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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os 2020. 7. 20. 19:49

작업실에서 나와 박기복 이름으로 나올 안경 부속 샘플이 나왔다. 족히 두 달은 걸린 것 같다. 블로그에 누가 들어와서 보나 싶기도 하고, 올려두면 히스토리가 되겠지 란 마음에 진행 상황들을 가감 없이 정리해본다.우선 소품종 소량생산의 본명을 내건 독립 브랜드가 우리가 '일단' 그어놓은 길이다. 재미로 하는거라 수입은 나중 일이고, 우리의 마음에 드는 물건을 신나게 만들어보자는 취지다. 나름 기복이는 국내에선 메탈계 유명인이고, 나는 안경판에서 이럭저럭 굴러 먹고 있다. 한마디로 둘 다 업자다.

회사에 엉덩이 비비면서 월급 따먹기 할 생각 없는 기복이는 프리랜서가 됐고, 나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좋아하는 안경판에서 일하니 업무 만족도가 아주 높다. 그러나 회사는 일과 상업적 이득을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여기서 나온 제품으로는 우리의 입맛까지 사로잡진 못한다. 회사 돈으로 자아실현할 생각은 없는데 나는 작업실에서 안경을 만들 수 있으니 갈증이 많이 해소된다. 아마 독자적인 형태와 부속을 만들어서 대중을 흔들 힘이 있는 회사에서 능력을 발휘한다면 더할나위 없겠으나, 국내 브랜드는 한 두 군데 빼고는 쉽지 않다. 일단 우리가 하는 프로젝트는 기복과 나, 두 업자의 입에 맞는다면 매니아들에겐 먹힐 거라 생각한다.이전 작업실과 공장 제품들은 미국이나 이태리, 중국에서 부속을 대량으로 구매하고 사용했기에 어느 정도 비슷비슷하고 표준화 되어있다. 대신 구하기도 쉽고 직접 만드는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지금 뚝섬에 이사 오고 아무래도 작업실에 temple metal core를 shooting 할 장비는 들여두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여러 가지 다른 방도를 생각해보았다.


한편으로의 결핍은 다른 부분에서의 창의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을 일하면서 많이 터득했기 때문에, 사실 이런 해결방안을 만드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우리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실 제품까지 나오려면 꽤 걸릴 것 같다.

 

 

손드로잉과 2d로 그린 부속. 항상 버전업하는 방식으로 극 소량생산한다. 첫번째 버전

 

 

브랜드 이름이니 뭐 그런건 아직도 갈팡질팡이다. 우선 기복이랑 나의 취향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작업 스타일도 다를뿐더러 좋아하는 디테일도 다르다. 누가 좋고 나쁘고의 문제는 전혀 아니고 오로지 입맛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나는 미니멀하거나 클래식한 걸 좋아하고, 기복이는 그야말로 손맛을 좋아한다. 내가 손드로잉이든 도면이든 모델링 이미지를 만들어서 기복과 협의를 하면 그가 본인이 그 작업이 그 소재로 가능한지 판단하고 조정 후 완벽한 모델링을 구현하고 주물을 만들고 소재를 탐구, 샘플이 들어간다. 일단 이번에는 은 합금인데, 부속의 위치마다 필요한 강도가 다르기 때문에, 안경을 아는 나와 물성을 아는 기복이가 많은 대화를 하고 여러 가지 샘플들을 내면서 작업을 하는 중이다. 둘은 친하지만 일이 진행되면서 서로 피곤한 상황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들이다. 이미 둘 다 비용도 많이 썼는데 얼마나 더 들어갈지 감도 안 온다.

중요한 건 난 직장인이고 가정이 있으며 기복이도 대학에서 교수도 하고, 유튜버인 데다가, 지 주얼리도 하고 있고 서로 바쁘다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다. 둘 다 다 때려치우고 반년만 쏟으면 흡족한 결과가 나오겠지만 돈이 없어서 굶어 죽는다. 기복이는 앞뒤 안 재지만 난 아주 현실적이라 서로 잘 조율하면서 꾸준히 진행 중이다. 이렇게 천천히 가는 게 좋은 방법이라 생각된다. 출생이 경상도와 경기도민이 서울에서 만났다. 고향 차이로 인한 성향일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이런 말도 위험하다.

 

 

2D를 3D로 만들고 (rhino)

 

 

안경의 경사각을 위해 열로 경첩을 박는 경우에는 사실 손으로 각을 주면 되지만, 리벳 방식은 애초부터 각을 줘야 한다. 광대가 발달하고 코가 낮은 아시안을 위해서는 4-5도 정도의 경사각을, 코가 높은 서양인은 10도 정도의 경사각이 있다. 나는 시원하게 꺾인 7도 정도의 경사각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는 판매 국가, 안경 프론트의 쉐입과 상하 폭에 따라 결정해야 하는 부분이다. 안경을 아는 사람이라면 저 라이노 도면만 보셔도 고개를 끄덕이실 듯하다.

여기서 수제나 소량생산, 고가 제품에서만 나올 수 있는 분리된 미미 부속에 대해 볼 수 있다. 저 라이노 도면의 노란 부분이 해당된다. 저건 템플의 방식에 따라 교체가 가능한 우리만의 시그니처가 될 예정이다. 대량생산이라면 절대 해주지 않을, 무의미한 방식이지만 우린 부속을 하나씩 만들고 다듬어서 안경 하나씩에 직접 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나사 기리 까지 직접 따는 일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로고나 가짜 리벳 모양을 아세테이트 위에 얹는 불량이 생길 요인을 완전히 차단했다. 구형의 리벳 방식을 사용하고 리벳과 경첩도 전부 그리고 주물을 떠서 하나하나 만들고 있다.

 

 

박기복 비밀의 루트와 재료 조합으로 앤드피스 리벳형을 만들었다.

 

 

템플의 경우에는 피팅이 필요하므로 너무 딱딱하지 않고 약간의 변형이 가능하도록 소재를 써야 하고 리벳의 경우는 뒤틀어질 바에야 정확한 벌림 각과 쓰임 성 때문에 단단하게 써야 한다. 적절한 합금 비율을 기복이가 구현해준다. 그리고 은이 들어가서 색이 변색되는 건 다른 안경에는 절대 없는 오리지날리티라 생각하며 진행하려 한다. 

 

 

좌우 리벳경첩

 

서포트가 많아서 다듬는데 시간이 걸릴 듯하다. 분명 나오면 아름다울 듯. 하지만 나사를 끼우다가, 리벳질을 하다가 우리가 생각한 물성이 안 나와서 또 멘붕이 오겠지. 그러나 우리는 결국 잘 해결해 나갈 수 있다.

 

 

작업실 내 자리. 공구가 가득하다.
샘플링은 mazzuchalli Asia로 진행
 다리가 비쳐야 예쁜 디자인이라 실 제품은 takiron으로 진행한다.

 

 

 

소형 연마기를 직접 제작했다. 사진을 찍은 이후로 직접 연마석과 호두, 광약을 넣고 시도해보았다.

 

 

대구 공장까지 가서 연마에 들어가는 칩과 광약, 연마 왁스 등등 구해서 작업실로 가져왔다. 토크수가 나오는 모터를 사서 정류해주고 회전수에 맞는 가랑 지름을 정하는 일까지는 내가, 이후 쇠를 자르고 땜하고 모양을 짜서 형태를 만드는 일은 기복이 했다. 연마기는 업자들 말로 가랑 혹은 가라 라고 부르는데 나는 가랑이 익숙하므로 그렇게 부르겠다.

가랑은 잠깐 돌려보았다. 의도대로는 잘 되지만, 아무래도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해 기복이의 시간을 또 빼앗아야 할 것 같다. 부탁하는 사람과 실행해야하는 사람의 괴리라 할 수 있겠다. 어쩔 수 없이 각자 잘하는거 하면 된다고 마음을 먹는다.

 

 

수입했던 부속들과 도면, 손으로 만든 안경들

 

 

똑딱이 카메라를 7년쯤 썼더니 노이즈가 아주 심하다. 화이트 밸런스도 지 맘대론데 나름 내 카메라의 맛이라 생각한다. 이게 아까 말한 그런 거다. 결핍에서 오는 창의력 혹은 시그니쳐화 되는 거. 친구였던 조윤진이는 테이프를 쓰는 한계에서 그녀만의 시그니쳐로 작품을 만들어냈다. 맹인은 귀가 좋거나 손 힘이 좋다더라. 다른 강점이 생기는 거다. 앞으로 단점은 개성이라 불러도 무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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