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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을 미루고, 왜 살아 있음을 예외처럼 여기는가? 본문
삶은 덤이 아니고 매 순간 기적이다.

열 살 무렵에 나는 급성 신장염을 앓았다. 증상이 심해 두 달 가까이 학교를 다니지 못했으며, 어머니의 등에 업혀 마을의 유일한 병원인 보건소에 가서 이틀에 한 번씩 혈관주사를 맞아야 했다. 몸이 붓고 소변을 볼 수 없어 소금이 든 음식은 일절 먹을 수 없었다. 아무리 해도 병이 차도를 보이지 않자, 하루는 술탁보 공의―당시는 공중보건의를 그렇게 불렀다―가 어머니를 한쪽으로 불러서 말했다.
“이 아이는 치료가 어렵습니다. 일시적으로 나아진다 해도 오래 살지 못할 거예요.”
어머니는 울면서 나를 업고 집으로 왔고, 나는 그 당시 흔했던 유아 사망의 한 예가 될 운명이었다. 의사가 내린 사망 선고는 어린 나에게도 지울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 겨울이었는데, 언제나 한아무 차지하고 누워 있던 나는 스스로 왓목으로 이부자리를 옮겼다. 어차피 죽을 텐데 가난한 가족들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가만히 누워서 죽음을 기다리는 일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고 나를 업고 가서 주사를 맞혔다.
시름시름 앓는 사이 겨울이 지나갔다. 남향집이라서 창호지 문으로 봄 햇살이 비쳐들었다. 기어나가 방문을 열었더니 정말로 마당 가득 봄이 와 있었다. 마지막 봄이라고 생각해서인지 괜히 기분이 설레었다. 겨우 몸을 일으켜 마당 한쪽의 화단으로 가서 흙을 헤쳐 보니 화초 싹들이 파릇파릇 올라와 있었다. 내 몸과 마음에도 봄기운이 스몄다.
그날부터 나는 공의에게 놀라움을 안기며 ‘기적적으로’ 병이 나았고, 다시 내 발로 걸어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낫는다 해도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말이 마음 한구석에 박혔다. 죽음이 늘 내 옆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이 사춘기 시절에는 우울한 운명론자가 되게도 했지만, 인생을 더 절실하게 살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라’라는 말은 나에게 단순한 잠언 이상이었다.
매번 ‘이번 책이 나의 마지막 번역서가 될 것이다’라거나 ‘나의 마지막 시집이 될 것이다’라고 말할 때마다 주위 사람들은 영문을 몰라 했다. 실제로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 했다. 내일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장하거나 심각하게 살았다는 것이 아니다. 내일 인생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 오늘이 훨씬 소중하고 기쁘다.
신장염은 나았지만,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열 명이 넘는 일본인들과 수십 명의 셰르파들이 눈사태로 목숨을 잃은 히말라야 트레킹에서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그 이후로 나는 내가 사는 삶이 덤이라는 생각을 더욱 갖게 되었다. 트럭을 얻어 타고 네팔 산길을 내려오다가 운전사가 조는 바람에 50미터 낭떠러지 절벽에 트럭의 반만 걸려 있었던 적도 있다. 그 이후로 내 삶은 덤의 덤이 되었다. 10만 명이 숨진 구자라트 대지진 하루 전날 나는 그 지역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힌두 대축제 때문에 기차 지붕까지 올라탄 사람들을 보고 여행지를 바꾸었다. 바라나시 폭탄 테러 때는 불과 1분 전까지 그 장소에 있었다.
이것이 어디 나만의 일이겠는가? 인생은 끝없는 기적의 연속이고, 간발의 차이로 살아남은 존재이며, 신의 극적인 구조의 손길이다.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아버지가 농민들 손에 처참하게 살해되는 광경을 보고 충격을 받아 열여섯 살 이후 평생 동안 간질에 시달렸다. 스물여덟 살 때는 혁명 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되어 총살 선고를 받았다. 독방에서 지내던 어느 날, 스물세 명의 사형수들과 함께 페테르부르크 광장의 사형집행장으로 끌려갔다. 죄수들은 세 명씩 말뚝에 묶였다.
방아쇠가 당겨지려는 마지막 순간, 한 병사가 “집행 중지!”를 외치며 달려왔다. 황제의 특별 감형이 내려진 것이다. 죽음 직전에 갑자기 자유인이 되었다. 같이 밧줄에 묶여 있던 친구 하나는 이 일을 겪은 후 미쳐 버렸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죽음의 나락에서 갑자기 부활한 그 순간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는 남은 생을 문학에 바쳐 ‘이미 죽은 사람들이 깨달은 것을 표현하겠노라’고 다짐했다.
“과거를 되돌아보며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했는가 생각했다. 삶은 하나의 선물이다. 매 순간이 축복의 순간일 수가 있다. 나의 낡은 머리는 떨어져 나갔으며, 나의 심장은 나와 함께 남았다. 사랑하고 고뇌하고 갈망하고 기억할 수 있는 살과 피가 남았다.”
유배 생활 4년을 마치고 돌아온 도스토예프스키는 『죽음의 집의 기록』, 『지하 생활자의 수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죄와 벌』 등 불후의 명작들을 탄생시켰다.
우리에게 주어진 날들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면 삶이 그만큼 더 소중해진다. 자신이 간발의 차이로 살아남은 행운아임을 안다면 무의미한 고민이나 일들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된다. 주어진 날들이 선물처럼 다가온다. 더 절실하게 아침을 맞이하고, 더 깊이 사랑하게 된다. 가장 아까운 것이 ‘매 순간을 살지 않은 삶’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가 시작해야 하는 가장 창조적인 행위는 삶의 매 순간을 붙잡는 일이다.
대재앙이 일어나리라는 걸 알면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 것 같은가를 묻는 프랑스 일간지의 질문에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가 죽음의 위협을 받으면 삶이 갑자기 멋있어 보인다. 삶이 얼마나 많은 계획, 여행, 사랑, 배워야 할 것들을 숨겨 놓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우리의 게으름으로 인해 미래의 어느 순간으로 끊임없이 미루고 있는 그것들을. 하지만 그것들이 영원히 불가능해질 위기에 처하면 그것들은 다시 아름다워진다. 아, 대재앙이 지금 일어나지 않는다면 많은 것을 하리라! 새로운 화랑들을 구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내던지고, 인도로 여행 갈 기회를 놓치지 않으리라······ 하지만 대재앙은 일어나지 않으며, 우리는 그 일들 중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게으름이 절실함을 무력화시키는 일상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오늘의 삶을 사랑하기 위해 대재앙이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죽음이 오늘 밤에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