었다. 사장님께 익히 아시는 저렴한 온주 테입니다.라고 말씀드리고 거래할 것 까진 없다고 보고를 드렸다. 사장은 알겠다 했다. 그렇게 전시 기간이 지나고...
마지막 날 공항 리무진을 기다리기 위해 호텔 로비에 사장님과 우리 직원이 앉아있는데 그 절름발이 중국인이 나타났다. 나는 그때 퇴실 절차를 밟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호텔에서 자꾸 추가금을 내라는 거다. 뭔 소린가 하니 스낵인지 뭔지 미니바에서 가져갔다고 보증금을 까겠다는 거다. 우린 먹지도 않았고 내가 나오면서 다시 한번 체크를 했는데 자꾸 우겨서 꽤나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삼천 원짜리 프링글스도 미니바에서는 만 원 아닌가? 얘들이 비싼 호텔에서 이런 걸로 장난질을 하나 생각하면서 리무진은 타야 하니 돈은 주지만 이런 짓을 하는 것은 너희 홍콩인을 욕보이는 일이라고 한마디 해주고 과자값을 제외한 나머지 디파짓을 받고 나왔다. 우리 직원이 있던 자리로 가니 사장만 덩그러니 혼자 남아 또 가슴을 쿵쿵 치고 있고 절름발이 중국인은 뻘쭘하게 서 있었다.
상황은 이랬다. 중국인, 사장, 직원이 로비에 있었는데 어색하기도 하고 거래할 일도 없는데 이야기는 해야 하니 사장이 운을 띄웠단다. '너희 테는 싸구려라 고급 테를 취급하는 우리는 거래를 할 수는 없다.' 정도로 말이다. 아는 단어라곤 그런 거밖에 없는, 부드럽게 말할 줄 모르는 무식한 사장 머리에서 나오는 문장이란 그런 거다. 하지만 사장이 언제나 말하는게 있다. 개떡같이 말하면 찰떡같이 알아들으라고. 아니 그런거 아니어도 그녀가 말을 그렇게 하면 응당 번역은 '아쉽지만 저희가 취급하는 브랜드는 조금 더 비싸게 팔고 있습니다. 그래도 약간 저렴한 라인도 기획하고 있으니 선생님 명함 좀 받아도 될까요?'로 말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나였으면 당연히 그렇게 말을 했을 거다. 그러나 그의 딱딱한 사고는 그런 센스를 발휘할 수 없었다.
'통역 못하겠는데요' 하고 호텔 로비 깊숙한 곳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는 것이다. 사장은 살면서 그런 직원은 본 적이 없었단다. 그에게 주는 월급, 퇴직금, 사대보험, 비행기 값, 호텔비, 식대 모든 게 아깝다며 나에게 빨리 꼴도 보기 싫으니 저 놈을 퇴사 시키라 했다. 병신 같은 나는 그가 청년 채움 공제를 하고 있으니 너그러이 2년은 데리고 있어야 젊은이에게 도움이 될 거라며, 제가 잘 타이르겠다며 말하고 그를 두둔했다. 그러고는 호텔 영수증을 드렸는데 사장은 프링글스가 찍혀있는 걸 보면서 이게 뭐냐 했고 난 그냥 누군가 먹었나 봅니다 하고 말았다. 사장도 이런 걸로 쪼잔하게 굴기 싫으니 쯧 하고 말았던 거 같다. 아무튼 이 '러브 도어 번역 사건'은 사장이 두고두고 회자하고 있다.
어느 날인가 출장이 모두 끝난 나중에 그와 나 단둘이 조용히 사무실에서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그러면 어떻게 말을 하냐'며 딱 잘라 말하길래 나의 생각을 차근차근 설명했으나 그냥 자기가 정의롭게 행동했다고 자위하고 있었다. ‘불쌍한 중국인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려 했지만 나는 정의롭게 안했다!’ 쯤으로 말이다. 나는 아 얘가 들을 생각이 없구나 라고 생각하고 잔소리해봐야 알아듣지를 못하니 그냥 말을 하지 말자고 다짐을 했다. 그리고 그와의 대화는 점점 적어졌다.
해당 에피소드는 여기 그녀 편에 간략하게 나와있다.
홍콩 출장 때 일이다. 그녀는 안면이 있던 중국인을 호텔에서 우연히 만났다. 중국인은 본인이 이제 프레임 사업을 했으니 좀 팔아달라는 식이었다. 그녀는 별로 할 생각이 없기도 하고, 나중에 저가로 팔 때 써먹을 요량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갑질을 하고 싶었는지.. 기선제압 후 명함 정도만 받아 둘 생각이었겠다. 중국어를 하는 직원에게 시켜서 '너희 테는 싸구려 같으니 거래를 못하겠다' 고 통역하라 했다. 재미있는 건 그 직원은 그런 말은 못 하겠다며 호텔로 쏙 들어가 버렸다는데,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야기한다. 그 일을 사례로 나를 포함, 다른 직원들에게 자꾸 이상한 트집을 잡는데 그 홍콩 출장 이후로 뭔가 그녀의 아집이랄까 사람에 대한 비정상적인 태도가 점점 심해져서 최근 나도 더는 참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 직원도 융통성 없었지만, 아직까지 말하는 그녀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평생 쌓여온 갑질 마인드에 맞춰주는 사람들 때문에 그녀는 아직 착각 속에 산다. (그 중국어 친구는 결국 기업 평점 사이트에 별 1개를 던지고 퇴사당한다.)
여하튼 다시 홍콩으로 돌아가 공항 리무진을 타고 공항으로 갔다. 이미 사장은 그에게 질릴 대로 질려있었다. 비행기는 서너 시간은 있어야 출발이었다. 사장은 아무리 꼴 보기 싫어도 밥은 사줘야겠지.. 라며 혼잣말을 하며 우리들에게 뭐가 먹고 싶은지 물어보다가 그냥 버거킹이나 가자 했다. 왜냐면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앉아있을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이해했다. 버거킹은 비행기 티켓 발권 장소와 거리가 꽤 있었고, 항공사마다 발권시간이 달랐기에 누군가 가서 발권을 시작하는지 안 하는지 확인을 해야 했기에 여러 사람들의 캐리어를 카트에 싣고 밀면서 '조사원이 보러 가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도 나의 착각이었다.
버거킹에 앉아서 주문을 하는데 사장은 이제 나에게 모든 주문을 시켰다. 귓속말로 '저놈이 시키면 또 뭘 시킬지 모른다'며. 나는 만만한 가격대의 세트로 통일해서 시켰고 자리를 잡았다. 음식이 나왔고 다들 버거를 들고 먹기 시작하는데 그는 자신의 감자를 이미 다 먹고 진주 공장 사장님 감자를 살살 집어먹고 있었다. 진주 사장님은 나이가 조금 있었는데 '허허 이 친구가 배고팠나 보네 내 것도 다 먹어요!' 하면서 감자를 다 줬다. 그는 급하게 양손으로 감자를 집어먹었고 사장은 너무 꼴 보기 싫다는 표정으로 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버렸다. 웃긴 건 케첩은 한데 모아 뿌렸는데 먼저 케첩을 듬뿍 찍어 감자를 먹으니 사람들이 좀 먹으려 할 때는 케첩이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감자를 많이 남겼는데 딱히 더 먹을 생각이 없기도 하고 그의 반응이 궁금해서 '케첩 좀 더 가져오겠습니다' 했고 눈치 빠른 재영 사장님은 아니다 아니다~ 나도 다 먹었다 하며 나를 앉혔다. 그는 그러든 말든 끝까지 먹고 있었다.
슬슬 발권을 할 때가 된 거 같은데.. 보러 저기까지 다녀와야 한다며 우리 사장이 운을 띄웠고 다들 잠시 조용히 있었으나 그는 못 들은 건지 덜 먹기도 했지만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재영 사장님은 마저 드시라며 본인이 일어났고, 다 먹은 나는 아니라며 결국 일어났다. 사장님은 '네가 빨리 다 먹고 갔다 와! 굳이 남에 감자들 다 먹어야겠냐?' 하면서 그를 타박을 했으나 그는 꿋꿋하게 계속 먹기만 했다. 나는 저 멀리 아시아나 발권소까지 걸어가면서 슬슬 약이 올랐다. 후임이라도 데려왔는데 허드렛일은 내가 다 하고 있지 않은가?
발권 시간이 되었고 보안대를 통과하고 출국 심사를 하면서 사장은 '그냥 비행기 앞에서 들 봅시다' 했다. 일전에 그가 안 나와서 한참 서 있던 기억이 났으리라. 나는 재영 사장, 그와 면세점을 구경하는데 그가 여자 친구한테 꿀타래 과자를 사줘야 하는데 돈이 좀 부족하다 했다. 나는 속으로 '어쩌라고?' 하면서 그럼 사지 말든가 좀 더 싼 걸 사랬나 그랬고, 맘씨 좋은 재영 사장님은 그의 여자 친구 선물을 사줬다. 상균 씨도 사준다는 걸 난 죄송해서 됐다고 했다. 이럭저럭 면세점 구경도 하고 나는 면세점보다 인터넷이 싸다고 생각하는 주의라 뭘 안 사는데 담배는 한 보루씩 꼭 구매한다. 중국 차랑 담배 사서 비행기 게이트 앞으로 갔더니 사장님께서 진주 공장 사장님과 앉아있었다.
여기서 나도 상상치 못한 장면이 나온다. 피곤한 다섯이 마주 보고 앉아서 사장은 폰을 보고 있었고 다른 분들은 눈을 반쯤 감고 있었는데, 그가 가방에서 프링글스를 꺼내더니 혼자 입에 넣고 소리를 안 내려고 조용히 먹었다. 우리 넷은 약간 어이가 없어져서 그를 봤으나 그는 꿋꿋하게 과자만 보며 계속 먹고 있었다. 보다 못한 사장이 '야이 돼지새끼야 어른들 있는데 하나 드세요 라고 한마디도 못하냐? 그러면 우리가 먹겠다고 달라고 할 줄 알아서 말 못 하는 거야?' 라며 속 시원하게 나의 마음을 대변해줬다. 참다못한 진주 사장님도 '그렇게 맛있어요?' 라 했으나 가관인 건 그는 듣는 둥 마는 둥 프링글스만 묵묵히. 끝까지. 다 먹었다. 그의 지독한 식탐과 타인에 대한 배려심 없음에 나는 완전히 정이 떨어졌다.
아마 사장은 그 과자가 호텔 디파짓에서 까진 과자라고 까지는 생각을 못했으리라.. 그리고 새벽 우리는 귀국 비행기를 탔고, 사장은 인천공항에서 본인을 마중 나온 남편의 차를 타고 가버렸고 나는 그와 같은 방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뭐 타냐고 알아낸 다음 그럼 난 다른 데로 가야 하니 잘 가라며 흩어졌다. 새벽 공항의 찬 가을 바람과 담배 연기를 폐속으로 쑤셔넣으며, 그렇게 그냥 다신 안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출장은 끝이났다.
- 홍콩 출장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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