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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시 피하기와 무관심 사이 본문

문제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는 태도는 최근 여러 자기계발 담론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개념이다. 어려운 상황이나 실패를 자신의 존재 가치와 분리해서 보라는 조언인데, 실제로 이 태도를 적용하다 보면 자칫 다른 문제로 이어지기 쉽다. 문제와 거리를 두려는 시도가 문제 자체에 대한 무관심으로 변질되는 경우다.
동일시와 무관심은 표면적으로는 반대되는 태도처럼 보이지만, 구조적으로는 닮은 지점이 있다. 두 경우 모두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동일시 상태에서는 문제와 자아의 경계가 사라져 판단이 흐려지고, 무관심 상태에서는 지나치게 멀어진 거리감 때문에 역시 판단이 흐려진다. 전자는 근접성의 과잉에서, 후자는 근접성의 결핍에서 비롯되는 왜곡이다.
이 둘 사이에 위치하는 세 번째 태도가 존재한다. 문제를 명확하게 인지하되, 그 결과가 자신의 존재 가치를 규정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태도다. 이는 흔히 전문성을 발휘하는 상황에서 관찰된다. 예컨대 숙련된 기술자는 결함이 있는 대상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자신의 무능함과 연결 짓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다. 결함을 정확히 진단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문제를 해결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걸지 않으면서도 완전한 몰입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동일시를 피하는 것의 실질적 기능은 문제로부터의 이탈이 아니라, 문제에 대한 관여도를 유지하면서 판단의 정확성을 높이는 데 있다. 자아를 개입시키지 않을 때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여지가 확보되기 때문이다. 즉 거리를 두는 목적은 무관심이 아니라 명료한 인식이며, 이 둘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 동일시 회피 전략의 핵심 조건이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