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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신윤복 본문
작업실을 계약한 지 1년 정도 되었다. 2019년 겨울. 시작을 했고 한 해가 지나 그만큼 사람이 새로 들어왔다. 애초에 계약서에 있던 초창기 멤버 한 명이 나가면서 이름은 자연스레 신상균, 이윤, 박기복을 줄여 신윤복으로 정리가 되었다. 예술하는 사람들에게 어울리고 깔끔하다.
처음엔 쉽게 각자 '작업을 위해 공간이 필요하다'였다. 기복이도 메탈 작업과 주얼리, 유튜브 작업을, 누나는 본인의 사무실과 작업 다이가 필요했다.
다들 명확하게 할 일들이 있었고 나야 단순하게 그림도 그리고 안경을 만들자 였는데, 국내에 있던 여타 공방들처럼 아세테이트 깎고 다리도 심 박힌 거 구해와서 깎아서 넣고, 연마하는 것들에 회의감이 있었다.
아무래도 공장에서 CNC로 깎은 것처럼 정확하지 않고, 공산품처럼 수치상 0.5mm의 차이가 나면 불량이라 하지 못하고 '핸드메이드' 혹은 '수제'라는 이름하에 그런 부분들을 뭉뚱그려 자기 합리화시키는 작자들이 종종 생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로코 공방 이후로 우후죽순 생기는 수제안경 장인 (수제 라던가 장인이라는 말에는 기준이 없어서 나는 별로 안 좋아함) 들 때문에 아무래도 그런 카테고리로는 더 이상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장인도 아니고 깎아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지 않는, 안경은 하지만 엔지니어 마인드의 디자이너다. 장인은 한 파트를 10년 20년은 고민하며 시간을 꽉 채운 사람들이 들어야 하는 '생활의 달인'쯤에 나오는 사람들이라 생각하기에 나는 그런 카테고린 아니라 생각한다. 힐끗 봐도 된다 안된다를 낼 깊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
결국 내가 하면 장인이 만드는 수제안경은 아닌데 그럼 '그런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어떻게 작업을 해야 하는가'는 금속공예를 하는 친구 덕분에 해결이 되었다.
제 아무리 장인들도 공장에서 생산한 부속들을 갖고 만드는데 우리는 모든 금속 부속을 이유 있게 만들고 우리 제품에만 접목하자는 방안이었다. <브랜드 자체 부속> 이것은 보통의 브랜드가 할 수 있는 돈은 많이 들지만 티는 덜나는, 아는 사람만 알아보라는 마지막 관문이다.
처음의 유쾌한 생각과는 다르게 시작해보니 새로 메탈로 제작한 리벳이나 엔드피스, 템플 등등 파트마다 적합한 물성에 안 맞아 무르거나, 탄성이 없다던가, 2차원 도면과 3차원 도면 그리고 실제 샘플과의 괴리, 구멍 크기나 위치가 미묘하게 안 맞음, 메탈과 아세테이트와 체결 방식 때문에 바뀌는 구조, 은이나 황동의 물성 때문에 변할 수 밖에 없는 형태적 구조, 게으름, 아세테이트 안에 은을 넣었더니 기포가 생기는 등등 지대하고 지리한 난관이 있다.
나야 부속 도면을 그려서 공장에 발주하면 이천개 단위로 만들고 판매하면서 사이즈나 감도, 여닫히는 작동에 문제가 있던적이 없었는데, 지금처럼 직접 샘플링까지 해서 뽑아보니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이는 그나마 내가 3차원 툴을 2차원 툴만큼만 다루면 오해의 여지가 크게 줄어들기 때문에 요즘은 이거 내 문제라고 절실히 느낀다. 역시 직접 안해본건 쉬워 보이는 법이다. 여기에 시간과 돈과 감정을 쓰면서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이번에도 배운다!
어설프게 삼차원 툴을 다루는 정도에서 크게 더 치고나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짤린 전임팀장은 일러를 하는 둥 마는둥 하고는 '나 할줄아는데, 상균씨 키우려고 다 시키는거야' 를 입버릇처럼 달고다녔다. 나도 그 사람처럼 무능해질게 두렵다. 정말이지 능력의 영역을 넓혀갈 시기가 되었다.
말이 돌았는데 아무튼 수제 이런 거 말고 '디자이너의 설계가 들어간 공예품'이란 카테고리로 접근을 하기로 한다. 덕분에 금속공예가와 나는 옆자리를 쓴다. 프로젝트 이름은 KYEOL이고 이것에 대한 철학도 글로 쓰다보면 정리가 되겠지.
다시 작업실 이야기로 돌아와 조금 더 나아가 작업실과 쇼룸을 분리해서 그 자리에서 만들고 파는 형태를 항상 생각해왔다. 같이하는 사람들과는 동상이몽이라 한 공간을 갖고도 각자 생각이 다를지도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주상복합>과 같은 형태를 꿈꿔왔다.
온라인으로 먼저 내 홈페이지처럼 제품을 만들고 샘플링하고 도면에 의도를 넣는 과정들을 기록 <살아가는 집의 역할>, 결국 나온 완성품은 나의 시간을 함께 정주행 해 온 사람들이 구매 <상점의 역할>하고 구매 후 착용해 시간이 지나 인정해주는 것. 3년 전부터 대학 동창인 준수와 종연과 함께 레지머셜이라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제품출시를 하자는 목표가 있었다. 결국 나만 글을 쓰고 있길래 티스토리로 빠져나왔고 이제는 다른 사람들과 오프라인으로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여하튼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작업하고 판다는 시스템은 달라지지 않았으나 여기엔 큰 맹점이 있었다.
1. 수익을 통해 임대료를 감당하기엔 내 작업이 안 나오고 판매까지 이어질 시간을 견디기 어렵다.
2. 사람들을 공간으로 유입시켜야 한다. 자연스럽든 예약을 통해 오든. - 동선 때문에 그냥은 안됨
나는 회사원이라 작업실은 주에 1번 갈까 말까고, 윤 누나도 주에 2회 올까 말까. 사람들이 들어오기 전 간 각자 주머니에서 기본으로 공과금 포함 매달 40만 원 내외로 고정비 지출. 의자나 테이블 구매나 페인트칠, 공구리, 변기교체나 유리라도 갈라면 크게 각자 추가로 30-50만 원 이상씩 나가고 있어서 다른 시도를 하기도 어려웠다. 고로 남는 방을 세입자를 받아 배분하고 적게나마 월세를 받고 그들과 협업을 통해 재미있는 일을 더 만들어보자 결론을 내 입주자를 받았다. 덕분에 겨울에 따듯하게 보낼 수 있는 장비도 사고 의자나 서랍, 선반, 책상들을 더 구매할 수 있었다. 입주자 선정 기준은 우리에게 없는 포인트가 있는가 가 주요했고 (초반엔 너무 깐깐해서 내보낸 사람도 몇 있음), 나중에는 그런 벽이 약간 허물어지긴 했지만 지금 전체적으로 공동 작업실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적합한' 사람들이 모였음에 감사하다.
여름 가을쯤부터 사람들이 모였으나 그들도 종종 게으르거나 개인적인 일이 있는지라 나와 같이 작업실에 잘 오지 못했다. 아무리 적다고 하지만 그들에게도 고정비용은 아픈 법이다. 그들의 고정비를 줄이고 우리도 줄이기 위해서는 이제 다 같이 공간을 활용해 수익을 낼 때가 됐다. 당초 계획인 개개의 제품을 팔자는 것은 일단 우리 프로젝트 제품이 안 나오기도 했고, 다른 입주자들은 소위 머리를 써서 돈을 벌어오는 사람들에 가까웠기 때문에 작업실을 상업적으로 활용하자 의견이 모아졌다. 일단 공간을 활용하자!
스튜디오 신윤복도 슬슬 굴러가려는 모양이다. 가벼운 일부터 시작하자 규동이가 제안했고 조금 쉬우면서 우리의 궁극적인 방향은 아니지만 '전시 대관' , '공간 대여' 쪽으로 일단은 일을 꾸며보려 한다. 그 시작으로 금속공예 작가인 입주자의 전시를 먼저 기획해보려 한다. 이에는 지속적인 인스타그램 관리, 촬영, 텍스트가 필요하다. 피드 관리와 온라인 관리엔 규동과 은서, 촬영엔 현수 씨가 도와주기로 했다. 일단 계정도 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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샵인 샵으로 커피 브랜딩 업자도 샵인 샵으로 들여놓자는 의견도 있었는데 현실적인 면에서 어렵다 판단되었다. 작업실 관련된 일은 해도 지대한 수익은 없기 때문에 다들 총대를 메기 꺼려하는 눈치긴 하나. 방법을 구상 중이다. 확실히 재미는 있을거 같다. 돈을 좀 써야겠지만. 시간이 지나 작업실 내부 인원 모두 같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할 날을 기대한다. 한 개의 브랜드가 되어도 좋고. 일단 지금 살짝 벌리는 일은 규동이가 총대를 짊어진 꼴이 되었다.
작업실은 하나의 유기체가 처럼 움직인다. 이젠 신윤복이 하자는 대로 되는 작업실이 아니다. 네 것도 내 것도 아니란 소리. 워킹데드를 보면 한 명이 호령하던데 결국 다 흩어져 각자의 공동체를 만들더라. 나는 여기서 뒤로 쭉 빠져 일이 되는데 서포트를 하는 포지션으로 가져가려 한다. 모두가 흡족한 방향이란 있을 리가 없으나, 일이란 서로 이해하는 선에서만 진행되어도 아주 큰 성과다. 여기서 작은 내 자리에 앉아 내 일은 조용히 진행하고 같이 하는 일은 다 같이 하면 된다. 사람들이 많이 개입된 일에서 중요한 점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데, 나를 포함한 모든 멤버다 곤조가 있기에 서로 잘 풀어가며 나아가야 한다. 일이 커지는 수순이겠지.
12월 회의때는 뭔가 일이 벌어져있기를 기대한다.
<예고 샘플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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