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os
2022.04.29 본문
엊그제는 아파트 중도금을 내는 날이었다. 큰 돈을 3번 냈다. 그리고 이제 장기 대출로 30년 간 갚아야 하는 릴레이가 남았다. 돈을 내기 위한 이야기들이야 무궁무진 하지만 아무튼 내꺼나 아내 것들은 없어지고 알록달록한 애들 장난감으로 채워지는 중이다.
지난주는 둘째 아들이 80일 쯤 됐나, 1주일 간 아내랑 같이 입원했다. 첫째 아들은 금토일은 나랑, 평일엔 외가 친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맡겨졌다. 살겠다고 일에 정신팔린 동안 가족은 유목민처럼 떠돌고 있었다.
4-5 달 정도 내 많은 것들을 들이부은 컬렉션은 거의 다 된 거 같은데 결정을 미루고 미루다가 발주가 급하다는 이유로 다른 더 오래 있던 사람들에게 전부 넘어갔다. 내가 컬렉션에서 뭔가 보여주기 위해 늦게까지 일을 하는 데는 아내와 다른 가족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집을 비운 동안 어린애 둘을 보기 위해 나이 든 어른들이 도와주시기도, 혹은 아내가 혼자 보기도 하는데 혼자 둘을 보느라 한명에게 신경을 덜 써 하나가 아프기도, 우리는 일단 내가 회사에서 어떤 선상에 빨리 올라가기로 합의했기에 아내나 나나 가족들이나 각자 몸에 무리가 감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많은 부분을 포기했다. 이런 여러 사람의 노력이 그냥 누군가의 기분으로 날아간다는 게 참 웃긴 일이고 허탈한 일이다. 하지만 상황이 이해되기 때문에 별 수 없긴 하다. 심리적인 부분이고 신뢰의 영역이라 시간이 팔요하다.
집에 들어오면 아내와 아기들은 지쳐서 잠들어있었고 난 또 컴퓨터 앞에 앉아서 뭔가 찾거나 그린다. 한편으로 회사 생활이나 산다는 게 그런 일들의 연속이라 재미있기도 하다. 요즘 흘러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아무리 해도 의미가 없단 생각과 그런 상황을 깨고 싶단 생각이 뒤섞인다. 지난주엔 출산휴가를 약 일주일 정도 다녀왔다.

근래 사람인에 공고를 올려서 아이웨어 디자이너를 뽑고 있다. 내 쪽 파트는 최소한 도면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여러 이력서를 받았고 안경 회사에서 도면이라도 친 경험이 있는 사람을 만나 미팅을 했다. 이력이나 인스타를 보아하니 아이웨어를 엄청 좋아하고 그런 저런 것들을 보니 예전의 나를 보는 거 같았다. 그리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후에도 '아 나도 저랬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면접은 소개팅 비슷한건데 캐미가 맞으면 서로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만 우린 말이 툭툭 끊기고 어떤 대화의 지점에 필요한 키워드 지뢰를 깔았으나 아무것도 예상대로 걸리지 않았다. 그래도 이해력이 좋고, 절실하다면 오늘 우리의 대화에서 어떤 실마리를 찾고 더 좋은 포트폴리오를 낼지 모른다는 기대를 하면서 작은 과제를 제안했다. 궁금하거나 모르겠는건 많이 물어보라 말했다. 갑자기 매력적인 사람으로 탈바꿈하길 바라며..
그렇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나니 나도 누군가에게 재미없는 사람이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을 면접보고 나니 나도 매력적인 인물로 바뀌어야되겠다 싶다. 매력? 그건 자신감에서 나온다. 최근에 칸예 웨스트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정신 질환에 걸릴 정도로 자신감이 넘친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자신감. 살짝 오만 비슷한 느낌을 내는 게 이 환상 파는 직업에서 좋을지도 모르겠다. 이거 다 속이는 거고 남 보다 잘나보여야 하는 것. 패션업이란게 원래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사업이다.
지금은 없는 cebont씨가 낡은 검정옷을 그지처럼 입고 다녀도 인간 자체에서 멋이 나던게 생각난다. 오늘 퇴사한 그를 우연히 합정 대로에서 MTB 자전거를 타고 거지꼴로 지나가는걸 봤는데 그래도 왠지 멋졌다. 빈티지 중고 볼보 해치백을 끌고와서 팀원을 태워 김장을 하러 가던 그의 간지를 잊지 못한다. 명품을 사서 바르거나 인간 자체가 졸라 멋지거나. 둘 중 하나다.
하튼 안경 꿈돌이를 만나고 생각해보니 언제부턴가 아이웨어가 나에겐 이상의 실현에서 돈벌이 수단이 되었단 생각이 든다. 순수한 열정은 언제나 리스펙이지만 이제 나도 배때기가 늘어서 다시 거지꼴로 돌아가서 하라면 하기 싫다. 오늘은 기분이 묘하기도 해서 좀 지난 락 음악 귀에 때려박으면서 걸어왔는데 구두를 신고 와서 발이 아프지만 기분은 괜찮다.
나 20살때 송탄 미군부대 앞에 피스 뮤직 형님들이 하던 말이 생각난다. '처음엔 기타가 좋아서 일을 시작했는데 이젠 좋은 기타 들여오면 이거 어떻게 비싸게 팔 까만 생각 해.' 글쎄 뭐 당신들도 책임져야 하는 삶을 시작했으니 그렇게 됐겠지요.
계절이 바뀐다. 감정이 메말라 있으면 계절도 못 느낀다는데 난 그 정도는 아닌 거 같다. 요즘 살짝 헛헛하고 우울한 느낌이 길게 가긴 하지만 이런 거에 늘어져 있을 여유가 잘 없다. 이게 왜 그런 기분이 드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회복이 안됐는데 매일 뱅글뱅글 돈다. 웃긴게 여유가 없다면서 딱히 전처럼 에너지있게 달려들지 못한다. 살짝 부정적인 느낌에 찌들어 있는 느낌인데 여즘 성장하지 못한다 느낄지도.
그저께는 저녁먹으러 고깃집에 갔는데 아저씨랑 아줌마, 중1 쯤 돼 보이는 딸애가 저녁을 먹고 있었고 테이블에는 소주 2병이 비워져 있었다. 나름 보기 좋아 보이기도, 평범해 보이기도 했는데 나는 그게 왜 이상한 기분의 감정으로 나에게 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날 일부러 한강을 쭉 둘러 걸으면서 생각해봤는데 내 10년 뒤의 모습이 그걸 거라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 같다. 마흔 중반에 내 연봉과 재산, 사회적 위치는 어디쯤일까. 취향이 남아있으려나, 저 아저씨처럼 목 늘어난 카라티를 입고 뱃살을 빼는 일은 포기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내 목푠 뭔데? 이제 와선 잘 모르겠다. 생존이 오로지 일 순위였는데 언제까지 가로로 쭉 그어진 선처럼 살아야 하나. 똑같이 산다는 말은 이제 싫어졌다. 설렘은 이젠 나에겐 다른 것에서 다른 감정으로 다가온다. 말이 두서가 없다.
호주에서 오페라하우스로 출근하려면 아침 6시에 나와서 40분 넘게 걸어가야했다. 그래도 시드니는 날씨도 좋고 오페라하우스로 가는 길이 큰 강변을 쭉 둘러가는 길이라 기분이 참 좋았다. 거기서는 인터넷도 느리고 한국처럼 막 다운로드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아이폰에 음악을 저장해서 듣고 있었다. 그중 출근하면서는 break bot을 신나게 들으면서 경쾌하게 갔고, 저녁에 노을 보면서 담배 한 대 태우며 지쳐있을 즈음엔 김정범의 러브토크를 들었다. 얼마나 지났지 한 5~7년 지났나?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그 시절이 떠올라서 좋기도 하고 그리운 느낌에 좀 서글프기도 하다. 한 20년 전에 들었던 거 같기도 하고.. 요즘 좀 이상하다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0) | 2022.05.18 |
---|---|
힘 (0) | 2022.05.17 |
빈티지 (0) | 2022.04.05 |
always awake (0) | 2022.03.30 |
근황 22.03.13.11:11 (1) | 2022.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