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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안경 본문
건축은 멋진 직업이다. 건축학도들은 멋진 랜드마크를 지은 스타 건축가, 혹은 시대를 변화시키는 건축적 이론을 제시한 유명 건축가처럼 되고 싶어한다. 예를들면 안도 타다오나 꼬르뷔제, 아니면 프리츠커상을 받는 사람 처럼. 엄청난 지식들을 기반으로 외부로 보이는 형태의 이미지를 기획하고 설계해서 이뤄내는 사람들. 그 지식들을 모두 갖고 있기 어려우니 또한 전기, 수도, 법, 자재, 건물주, 지역 공무원 등 들과의 협업으로 하나의 건축물이 세워진다.
같이 의기투합하던 건축학도 형은 졸업과 동시에 몇몇 설계사무소를 전전하다가 30대 중반 빠르게 턴, 일 년 공부하고 9급 건축공무원이 되었다. 20대에 유럽 건축투어를 다녀오고 한국에 유명한 절을 만드는 장인에게 한옥짓는 법을 전수받겠다던 열정 있던 사내가 웬 공무원이 되었을까. 공무원이 된 그와 함께 소주를 기울이는 동안 그는 건축에 대한 고충을 늘어놓았다.
도시에서 사는 내가 수천 수만개가 넘는 건물들을 매일 지나치면서 드는 생각은 아무 생각도 안 든다는 것. 좁은 서울이라는 땅덩어리에 천만이 넘는 인구가 살고 이동하려면 건물들은 빽빽 할 수밖에 없다. 고로 더 채워넣을 수 있는 가성비와 땅에 관련된 법과 정책에 관한 부분이 예술성보다는 비중이 크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좁은 침상에 80명이 눕기위해 군대처럼 효율적으로 디자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변화무쌍한 지형과 주변에 어울리는 건물을 올리는 총합적인 지식이 필요한 직업. 스타 건축가가 아닌 이상 서울에선 그렇게 본인의 욕심을 실현시키기는 쉽지 않다. 요즘은 건축 보다는 인테리어가 대세다. 최소한의 욕구라도 충족시키기 위함이며 이 비용도 없는 사람들은 소품을 활용하기까지 떠밀려간다. 건축법에 관련된 사람들이 흐름에 관심이 있다면 건축물의 규격도 인테리어의 변화만으로 모든 유행에 대비 가능하도록 재정의 되지는 않을지. 여하튼 건축은 너무 빡빡하고 땅이라는 비싼 자본이 든다. 클라이언트가 없으면 접근 할 수 없는 일. 땅과도 결속되어있기 때문에 무척 신중해야하고 수정하기도 어렵다. 다들 평생 돈을 벌어 집을 사려고 한다.
건축을 보며 내 직업이 보인다. 세상 모두 다른 얼굴이라는 변화무쌍한 지형에 안경이라는 건축물을 올릴 수 있는 매력적인 일이다. 안경은 의료적인 목적이 있어서 프레임에 눈과 관련된 일정한 곡률과 중요 부속의 부속 위치를 파악해야하는 엔지니어적인 요소와, 유통에 관한 법적인 요소들이 들어있다. 그런 제한적인 틀 안에서 자유롭게 무엇인가 표현한다는 것. 이게 한편으로는 건축가지 뭐 별다른 거 있나.
온라인이나 안경원에 깔린 대량생산된 아파트와 같은 기성 제품들. 주택도 뭉텡이로 주변 지형과 어울리지도 않게 만드는 기획 주택들도 많다. 물론 본인에게 맞게 만든다는 것은 비용적 대가가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다들 같은 교육을 받고 똑같이 입고 다니고 같은 기사를 읽는다 해도 사람들은 모두 다르다. 서울 월세보다 싼 안경 정도는 새로운 시도들을 많이 해봐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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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가 대세라고 했는데, 집 구조나 벽, 바닥을 크게 바꾸기 어려운 사람들은 적당히 미드센츄리 시기의 냄새가 나는 가벼운 아크릴과 철제로 된 가구들을 소비한다. 쇼파도 컬러풀하게. 미니멀리즘을 좋아들 하지만 그건 볕 잘드는 자리의 한 귀퉁이만 다 비워두고 화분을 하나 놓는 식들이다. 다른 사진이 닿지 않는 곳은 어수선하기 마련이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그런 시류를 알아챈 테이블이나 의자, 식기, 그릇이나 컵, 철제 조명 등이 곧 잘 눈에 띈다. 어느덧 우리 집에도 빈티지 컵들을 비싸게 주고 장식처럼 늘어두게 되었다. 빈티지 수입상들에 대한 질타가 조만간 많아지고, 이를 오마쥬, 다시말해 카피한 제품들이 일반 소비자들에게 흘러가는 때가 조만간 오겠지. 아마 그 때 쯤 되면 취향 좋은 사람들은 원목이라던가 나무와 유리와 같은 다음 코스로 발을 옮기고 대중들은 또 따라가리라. 아무튼 이런 세상에서 돈들은 없어도 선반은 무인양품을 쓰더라도 비싼 쇼파나 조명 하나쯤은 유명한 디자이너들의 제품을 두고 싶어하는 추세다. 나는 취향의 결만 맞다면 이런 매치를 해 쓰는 것을 실력이 좋다고 생각한다. 유니클로와 샤넬, 나이키와 마르지엘라를 잘 섞어 쓰는 것이 고수다. 마치 한 브랜드인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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