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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DJ, curator and editor 본문

편집자란 도대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일까. 간단히 말하면 편집자는 기획을 하고 직접 취재를 하거나 저자에게 집필을 의뢰한 다음 그 결과물을 책이나 잡지로 만들어내는 일을 한다. 나는 그 중에서 저자가 창작 이외에 다른 부분에 신경 쓰지 않도록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웨어 생산 MD란 크게 보면 같은 맥락이다. 사실 MD인지 디렉터인지 용어조차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 편집자의 일은 어디까지나 막힘없이 책이 나오도록 교통정리를 하는 것이다. MD또한 제품이 멈추지 않고 예상하고 기획한 제품이 적기에 나오도록 핸들링 하는 일이다. 그러한 점에서 미술관의 큐레이터와 편집자 그리고 MD는 비슷하다. 큐레이터의 역할은 작가가 홍보나 비용에 신경 쓰지 않고 제작에 전력을 다하도록 돕는 것이다. MD또한 디자이너가 다른데 정신 팔리지 않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큐레이터냐 디자이너냐 MD냐 누가 더 대단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엄밀히 말해 대등한 관계는 아니다.
음악으로 예를 들면, 뮤지션이 저자이고 DJ가 편집자라고 할 수 있다. DJ가 곡과 곡들을 이어서 하나의 음악으로 만들 듯이 편집자는 여러 글을 엮어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낸다. 음악을 만드는 이는 어디까지나 뮤지션일 뿐 DJ가 아니며 글을 쓰는 사람은 저자이지 편집자가 아니다.
유행가만 트는 DJ도 없지만 아무도 모르는 음악만 트는 DJ도 없다. 아무도 모르는 생소한 음악만 틀면 흥이 나지 않고 춤을 출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적당히 익숙한 비트를 섞으면 되겠지만. 그러니까 유명한 곡과 그렇지 않은 곡을 적절히 섞고, 때로는 장르가 완전히 다른 음악을 넣어서 전개를 예상할 수 없도록 하면 플로어는 금세 뜨겁게 달아오른다.
그런 DJ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어야 한다. 음악업계와 얽히지 않는 레코드 가게를 찾아내거나 지인이 하나도 없는 라이브 공연을 보러 가거나 여행지에서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음악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자신의 세계관을 확장해가는 일은 DJ에게도 편집자에게도 무척 중요하다.
일에 푹 담겨졌다가 빠져나온지 시간이 반 년 정도 지났다. 디자인을 할래도 출시 일정에 맞는 난이도의 제품을, 판매가격에 맞는 공장가를, 가장 중요한 '팔리는 제품' 인가를 신경쓰는 일이 디자인보다 훨씬 많아졌기에 팔리는 디자인에서 약간씩 개선하는 자가 복제를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도면의 0.몇 미리 단위로 가까히 붙어서 보다가 멀리 산위에서 컬렉션을 보려니 눈이 시큰하다. 혹은 이제는 빈 레이어에서 시작해서 안경을 그리지 못하는건 아닌가 싶기도하다. 스케치부터 시작하던게 언젠가 싶다.
지난주에는 나얼이 디제잉하는 나음세 (나얼의 음악 세상)을 들으면서 이 친구 테이스트가 참 좋구먼 하면서 음악하는 친구와 함께 품평의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가 나얼이 신곡을 냈다기에 들어봤더니 내가 20년 전에 들었던 그 노래랑 다를게 없는거다. 이게 변함이 없어서 좋은건지, 나쁜건지 잘 모르겠다가도 그의 음악 초이스를 들어보면 참 좋은데, 왜 이사람 음악은 왜 거기서 거기일까 이야기를 했었다. 아마 그도 좋은 DJ가 되어버려 팔렸던 음악으로 본인도 모르게 자가 복제 하는 모양이다. 이처럼 너무 본인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은 좋지 못한 결론으로 치닫을 때가 있다. 잡지, 편집 판도 5년에 한번은 싹 물갈이를 해야하는데, 안경판에 담겨있는 나도 한번 물을 바꿀 때가 된 것 같다.
아무튼 나중에야 디렉터니 에디터, 디제이, 큐레이터가 되고 싶지만 일단은 작가 혹은 디자이너나 뮤지션을 더 하고 싶다는 이야기다. 어떻게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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