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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의 고뇌 - 2

beos 2020. 12. 21.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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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의 고뇌 - 1 [director's c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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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출장 사건 1화
매년 11월에는 홍콩에서 안경 전시가 열린다. 나는 회사생활 4년 중 3번 참가했는데, 한 번은 사원으로 내 윗 상사들과, 한 번은 혼자, 마지막은 그와 사장님, 공장 사장 2분을 대동했었다. 당시 직원이 새로 온 지 7개월 차 정도 되었으나 그간 봐 오니 뭘 시키기가 겁나 역할 분담이랄 것도 없이 혼자 준비를 해야 했다. 
 

홍콩의 밤거리 (2019)

 
 
간이 품목에 대한 세관 통과 및 모든 사람들의 비행기 티켓, 호텔 예약, 동선 및 전시 준비에 필요한 제품 준비. 그리고 외부 업체에게 해외의 전시장을 꾸미기 위한 부스 도면과 포스터, 각종 로고 전달 등등 전시에 가기 전까지 많은 할 일들이 있었다. 그래도 그가 완전히 할 일이 없던 건 아니었으니 그것은 바로 '중국어'를 할 줄 안다는 것. 나는 사장에게 그의 몸값을 올리는 좋은 핑계로 우리가 중국이나 홍콩으로 출장을 자주 가니 그도 같이 가면 더 유리하지 않겠냐고 제안한 적이 있었다. 사실 우리 회사는 도메스틱 브랜드기 때문에 해외 전시에서 큰 성과를 이룬 적은 없었다. 그래서 사장은 이번엔 굳이 비싼 돈 내고 가서 딱히 밥값도 못하는 신참의 비행기 값에 호텔비까지 내면서 출전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신입때 중국이나 홍콩으로 가는 출장길이 설레었고 처음 가보는 안경 쇼들도 커다란 충격으로 와 닿았기도 하기에 새로 들어온 직원이 해외 전시 경험을 하면 참 좋아하지 않을까 란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또 다음 해에는 같이 새로운 브랜드를 런칭해서 쇼에 나가겠다는 포부도 있었다. 고로 그를 이번 출장에서는 전시 보조 및 통역, 판매 관련으로 우리와 동행하자고 사장을 설득했다. 아마 이 친구의 학창시절을 보낸 중국에서 거래를 따내거나 큰 성과가 없더라도 자신 있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그를 탐탁잖게 보던 사장의 마음을 조금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란 생각이 있었기에 그 친구에게 이번 출장에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라고 신신당부 했다. 이윽고 2019년 11월 우리는 홍콩으로 날아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간다.
 
출국 공항에 세관을 통과해 전시에 가는 안경들을 비행기에 먼저 싣고 나니 보안대를 통과하고 다들 한두 시간 여유가 생겼다. 사장님은 눈치껏 편하게들 돌아다니라며 라운지로 숨으셨고 나는 딱히 홍콩으로 나가는 면세점은 관심이 없었기에 들고 온 책이나 읽을 요량으로 편해 보이는 소파를 찾아다녔다. 탑승 시간이 되자 다들 티켓으로 본인 자리가 어디네 저기네 이야기 꽃을 피우며 으레 나이가 많은 사장님께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 '사장님 어디 앉으십니까', '가방 주세요' '제 자리 앉으시겠습니까' 등등 매너를 챙기는 사이 그는 어디서 사 온 먹거리를 들고 먼저 앞장서서 혼자 떨어진 편한 자리에 털썩 앉아버렸다. 누군들 비행기에서 심부름이나 할 사장님 옆에 앉고 싶겠는가? 둘둘 붙어있고 하나 떨어진 자리에서 그는 혼자 편하게 떨어져 앉아버렸다. 눈치 빠른 재영 공장 사장님만이 알아서 사장님 옆으로 가서 앉고 나는 다른 진주 공장 사장님과 앉아서 뭔가 찜찜한 기분을 가진 채 홍콩으로 날아갔다. 기내에서 주는 종이에 그를 제외한 어른들의 여권번호와 숙소를 기입하고 체크리스트를 한데 모아 하는 건 나의 몫이었고 막내 사원인 그는 뭘 하는지 뒤에서 기내 직원에게 이것저것 먹거리를 시킬 때만 간간히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와서 그를 기다리는 사장과 공장 사장들

 
 
홍콩 공항에 도착하고 그는 마치 놀러 온 듯 여기저기 사진기로 찍어댔다. 다들 경험이 있는지라 별 말없이 빠르게 자동 여권 게이트를 통해 출국 심사를 마치고 나왔다. 나는 먼저 나와서 우리 짐들도 찾고 어떻게 호텔로 가는지 다시 체크하는 둥 시간이 꽤 지났는데 그는 나오지 않았다. 어른 네 명이 이십 분 넘게 짐 챙기는 곳에서 어슬렁 거렸는데 그는 한참을 나오지 않은 건지 다른 데로 가버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공장 사장님 한분은 보안대 출구 쪽도 가보고 딴 분은 저기 술 파는데도 가보는 둥 어수선하고 답답한 시간이 흘렀다. 사장은 순조로워야 하는 공항에서 사람이 하나 안 나오자 슬슬 짜증이 나셨는지,
 
'신 과장, 보안대 가서 알아보고 와!'
 
검색대는 반대로 들어가지도 못하기에 어슬렁거리며 말도 안 통하는 중국 공안에게 사람이 안 나온다는 둥 문제 있는 거 아니냐며 영어로 말하는데 그는 차가운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한참 속이 타고 있는데 그 친구가 무슨 일 있냐는 듯 캐리어를 끌고 가방을 메고 팔자걸음으로 여유 있게 어디선가 나왔다. 사장님은 그만 보면 속이 터지는지 그냥 손을 휘휘 저으며 '가자 가자'만 연발하시고 눈치 빠른 재영 사장님은 '왜 이리 늦게 나왔어요?'라고 물어봤다. 그는 '에? 뭐가요?' 라며 당최 무엇이 잘못된 지 모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에 나이가 더 많으신 진주 사장님께서는 '어른들 다 기다리는데 도대체 뭐하다가 지금 나왔노!'라고 살짝 언성을 높이자, '가방 정리했는데요'라고 말해, 다들 할 말을 잃고 숙소로 향하는 택시를 타러 나왔다. 이상해진 분위기를 풀기 위해 재영 사장님은 빈 웃음으로 웃으며 처음이라 몰랐나 보다~ 등 분위기를 풀려 노력하며 그렇게 지나갔다. 나중에 숙소에서 내가 다시 한번 물어봐도 그는 뭐가 잘못되었냐며 되래 반문 하다가 한참 설명하니 그저 ‘아~’ 라며 곤란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나는 항상 그가 대답하는 것을 듣고 있자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 내가 속이 좁은 건가 라고 생각을 해왔다. 뭘 요청하면 '예'가 아닌  '에? 뭐요?'를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 혹은 '에? 그거 보냈는데?' 등으로 뒤에 요 자를 생략하는 말투로 날 슬슬 열 받게 만드는데 재미를 들린 듯했다. 한 번은 말 끝까지 똑바로 하라고 하자 무슨 군대냐는 표정을 지었던 그 표정. 그리고 '저 군대에서 개 에이스였어요' 라며 자랑스레 말하던 그의 모습까지 오버랩되며. 그럴 리 없어 미친놈아 라고 말하지 못한 과거의 나를 자책하기 일쑤였다.

대번 앞자리에 앉는 그

 
우리는 공항을 빠져나와 전시장에서 도보 20분 거리에 있는 숙소를 향해 준비시킨 미니 벤을 타고 갔다. 보통 돈을 내거나 일을 해결해야 하는 내가 기사의 옆 자리에 앉거나 사장님께서 앉는다면 그렇게 해야 하는데 그는 홍콩과 중국에서 자가용을 이용하면 이상하게 말도 없이 먼저 앞자리에 앉아버렸다. 앞자리가 편해서 냅다 앉는건지, 본인이 막내라 앞자리에서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건지, 이게 말을 하기도 전에 먼저 앉아버리기 때문에 내리라고 하기도 뭐하고 참 이상할 때가 많았다. 막상 어디로 가달라는 주소나 지도들은 내가 다 준비해놔서 뒤에서 앞으로 전달하면 그가 한번 더 얘기하는 모양이 되었고, 돈도 내가 뒤에서 전달해서 앞에서 내는 귀찮은 모양새가 되었다. 이렇듯 말로 꺼내자니 쪼잔한 거 같고 그냥 기본 세팅이 상식 밖으로 되어 있는지라 다들 그냥 속만 상하고 있었다.
 
 

캐리어 끌고 전시회장 가는 중

 
 
사장과의 출장은 언제나 힘들다. 열심히 일하고 전시가 끝난 저녁 정도는 홍콩의 정취를 즐겨야 하지 않나란 생각을 하는 나와는 다르게, 사장은 출장에서의 여흥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전시 시간이 지나면 간단하게 저녁 먹고 숙소에 들아가라고 하신다. 게다가 사장은 안경 가방이 크고 무거워도 택시를 태워주지 않아 삼십 분 정도는 캐리어를 끌고 숙소에서 전시장까지 오고 가야 하기 때문에 항상 지치는 일정이었다.

그래도 수련회에 온 학생들처럼 몰래 옆방에 있는 공장 사장을 불러 삼천원 짜리 싸구려 발마사지도 받고 양꼬치에 고량주 한병 걸치고 숙소로 몰래 들어와 한국에서 챙겨 온 컵라면에 소주 한잔씩 하며 안경 인생 무용담으로 하루를 마치면 그게 그렇게 행복했다. 두런두런 회사 이야기도 하고 지나간 사람들 이야기, 그 날 모아온 샘플이나 팸플랫도 침대에 늘어놓으면서 말이다.

홍콩의 야식 (2019)

이렇든 나도 나름 낭만이랄까 여유를 즐기는 편이라 생각했는데 그 친구는 100프로 식도락 여행으로 생각하고 홍콩에 온 듯했다. 우리는 중국어를 읽을 줄 아는 그에게 매일 가던 식당은 지겨우니 적당한 가격대에, 다 같이 먹을 만한 맛있는 홍콩 음식점을 검색해서 우리를 데려가라 미션을 내렸다. 
 
글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상식으로, 사장은 거의 70이 다 되어가는 고령 암 환자다. 폐가 한쪽 없기 때문에 조금만 걸어도 숨쉬기가 곤란하다. 그리고 홍콩의 11월은 가장 좋은 계절이긴 하지만 한국인이 느끼기엔 약간 덥고 습한 편이다.

그는 전시회장에 있는 동안 열심히 홍콩 맛집 블로그를 검색했고 뭔진 모르지만 꼭 가야 하는 집을 찾았다 한다. 과거 우리에게 납품을 했던 파이브 스타라는 공장 사장님과 그 직원을 전시회에서 만나 사장이 가볍게 밥 사주겠다며 함께 갔기에 나를 포함, 총 7명이 그의 선택에 따라가게 된다. 당연히 숙소 근처일 줄 알았으나 큰 착각이었다. 강을 건너 가야 한단다. 구글 지도로 검색했더니 총 30분 정도 걸린단다. 귀찮은 사장님은 차라리 택시를 타자고 했으나 강을 택시가 돌기엔 너무 크게 돌기 때문에 어렵다는 결론을 냈다. 파이브 스타의 숙소가 강 근처랬나 거기에 맛있는데가 있댔나 그랬다.
 

사람들 상황은 아랑곳 하지 않고 저 멀리 앞장서 걷는 그

 
 
전시 내내 다들 기력도 많이 썼고, 배들이 많이 고팠기 때문에 살짝 예민해져 있었다. 택시를 탈 수 없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페리인지 버스인지 뭔가 타려고 전시회장 후문을 나와 정류장까지 걸어야 했다. 그 찜통에서 일곱 명은 가방을 둘러메고 앞장 서가는 그의 팔자걸음만 보며 죽어라 따라갔다. 이상한 길을 계속 따라가며 가장 많이 한 말은 '배고프다'와 '이 길이 맞느냐'는 것이다. 한 이삼십 분쯤 어두컴컴한 길을 걷다 보니 다들 짜증이나 그냥 근처에 있는 곳으로 가자! 를 연발했고 그는 한참을 앞장서 가느라 우리의 말은 전달도 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 조금 밝은 곳으로 나와 이쯤에 있어야 하는데.. 를 연발하며 말 끝을 흐렸다.

폐가 하나 없는 사장은 쌕쌕 숨소리를 내며 숨을 몰아쉬었고 피부가 사색이 되어 있었다. 우리도 지쳐있었고,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무모화 시키기 위해 딴 회사의 싹싹한 직원에게 넌지시 혹시 아는 데 있느냐 물어보았다. 눈치 빠른 파이브 스타의 여직원은 별점 앱을 돌려 근처에 만만한 요릿집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리고 그 식당으로 가는 길에 그와는 일면식도 없던 파이브 스타의 여직원은 그에게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인솔하면 어쩌느냐는 둥 상황 봐서 식당을 잡아야지 뭐하냐는 둥, 모르면서 왜 끌고 다니냐는 둥 잔소리를 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에게 오는 몇 없는 찬스를 책임감 있고 멋지게 해결하고 싶었으리라. 그러나 확실하지 않은 일은 안전하게 가는게 상책이나 그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을게다. 보통은 20대에 끝내야하는 찌질한 실패를 아직 경험하지 못했거나, 그게 실패인지 인지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면 느끼는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던 것 같다. 이 작고 작은 식당초이스 미션에서 말이다.
 
 

얼음통에 나오는 맥주

 
 
이후 숙소 쪽으로 한참을 걸어 들어간 식당은 어수선하지만 꽤나 로컬스러운 분위기의 식당이었다. 중국인이 바글바글했고 산해진미가 연신 왔다 갔다 했다. 우리는 지친 것도 잊고 이내 기분이 좋아졌다. 음식 나오기 전에 우선 칭다오와 하얼빈 맥주를 시켰더니 얼음이 가득 든 통에 담아왔고 나는 군침을 꿀꺽 삼켰다. 그 여직원이 고마웠다. 그 여직원도 중국어를 읽지는 못했고, 완전히 중국어로 된 메뉴판을 보며 우린 '이건 뭐야' '이건 뭐야'로 물어보다가 그에게 '적당히 이 사람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정도로 주문하라' 고 그에게 시켰다.
그는 이거, 양거 어쩌고 하며 중국어로 뭔가 잔뜩 주문을 했다.

큰 테이블에는 탕을 끓이기 위한 구멍이 2개 크게 뚫려있는데 하난 발간 된장 국물, 하난 맑은 국물이 담겨 있었고 샤브샤브 비슷해 보였다. 다들 고생했다며 맥주도 마시고 낙지, 문어, 양고기 소고기, 청경채 등등 마음껏 익혀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의아하던 부분은 사장이 이게 중국어로 뭐냐? 고 물어봐도 그는 잘 몰랐다는 것이다. 나는 옆자리의 공장 사장님과 '근데 어떻게 주문한 거지?' 하다가도 이내 귀찮아져 ‘알아서 했겠지 뭐!’ 하고 껄껄 웃고 맛있게 먹었다. 자리가 무르익고 다들 얼큰하게 배가 불렀는데 중국 종업원들은 계속 뭘 가져왔다. 우리는 이미 육수 넘치도록 뭘 넣고도 못 먹고 있었고, 그렇게 먹을거 좋아하는 사장도 '그만시켜 그만시켜'를 연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먹었던 것들도 또 오고 생선, 내장, 뭔지도 모를 흐물거리는 것 등등 기괴한 것들이 꾸역꾸역 새로 밀려왔다. 

이거 우리가 주문한거 맞느냐! 그만 오라고 시켜라 라고 말했으나 그는 입을 다물었다. 사장이 못 먹겠다며 손사래를 치고, 우리는 모두 젓가락을 내려놓았으나 테이블엔 새로운 음식들이 가득했다. 사장은 이거 뭔지 알고 시켰냐고 물어봤으나, 그는 핑계도 없고 그냥 아무 말도 없이 뭔가를 계속 집어먹기만 했다. 답답한 여직원은 눈치껏 시키지 왜 알지도 못하는 메뉴를 이렇게나 많이 시켰느냐고 타박했다 한다. 시끄러운 중국인들이 가득한 식당에서 술 한잔 씩 걸친 사람들도 큰 소리로 한마디 씩 했다. 그야말로 난장판이요 아비규환이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우리는 결국 먹지도 못할 음식들을 그냥 잡탕이 된 육수에 밀어넣고 일어나야 했다. 사장은 가볍게 먹으려던 저녁식사에 30 얼만가 40얼마가 나왔다며 먹지도 못할 거 다 버리고 왔다며 저 미친새끼 눈치도 없다며 가슴을 쿵쿵 내리쳤다. 기력은 기력대로 빨리고 주문도 개판이고, 사장은 더 이상 그가 보기 싫다며 나에게 한국 가면 다시 회사 못 나오게 하라며 신신 당부를 했지만 나는 조금 더 두고보자고, 잘하려다 보니 이렇게 된 거라고 그를 두둔했다. 사장은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자신이 돈을 낼 때는 다이어트 핑계로 부족하게 먹고 남이 살 때는 눈치 안 보고 말도 안 되게 주문한다는 것을 확실히 뇌리에 박아버렸다. 그리고 그 이론은 이후 그가 퇴사하기 전 까지의 생활을 볼 수록 사실이라는게 명확해졌다.
 
그는 식사를 하고 사장에게 타박을 듣고 돌아오는 길에 그 훌륭한 여직원 흉을 보았다. 그 여직원은 나를 언제 봤다고 자꾸 뭐라고 하느냐고, 내 상사라도 되느냐며 나에게 '그렇지 않아요?'라며 공감을 요청했으나 나도 그 여직원의 편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누가봐도 맞는 소리를 하는 사람한테 뭐가 틀렸다고 자꾸 나에게 공감을 요청하느냐고. 아직도 뭐가 잘못된지 모르겠냐며 말이다. 그는 끝까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조금 걸어 오더니 숙소 옆에 있는 미술관 구경 가면 안되느냐 물어보는데 나는 완전히 질려버렸다.
 
어수선한 날이 지나 조금은 잠잠하게 이틀이 지났고 이윽고 문제의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다음 화에 계속
 
다음화

 

팀장의 고뇌 - 3 [director's c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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