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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피드를 켜면 비슷한 장면이 자꾸 보인다. 누군가는 바다 앞에서 차를 마시고, 누군가는 새벽에 일어나 요가 매트를 펴고, 누군가는 휴대폰을 끄고 일주일을 보냈다며 사진을 올린다. "진짜 휴식을 되찾는 법"이라는 문구를 피드로 읽는다. 그 글을 읽는 동안 나는 조금도 쉬고 있지 않았다. 다음 게시물로, 다음 할 일로 계속 넘어가고 있었다. 휴식을 검색하는 일이 어느새 또 하나의 일이 되어 있었다.

20세기 독일 철학자 요제프 피퍼는 이 이상한 모순을 진작에 짚어낸 적이 있다. 그는 게으름, 라틴어로 '아케디아(acedia)'라는 말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로 설명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는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상태. 멈추면 자기 자신과 마주해야 하니까, 그게 싫어서 끊임없이 뭔가를 계획하고 해치우고 들여다보는 상태. 멈추는 순간 드러날 허전함을 바쁨으로 덮어버리는 것, 그게 진짜 게으름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내가 '잘 쉬는 법'이라며 부지런히 모아두는 그 모든 목록도, 사실은 가장 정교한 형태의 게으름일지 모른다.
피퍼는 이런 시대를 '토탈 워크(Total Work)'라고 불렀다. 모든 게 다 일이 되어버린 사회. 책 읽기는 자기계발이 되고, 운동은 건강 관리가 되고, 명상은 컨디션 조절이 된다. 여행을 가도 사진 찍고 맛집 다녀오고 일정 다 소화해야 본전을 뽑은 기분이 든다. 옷을 고르는 것도 비슷하다. 원래는 그냥 기분 내려고 입던 옷인데, 어느 순간 오늘 만날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보일지부터 계산하게 된다. 거울 앞에서 "이게 마음에 드나"가 아니라 "이게 괜찮아 보이나"를 먼저 묻는 순간, 옷 입는 것도 일이 돼버린다.
피퍼가 들려주는 벤치 위의 두 사람 이야기가 오래 마음에 남는다. 한 사람은 벤치에 앉아서도 휴대폰으로 메일을, 뉴스를, 이것저것을 확인하느라 바쁘다. 다른 한 사람은 그냥 나무를 보고 새소리를 듣는다. 둘 다 같은 벤치에 같은 시간을 앉아 있지만, 진짜 쉬고 있는 쪽은 후자뿐이라고 그는 말한다. 여가는 시간을 얼마나 비웠는지가 아니라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의 문제라는 거다. 그는 이걸 '수용성'이라고 부른다. 뭔가를 분석하고 계산하고 써먹으려는 태도를 잠깐 내려놓고,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 끊임없이 말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새로 듣지 못한다고도 했다. 조용히 있을 줄 아는 사람만 뭔가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거다.
그런데 이 가만히 받아들이는 시간이 그냥 개인적인 휴식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고 피퍼는 말한다. 그는 한 발 더 나아가서,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이나 잔치, 함께 먹는 밥 같은 것들, 그러니까 '문화'라고 부르는 것들이 사실 일이 아니라 바로 이런 받아들이는 시간에서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모든 게 일이 되어버린 세상에서는 휴식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 정작 이런 것들이 자랄 자리도 같이 없어지는 셈이다. 결혼식을 생각해보면 알기 쉽다. 따지고 보면 그날은 경제적으로 완전히 손해 보는 날이다.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하루를 위해 제일 좋은 옷을 입고, 제일 맛있는 걸 차리고,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그냥 '오늘 우리가 여기 함께 있다'는 걸 기뻐하려고 그러는 거다. 같이 둘러앉아 먹는 밥이 동물의 끼니랑 다른 이유도 비슷하다. 거기엔 생존이 아니라 고마움과 즐거움이 있다. 음악도 그렇다.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다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그 쓸모없어 보이는 시간 위에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이 다 쌓여 있다.
이쯤 되면 옷 입는 일도 다시 보게 된다. 원래 옷이라는 게 따지고 보면 제일 비효율적인 영역 아닌가. 굳이 안 사도 될 옷을 사고, 굳이 안 입어도 될 조합을 시도해보고. 그런데 그 쓸데없어 보이는 부분에서 사람들은 늘 자기 존재를 나름대로 기념해왔던 것 같다. 마음에 드는 옷을 입는 날은 그 자체로 작은 잔치였다. 문제는 이 잔치마저 '관리'의 언어로 슬쩍 바뀌어버렸다는 거다. 옷장을 보면서 뭘 더 채워야 할지, 오늘 입은 게 적절했는지를 따지기 시작하면, 옷 입기도 결국 또 하나의 일이 된다. 패션이 산업이 되고 일이 되면 생기는 문제다.
그래서 내가 가져보려는 여가는 '잘 쉬는 법'을 하나 더 추가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뭔가를 더 잘 해내려고 잠깐 멈추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그냥 나한테 허락해주는 것. 옷을 고를 때도 마찬가지다. 오늘 이 옷이 어떻게 보일지 계산하기 전에, 그냥 이 옷을 입은 내가 기분이 좋은지부터 묻는 것. 거울 앞에서 누군가를 평가하듯 보는 대신, 그냥 한 번 입어보고 마음에 드는지 느껴보는 것. 누군가와 마주 앉은 한 끼를 효율적으로 보내야 할 자리가 아니라, 그냥 같이 있어서 좋은 시간으로 두는 것. 그래 한 끼 식사를 하더라도 좋은 시간을 보내자. 즐겁게 하자. 원래 나처럼 입다물고 심각하게 있지말고.
바쁘게 사는 입장에서 보면 이런 건 다 시간 낭비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피퍼 말이 맞다면, 우리가 진짜 좋아하는 것들, 나만의 분위기 같은 것도 결국 그런 낭비 같은 시간에서 나온다. 여가란 결국 뭔가를 잘 해내는 능력이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해내도 괜찮은 나를 그냥 받아들이는 능력 아닐까. 요즘 내가 진짜로 갈아입고 싶은 건 새 옷이 아니라 이런 마음가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